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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실의 여름? 혹은 가을

언젠가는 기후로 인한 대재앙이 올 것이라고 예견들은 해 왔지만서두디드어 폭염 속의 추석을 맞는 시대가 왔다.  경북 예천 금당실 마을의 추석 밑 풍경들.    사람만 덥지 자연은 제 루틴대로 도래해산내들과 시골마을은 가을 풍경이 완연하다. 어느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 마루에 어머니가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그 팔베개를 누워 여름의 단잠을 자던 시절이 있었다.툇마루에는 갓 따온 봉숭아 꽃잎을 찧어 손가락에 처매는 누이들의 정경도 눈앞에 암암하다.                      김상희 : 팔베개

화양구곡에 내리는 비

괴산 화양구곡입니다.몇 년 전 한번 가보긴 했지만 나뭇가지에 눈도 틔지 않은 3월이라 계곡은 메마르고 쌀쌀했었습니다.여기 여름 숲은 어떨까 궁금해하면서도 가까운 곳이라는 안일함으로 이후 한번도 가보지 않았어요. 더 먼 곳 충주로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봅니다.여름 끝자락이라지만 숲의 초록은 한참 더 지나야 퇴색합니다. 곧 비 뿌릴 것 같이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습니다.뽀얀 이내가 서리고 습기 가득해 역시나 무더운 날입니다.소나기 한바탕 내렸으면 좋겠는 습윤한 숲입니다.   명산은 명산이라 속리산에서 내려온 계곡의 수려함이 명불허전입니다.겨울의 적막도 말할 것 없고 여름의 무성함도 역시 좋습니다.혼자 걷는 길도 고적하지 않고 풍성합니다. 평일인데다 날도 궂은데 구곡으로 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골목투어 삼척] 정라진 나릿골

삼척항에서 올려다보이는 언덕빼기마을, 나릿골> 이야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어 한번 가보려고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실은 그간에도 갈 생각은 몇 번 했었지만 워낙 폭염이라 길을 걷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자칫 길바닥에서 쓰러질 수도 있는 세월이라.길을 좋아하는 사람이 길에서 죽는 게 영광이라고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더구나 노인 하나 온열질환으로 쓰러졌다는 뉴스는 아무래도 모양이 빠집니다.  폭염도 좀 누그러졌습니다.이번 정기도보 답사를 떠나면서 강원도 가는 김에 그곳엘 들르려고 우정 행장을 차렸어요.그치만 같은 강원도 지역이라도 삼척과 고성은 엄청 멀어요.뉴욕을 가는 딸내미한테 미국 간 김에 엘에이에 있는 이모한테도 들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

동강 그리고 칠족령

오래전에,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동강댐 건설이 기획 단계에서 백지화되었다.가끔 동강 길을 갈 때마다 얼마나 그게 잘한 결정인지 절감하곤 한다. 세상이 파괴의 시대에 들었어도 이 강은 여전히 태초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내가 정선에 살 때만 해도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오지였는데 지금은 래프팅을 비롯해 전국에서 트레킹족들이 많이 찾아오는 동경의 땅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그나마 환경이 덜 훼손된 우리 최후의 오지로 남았으니지나고 생각하면 동강댐 건설계획은 엄청난 파괴의 음모였다.  칠족령을 올랐다.문희마을 쪽에서 백룡동굴을 지나 오르는 코스가 있어 보통은 그리로 드나들지만 나는 연포마을을 들러 그 너머 반대쪽으로 올랐다. 아찔한 뼝대 위 벼룻길을 걷는다는 건 탐험의 길을 나선 모험가처럼 가슴 떨리는..

[도시투어 영천] 지붕 없는 미술관 가래실마을, 그리고...

영천 여행.별별미술마을이라 하는 가래실에 도착했다. 안동 권씨, 평산 신씨, 영천 이씨의 집성촌이며 재실과 정자, 가묘 등의 전통문화자원들이 있는 마을이다.옛 정미소 우물, 토성, 폐가 등이 산재해 있다. 여느 곳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농촌마을이지만 여기는 세련된 예술공간이다.경주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하듯 이 마을은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한다.특구로 지정한 곳은 아니고 원주민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 틈틈이 벽화와 설치공예 등이 전시되어 있고 공예체험장 역사박물관 미술관 작업실 카페 등이 들어와 있다.                                       여름 한낮의 뙤약볕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무덥다.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비와 폭염이 갈마드는 나날이다. 머리를 태울 듯한 햇빛에 습기가..

