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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올레길

육지에서는 여러 날 참혹한 산불의 재앙이 이어지고 있는데 먼 나라인 듯 제주 섬은 고요하고 따스하게 봄이 한가득이다. 이처럼 고즈넉하고 따스하게 봄을 맞고 싶은데 우리의 봄은 왜 매양 이리도 아픈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천안함 세월호 제주4‧3 5‧18 그리고 봄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일곤 하는 동해안 산불. 또하나, 윤석열 당선. 시일야방성대곡 암울한 봄이다. 섬은 내내 강풍이 몰아쳤다. 이놈의 바람 때문에 울진삼척의 참상이 극을 이루었다. 날은 완연한 봄이건만 강풍 때문에 추웠다. 봄이겠거니 하늘하늘한 옷차림으로 한껏 멋내고 건너온 아가씨들이 날씨 이변에 움츠러든 모습들이다. 우도. 제주 올레길 중 가장 걷기 좋고 풍광도 빼어난 코스인 것 같다. 유명한 서빈백사해변의 흰 모래도 아름답지만 섬 동쪽..

2월과 함께 겨울도 끝났다.

오랜만에 예술의전당에서의 클래식 감상. 코로나 이후로 공연 횟수도 줄었고 입장 관객수도 제한돼 왔다. 이번에는 작심하고 두 달 전에 일찌감치 예매를 했다. 자리도 아주 앞자리. 그간은 늘 뒷북을 쳐 그 많은 로얄석을 다 놓치고 뒤쪽이나 양 가장자리 쪽 자리만 겨우 앉았었다. 클래식 공연이야 음악을 들으면 됐지 앞자리면 어떻고 뒷자리면 어때? 하지만 음악을 들으려면 집에서 유튜브로 들으면 되지 뭐러 비싼 돈 내고 공연장엘 갑니까. 연주자들의 모션 하나나라를 현장에서 직접 보며 생생한 음질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음악 외에도 관객들의 열기 또한 현장 아니면 느낄 수 없다. 지휘자의 퍼포먼서는 또 얼마나 멋진가. 하루 종일 하늘이 회색빛으로 낮게 내려앉았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딱 2월의 날씨다. 관객제..

졸업

졸업식날 학교 앞에는 꽃과 졸업장통을 파는 사람들로 장사진이어서 그 풍경만으로도 분위기가 흥성했다. 더불어 교정에는 사진사들이 북적거렸고 좀 있는 집 애들은 부모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와 찍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미소만 짓게 만드는 오래전 풍물이 되었다. 졸업 풍경도 변했고, 코로나가 창궐한 지금은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학부모 없이 약식으로 간단하게 하고는 졸업사진은 집에 와서 엄마가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참으로 불행한 세대다. 아이들도 그렇고 가장 안타까운 건 대학입학생이다. OT 도 하고 싶었고 MT도 가고 싶었고, 대학생이 되면 가장 빛나는 청춘시절을 보낼 거라 꿈꿨는데... 참으로 불행한 세대다. 졸업을 하고 나서 입때껏 한번도 모교를 가보지 않았다. 그 근처라도 가질 않았었다. 나이 들..

2월, 무주 금강변을 걷다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고 시간은, 손짓해 나를 부른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고 시간은 그저,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 속절없이 흐른다. -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노래 노랫말 중에서 차를 타고 휙휙 지나다니며 보던 금강변. 이번에 그 유장한 물줄기를 바로 곁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이었다. 메마른 흙먼지 흩날리는 고적한 이런 계절엔 생명력 충만한 기운을 느끼러 강변으로 가자. 그곳 서덜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강물과 세월이 더불어 유장하게 흐르는 삼라만상을 느낀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여울져 흐르는 물은 사실은 하루 종일 강안의 모든 것들과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엔 증발하여 사라지겠지.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니고 애매한 계절이다. 마치 목적 없이 길..

