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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을 아십니까

괭이부리마을은 인천에 있다. 인천 사람들도 잘 모르던 그 마을이 세상에 알려진 건 김중미의 소설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이라는 오명을 받았고 지금도 역시 그런 곳. 에밀 졸라의 은 제목처럼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고상한 도시 파리의 하류층 인간상을 그린 소설이다. 가난에 찌들어 파멸해 가는 도시 빈민들의 비참한 이야기다. 괭이부리말도 가난한 마을이지만 에밀 졸라의 소설처럼 절망적이지 않다. 은 가난에 굴복해 살아가는 일말의 희망도 없는 군상들 이야기지만 은 가난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고 미래를 꿈꾸는 따뜻한 이야기다. 김중미 소설을 읽고 문득 그곳이 궁금했다. 소설이 히트하고 괭이부리말이 널리 알려지자 인천 동구는 이 마을을 체험하는 테마로 관광상품화하려 했다가 맹비난을 받고 철회했다. ..

젓 비린내 좋은 강경

태생이 강원도 깊은 산골인지라 산삼보다 구경하기 힘든 게 갯것이었다. 육고기도 귀해 기껏해야 어쩌다 손님이 오는 때 집에서 놓아 기르는 닭을 잡는 정도였다. 그렇지 않음 정기적으로 개를 달아매는 일이었다. 또 산에서 잡아온 꿩이니 토끼 등이 고기에 주린 촌사람들의 육식생활이었으니 그나마 육고기는 먹은 셈이었다. 그러나 갯것은 너무나도 귀했다. 가끔 미역국을 먹는 정도였고 식구 중 누구 생일 때면 미역국에 김, 그리고 짜디짠 고등어나 임연수였다. 산골에서 시내까지는 산넘고 물건너 머나먼 길이었고 새벽 조반을 먹고 떠난 아버지는 해가 저물고도 한참이나 돼 돌아왔다. 그럴 때 아버지 지게 등테에는 새끼에 엮은 고등어가 두어 마리 달려 있었는데 무더운 여름철이면 그게 물크러져 물이 뚝뚝 흐르기 일쑤였다. 심할 ..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길

왜 해남으로 알고 있었을까. 문수사로 마지막 단풍을 보려고 중부고속도로를 들어섰다. 오창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는 내비게이션을 실행하려고 문수사를 입력하니 해남 문수사가 없다. 전국 30여 개의 문수사가 뜨는데 해남 문수사는 없다. 왜 해남으로 알고 있었을까.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고창의 문수사가 가장 그럴듯해 검색을 해보니 단풍 명소로 유명한 그 도량이 맞다. 내 염두에 있던 문수사가 해남이 아닌 고창이었다. 어이없으면서도 한층 가까워진 여정에 오히려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해남보다 고창이 왕복 세 시간이나 더 짧다. 명성은 거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사찰이지만 또 한 해 중 이맘때 사람들이 밀려드는 반짝 특수 시즌이다. 입구에는 들고나는 차량을 관리하기 위한 인력도 배치되어 있다. 과연 단풍 명소임을 실..

팔공산 환상의 단풍나무거리

나는 단풍나무를 젤루 좋아합니다. 근래 배롱나무에 꽂히긴 했지만 역시 으뜸은 단풍나무입니다. 선연한 가을의 붉은 잎도 물론 좋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여름의 초록 잎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소싯적엔(?) 그저 단풍이겠거니, 차도 막히고 불편한데 무신 단풍놀이고? 북적대며 가을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까짓 게 다 뭐야. 동료들과 방에 처박혀 고스톱으로 단풍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이제사 단풍, 그리고 다른 가을의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을 깨닫고는 행여 가을을 잃어 버릴까 문밖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청춘시절, 그것이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어리석었던 자신을 질책하기도 합니다. 팔공산 단풍길을 일구월심 기다려 다녀왔습니다. 파계사에서 동화사까지 이십..