김민기의 고향 함열

하릴없이 심심해지자 친구는 남춘천역 옆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카페 이름이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였다.이름도 참 별나다고 했었는데 김민기의 노래에 나오는 가사인 걸 나중에 알았다. 그때까지 김민기라는 이름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나 역시 전혀 몰랐었다.나보다 한 해 먼저 대학에 들어간 그 친구는 대학가에 돌던 주체사상 등 불온문서와김민기 양병집 등 활동금지된 대중가수들까지 훨씬 많은 문물을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처음으로 김민기라는 사람을 알았다. 김민기가 족쇄에서 풀린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였다.한국문단 최고의 서정시인인 정지용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가장 감수성이 풍부해야 할 우리들의 청소년기는 그렇게 암울했었다. 김민기는 평생을 두고 단호하게 말했다.난 민중가수가 아닙..

비 내리는 날 봉선사

전에는 무료였던 주차장이 얼마 전부터 유료로 바뀌었다. 아침부터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어두침침했다.날이 궂은데도 사람들이 많다.봉선사는 사찰이라기보다는 시민공원이다. 경내가 넓고 절의 상징격인 연못이 있어 여름날의 가벼운 산책 장소로는 그만이다.연꽃이 하나둘씩 피기 시작했다.          봉선사는 대개 한 번쯤은 가봤을 것이다.또 얽힌 추억 한 자락은 다 있을 것이다.우리의 소소한 추억들도 숱하지만 유명인들의 일화도 많다.  해방이 될 무렵 친일행각의 이광수는 근처 사릉에 숨어 살았다.당시 봉선사 주지는 운허 스님으로 이광수의 먼 친척이기도 했다. 해방이 되자 운허의 주선으로 봉선사에 은거하다가 6‧25 때 납북되었다. 유현상과 최윤희가 이곳에서 비밀결혼식을 올려 유명해지기도 했고조용필도 이곳에서 결..

정선 정암사

폭우가 내린 후 온 골짜기가 소란스럽다.물은 정암사 담장을 쓸어 버릴 기세로 세차게 쏟아져 내린다.장마가 잠깐 멈추고 햇살이다. 정암사.정선 살 적에 어쩌다 손님이 오면 구경시켜 주는 곳이 아우라지와 이곳 정암사였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지은 사찰로서 어쩌고저쩌고...수마노탑은 마노로 쌓아 올린 탑으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으며 어쩌고저쩌고...이런 건 별로 재미없다. 그저 담장을 덮은 이끼라던가 경내의 고요한 적요감 따위가 나는 좋았었다.        오랜만에 찾은 정암사는 그러나,그간 많은 불사가 있어 예전의 호젓한 사찰이 아니었다.전각 당우도 몇 개 더 들어섰고 그 외 잡다한 시설물들이 들어차 답답했다.               수마노탑으로 오르는 오솔길로 접어든다. 내가 정암사를 자주 찾..

드디어 경회루에 오르다

열 번도 더 시도했던 것 같다.다들 어찌나 빠른지 소수에게만 허락하는 경회루 방문이 나한테는 요원해 보였다.여러 달의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예약 성공했다. 이게 그리 노력을 집중할 만큼 가성비가 좋은가 생각도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한번 들어가 볼 기회는 평생 없을 테니 소중한 기회이기는 하다. 예전 만원 짜리 지폐에도 들어 있던 경회루였는데 이젠 그 가치가 떨어졌는가 지금의 신권엔 대신 혼천의가 들어가 있다.     역사는 오래여도 지금 건물은 160여 년밖에 안 된다.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그간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던 우리 경회루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였다. 사방이 탁 트여 있어 폭염의 오후에도 시원하기 그지없다.누워 오수를 즐기고 싶은 여유로운 공간이다.방문객에 주어진 시간은 40분 밖에 안된다..

엿보기 마을, 부여 규암

부여읍에서 백마강 건너로 보이는 마을이 엿보기마을, 즉 규암면이다.예전 규암나루를 랜드마크로 한 상업경제의 중심지였다.이웃 강경포구를 잇는 뱃길로 홍산장 은산장 군산 등지로 활발하게 물산이 이동했던 요충지라 경제 뿐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규암나루에는 자온대라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이 바위가 무언가를 엿보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이 마을 이름이 ‘엿보기마을’이 되었고 한자로는 규암(窺巖)면이 되었다고.자온대는 이 마을의 또다른 별칭이기도 하다.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였던 그 역할과 명성은 이제 쇠락했지만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어 여행자에게 레트로 감성을 선사한다. 그 거리를 걷는다. 진종일 비가 내린다.          번성했던 옛 영광은 뒤안길로 사라지고 모든 주도권은 강 건너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