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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도담삼봉

단양군에서는 이 도담삼봉을 단양 명소 제일 으뜸으로 선정하고 홍보하고 있다. 글쎄다. 단양이 워낙 명승지가 없는 건지 내 보기에 이게 첫번째라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그랬는데 예전의 사진을 보고는 과연 명승지라는 걸 비로소 인정한다. 충주댐이 생기기 이전의 도담삼봉은 가히 절경이다. 환경단체에서 또는 내가 왜 댐건설을 반대하는지 명분이 선다. 물에 잠긴 도담삼봉은 더이상 단양제일경이 아닌 것이다. 어디 충주댐 뿐이겠는가.

원주 뮤지엄산

오랜만에 유정으로부터 전화. 언뜻 기억은 희미하지만 최소 2년은 넘은 것 같다 그를 만난 지가. 돈거래를 하는 사람은 만나기 불편해 표 안나게 외면했었는데 원주 새벽시장을 구경 가자고 전화를 해 왔으니 차마 거절은 못하여 정말 오랜만에 두 사람만의 여행. 꼭두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양평에서 그와 만나 차 하나를 타고 새벽시장 둘러보기. 그리고 뮤지엄산. 유명소라 익히 이름은 들어 알고 있어 언젠가는 가 보리라 막연한 계획을 갖고는 있었는데 덕분에 방문. 뭔가 아우라는 있는 것 같은데 범부의 눈으로는 당최 알 수 없다. 백남준의 작품을 볼 때처럼. 백남준의 작품이니 고품격 걸작이려니 짐작만 하지 정작은 어떻게 감상해야 그 진수를 누낄 수 있는 건지 난해하기만 했던. 뮤지엄산 방문기도 역시 그렇다. 내 심..

보은 말티재

어느새 몸 오싹하게 아침공기가 싸늘하다. 법주사 입구 오리숲길은 겨울 같은 느낌. 이 알싸한 느낌이 좋다. 정신이 맑다. 이 청량한 숲길은 월정사 숲길과 더불어 가장 힐링이 되는 길이다. 오늘은 이 길이 아니라 법주사로 들어가는 관문, 말티재가 목적지다. 함양의 지안재 흑산도의 열두구비길과 더불어 3대 구불길이다. 이라는 테마로 포스팅하지만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보는 뷰 말고는 그닥 볼 건 없다. 전망대도 최근에야 생겼으니 그 전에는 길이 구불거린다는 것만 짐작할 뿐 그것을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오르내리는 차들만 힘겨울 뿐이었다. 지금도 역시 운전하기 난감한 열구비 꼬부랑길이다. 걷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길이 ‘아름다운 길’이고 말티재는 한 장의 사진이 아름다운 길이다. 고갯마루에에 만발한 가을꽃들이 선연..

선운사 꽃무릇을

이태 전 가을 이맘때 영광 불갑사의 꽃무릇을 보았지요. 불타듯 빨간 촛불들을 난생 처음 대했습니다. 그 강렬한 충격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올해는 고창 선운사를 갔습니다. 선운사의 꽃무릇이야 워낙 유명한 곳이니 두말할 필요 없으리라 짐작은 했었지만 실제로 본 그곳 꽃무릇은 참말 장관이었습니다. 국내 최대 규모라고 해요. 과연 불갑사의 꽃무릇을 본 눈에 선운사의 그것은 또한 뭐라 표현할 수 없어 후기를 쓰기가 난감합니다. ‘꼭 사람이 활활 불길 위를 걷는 것 같아’ 지인에게 보낸 이 한 줄 문자가 내가 끄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었고 지금 보니 나름 적절하고 괜찮은 소감인 것 같습니다. 눈가는 대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 여러 장 담아와 풀어 놓으니 만족할만하게 사진들이 잘 나왔습니다. 어쭙잖은 후기는 ..

지금은 메밀꽃 질 무렵

이효석의 소설을 다시 읽어 본다. 겨우 4장 분량 정도의 짧은 소설이지만 읽을 때마다 전에 못 보았던 문장이나 구절이 새록새록 발견된다. 장돌뱅이 허생원이 청주 사람이면서도 늘 평창과 그 일대의 장을 돌아다닌 이유가 있었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 그리운 고향이었다" 직업으로서의 숙명의 길이 아닌 여행의 길로 강원도의 산천을 택한 것 같다. 언제부턴가 도보여행에 대한 현대인들의 인식이 새롭게 변했는데 허생원은 이미 그때 ‘길 위의 여행’을 즐겼던 것 같다. 메밀은 예전에 가난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렇다 할 땅뙈기 없는 강원도 산골의 무지렁이들이 평생 가난을 벗지 못하고 땅에 엎디어 심어 먹은 게 그저 감자요 옥시기요 메밀이었다. 척박한 자드락 돌밭에서 거둘 수 있는 건 ..

들길 따라서 비내섬

여긴 비내섬이예요. 섬이라고 해서 웅숭깊은 대양 가운데의 거창한 그런 섬이 아니고 유장하게 흐르는 남한강 어느 물굽이에 하나 떠 있는 평범한 작은 섬입니다. 주말이면 어디로든 가방 메고 떠나곤 하지만 가끔 정한 데가 없거나 혹은 왠지 움직이는 게 귀찮아져 아무 것도 안하고 멍때리고 싶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찾곤 하는 충주의 섬입니다. 집에서 멀지 않아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라떼커피 사들고는 하루종일 쉬다 오는 곳입니다. 전혀 인공의 손길이 가지 않은 곳. 그래서 세련되고 고상한 걸 좋아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오지 않는 곳입니다. 작은 섬이라고 했지만 한바퀴 돌아보는 데 두 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산책도 하다가 풀숲에 앉아 벽공을 보며 오랫동안 멍때리기도 하고, 들고간 책을 읽기도 합니다. 그..

안성 해바라기

해바라기의 계절. 1983년이었던가.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 를 보았다. 이미 전성기가 한참 지난 옛날 배우를 개봉관에서 보다니. 기실 70년에 제작상영했던 영화를 나중에 재개봉한 거였다. 소피아 로렌 특유의 무표정 연기는 정말 좋았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건 역시 광활한 해바라기 들판이다. 그것은 흔히 우리가 아는 노란색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오렌지빛 해바라기다. 거대한 바람이 들판을 휩쓸며 지나갈 때 일렁이던 해바라기의 물결. 그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돈값(?)을 했던. 우리나라에는 그런 광활한 해바라기밭이 없다. 그리 크게 농사를 지을 리가 없다. 다만 볼거리 차원에서 가꾸는 해바라기 명소들이 있다. 안성 팜랜드. 역시 보기는 아름답지만 영화에서 느끼는 광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