부석 은행나무길

참 희한한 일이었다. 내가 그 길에 들어서자 마자 바람이 몹시 불기 시작했다. 마치 언제부터 불고 싶었는데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은행잎이 어지러이 흩날려 정신이 아뜩하다. 얼핏 노랑나비 떼의 군무 같다. 길 위에도, 지붕 위에도, 자동차 와이퍼 위에도 날려 앉았다가는 세찬 바람에 또 날아가 버리는 중이었다. 나의 착각이었다. 바람은 나를 기다린 건 아니었다. 언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는지 은행나무 우듬지는 벌써 앙상한 나뭇가지인 채로 빈 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그러고 있었는 갑다. 여기는 영주 부석. 부석사라는 사찰로 유명하지만 매년 이맘때면 면소재지에 가로수로 늘어선 은행나무의 풍광이 멋진 길이다. 이 길을 걷노라니 내가 속한 이 세계는 단지 노랑만으로 가득한 공간인 것 같..

독립기념관 단풍나무 숲길

예전에는 꽃이 만발한 봄날도 단풍이 새빨갛게 물든 가을날도 별 감흥없이 심상하게 맞곤 했다. 봄인가보다, 가을이네. 그저 그거였다. 오히려 이제 이만큼 나이 먹다 보니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센티멘털해진다. 단풍은 언제쯤 절정일까 일기예보에 집중하기도 하고 이번 주를 놓치면 이 가을을 영영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조바심도 갈마든다. 내게 남은 가을이 소년시절 적처럼 하 많이 남아있는 게 아니라는 무의식의 조급증임을 안다. 그러니 이 귀중한 가을을 예전처럼 허투루 보내고 말 수는 없는 절박함이기도 하다. 독립기념관의 단풍숲길이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예의 언제쯤 단풍이 들까 노상 검색하다가 정한 날이 11월 6일이었다. 혼자 가도 좋지만 카페에 정기적으로 깃발을 드는 입장이니 이걸로 스..

10월 안성팜랜드

안성팜랜드를 지난 8월에는 유명한 해바라기를 보고 왔는데 당시 무슨 이벤트 행사기간이었는지 입장권을 한 장 더 주는 거였다. 12월 31일까지 유효기간인 것을 추운 겨울에야 그닥 볼 만한 게 없을 것 같아 10월 어느 날 다시 방문하다. 역시 명불허전 아름다운 풍경들. 유럽풍의 이런 이국적인 풍경들이 참 좋다. 갑자기 닥친 한파가 여러 날 이어지면서 나들이객들의 옷차림이 영락없이 겨울이다. 음 가을도 끝나가는 분위기다. 안녕 여름... 알렉산드라 : 지난 여름의 왈츠

배추고도 귀네미 마을

저 많은 배추를 누가 다 먹을까. 1박2일에 방영된 후로 유명해져 한때 그럭저럭 호기심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기도 햇던 곳이다. 이 곳에 올라보면 그 독특한 지형이 한번도 안가본 안데스산지 같은 풍광이다. 관광객이 보기엔 멋진 뷰지만 이곳은 뜨거운 뙤약볕 아래 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잇는 곳이다. 어디라고 그렇지 않을까. 시원하게 그린색으로 펼쳐진 전원풍경이 도시인들에게 낭만적인 정경이래도 거기 엎드려 일하는 농부들은 뼈 빠지는 삶의 터전인 것이다. 몇 년 동안 여름철이면 하장 일대에서 배추작업을 했었다. 그때 이 귀네미 마을에서도 몇 번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등이 휠 것 같은 힘든 노동의 날들이었다. 보기엔 아름답지만 저 가파른 자드락 돌밭에서 비료를 지고 오르내리는 일은 진정 막장인생의 ..

송지호연가

80년대 초반 미애라는 여가수가 있었다. 크게 뜨지는 못했지만 당시에는 라디오와 TV에 자주 출연하는 등 짧은 기간이나마 제법 인지도가 있었다. 가창력이 있어 좀 빛을 볼 줄 알았더니 슬그머니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부른 로 인해 강원도 고성에 그런 호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시 송지호를 가다.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서 바라보는 풍취는 그저 그렇다. 건물이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이 너무 많아 조망이 좋지 않다. 그냥 호수 둘레를 걷는 것이 좋다. 송지호는 석호다. 모래가 쌓여 가두어진 호수다. 두 눈이 파래지도록 여름의 진초록이 아름다운 호수다. 관광객이 떼 지어 몰려들 만큼 알려지지 않아 아직은 청정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호수 주변엔 드넓은 습지가 둘러싸고 있다. 보통은 송지호만 둘러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