협곡열차를 타고

기차는 교통수단의 하나지만 목적지 없이 그냥 기차여행 자체를 좋아합니다. 오래전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시베리아횡단열차를 동경했습니다. 막연히 동경만 했지 막상 떠나는 걸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작금의 팬데믹은 이제 그 실행할 작심마저도 무질러 버렸습니다. 그래도 머지않아 동경이 현실 되는 날이 올 것을 희망합니다. V-Train을 타고 왔습니다. V는 협곡을 의미하며 우리말로 하면 ‘협곡열차’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백두대간 첩첩산협을, 그야말로 V자 같은 협곡에 기찻길이 있어요. 예전에 영암선이었던 이 철도는 태백과 인근의 탄광에서 검은 진주를 실어내며 호황을 이룰 때 참 열심히도 달렸습니다. 석탄산업의 사양으로 이 노선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그 사이 한국의 철도 인프라도 KTX 중..

바람 속을 걸어가... 양구 펀치 보울

입춘 날이었습니다. 봄은 아직 저 멀리 있고 한창 깊은 겨울 속에 들어 있는 저 북쪽 땅 양구 해안, 거기다 해발 500미터의 고분지, 펀치 보울입니다. 해안면에서 군복무를 했다는 예전 회사동료는 춥고 고생했던 이야기만 늘어놓아서 내게는 아주 몹쓸 전방 황무지 땅이라는 이미지만 잔뜩 박여 있었습니다. 그 친구도 그곳이 펀치 보울이라고 불리는 걸 몰랐던 모양입니다. 열이면 열 다 ‘펀치볼’이라 하는데 ‘펀치 보울(punch bowl)’이라 해야 맞는 표기입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화채그릇’이란 말인데 제 눈으론 먼 옛날 아주 거대한 운석이 쿵, 하고 쩔어져 움푹 패인 것 같은 지형입니다. 같은 나라 땅이면서 멀게만 여겨지던 펀치 보울을 우정 작심하여 허위허위 올랐습니다. 군장병들 즐비한 동토의 황무지? ..

대청호수 호반낭만길

호수의 고요함은 여름보다는 가을이, 가을보다는 겨울이 으뜸입니다. 이른 새벽 자욱한 물안개를 보는 게 내 소박한 로망의 하나지만 원래가 아침 잠이 많고 게으른 탓에 동트기 전 호숫가에 닿아 서는 게 요원합니다. 비록 새벽 물안개는 못 보지만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호수의 바람이 소슬하게 가슴에 들어옵니다. 알싸한 그 느낌에 머리가 선득해집니다. 기분 좋은 선득함입니다. 대청호 둘레 거리가 5백 리라고 하는데 언제 시간적 여유가 되면 그 모두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날은 가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5백 리 여러 구간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찾는다는 4구간 을 이번에 둘러 봅니다. 과연 그 이름에 어울리게 낭만적인 호반의 정취가 가득합니다. 날이 제법 추워서인지 사람들의 인적도 없는 고즈넉하고 ..

한국도로공사 : KGC인삼공사

어느 정도는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도로공사의 일방적 완승이다. 선두 현대건설이 워낙 앞서 있어서 그렇지 현대를 빼놓고 보면 도로공사는 막강한 전력이다. 정대영과 박정아의 블로킹이 국내 최강이다. 이날도 두 선수의 위력적인 블로킹에 인삼공사는 제대로 된 공격 한번 못해보고 3대0 셧아웃이었다. 도로공사는 수비가 안정적이다. 그게 전력의 핵심이다. 리시브와 디그가 잘 되지 않으면 세터가 좋은 공을 절대 올릴 수 없다. 그러면 당연히 공격이 안 된다. 경기를 절대 이길 수 없는 거다. 그게 기본이다. 화려하지 않은 것 같지만 기본이 탄탄해야 그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좋은 집을 지을 수가 없다. 가장 단순한 진리인데 팀들은 수비보다는 우수한 세터나 강력한 스파이커에 더 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