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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동학사

춘마곡 추갑사라고 하던데...내 사견으론 춘동학 추갑사가 더 적당할 것 같다.동학사 일대의 벚꽃 흐드러진 정취가 봄의 절정이다. 동학사에서 나와 왼쪽 산길로 들어서면 삼불봉을 넘어 갑사로 넘어가는 루트다.그 길을 오른다. 상원암의 남매탑을 보고 올 요량이었다. 상원암으로 가는 길은 내내 가파른 오르막이다. 시종 돌과 돌계단으로 이어져 있다.아래는 이미 봄도 무르익어 벚꽃이 하롱하롱 지기 시작했는데 이곳은 여전히 냉한 겨울 풍경이다.지천으로 널려 있는 현호색만 아니라면 짜장 겨울이다.그 풍경 속에서 현호색의 파란빛이 더욱 새뜻했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오르막길.숨이 차고 옷이 후줄근히 젖는다. 남매탑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기운 뺄 일은 아니다. 가성비가 약하다. 이윽고 먼발치..

기레기

이승만이 방귀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박정희가 방귀뀌자 보안 유지해 전두환이 방귀뀌자 제가 뀌었습니다. 노태우가 방귀 뀌자 니가 뀐거로 하자 김영삼이 방귀 뀌자 니는 와 안뀌노 김대중이 방귀 뀌자 방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노무현이 방귀 뀌자 똥을 쌌다고 기사가 났다 이명박이 방귀 뀌자 새로운 향수라고 기사가 났다 박근혜가 방귀 뀌었다고 기사가 났자먼 실은 뒤에 앉았던 최순실이 뀐거였다 문재인이 방귀 뀌자 지렸다 하고 윤석열이 방귀뀌자 뿡이 아니라 그냥 피식이라며 냄새가 안났다고 기사를 썼다.

영주 서천변 벚꽃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라지만내 유년의 고향 산골은 봄꽃이 별로 없었습니다.진달래는 지천이었고 산내들에 개복숭아 꽃이 흔했고 뉘집 울안에 호리호리하게 선 배나무의 하얀 꽃, 써레질 끝난 무논을 날아다니며 제비들이 한창 집들을 지을 무렵 뒤꼍의 앵두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정도였습니다. 툇마루에 앉아 하얀 앵두꽃잎이 사르르 흩날리는 걸 보다가 졸음에 겨워 사르르르 잠드는 귓결에 개울 건너 논에서 소를 부리는 아버지의 메나리소리가 들렸습니다. 버찌 이야기를 알긴 했지만 어떻게 생긴 건지 보질 못했고 그 꽃도 마찬가지였습니다.촌사람들도 간혹 이야기를 할 정도로 창경원 벚꽃은 너무도 유명해서 살아생전 한번 꼭 보고 싶어하던, 시골사람들의 일종의 버킷리스트였습니다.일생을 향촌에서 한번도 벗어나 보지 못하고 마..

충주 하방천 벚꽃

생경한 충주에 이사를 오고 당연히 처음엔 길을 알지 못했다가 1년을 살다 보니 주요 장소나 대로변은 대충 알게 되었다. 작년 봄에 기차를 타고 오다가 충주역에 거의 다 도착해 가는데 창밖으로 길게 뻗어 있는 벚꽃길을 보았다.옳거니!충주에도 벚꽃 명소가 있었네. 염두에 두고 내년 봄에 꼭 가봐야지, 벼르고 있다가 또다시 봄.하방마을의 벚나무길을 걸었다.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마음만 먹으면 내일도 모레도 산책 삼아 다녀오기도 쉬운 거리다.  인구가 적은 소도시 충주로 알았지만벚꽃길에 쏟아져 나온 인파를 보니 작은 도시라는 이미지가 무색하다.한산한 평일인데도 이 정도면 주말엔 어떨지 대충 가늠해 본다. 화무십일홍.늘 그렇듯 이 고운 날들은 며칠 안 있어 끝날 테지.잠깐 인파 넘실대던 이 길도 일년 내내 아무도 ..

노랑이 있는 풍경, 응봉 언덕

노랑 별꽃의 세상.올해도 어김없이 개나리가 피었다.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운데 설상가상 산불의 참상이 일어났다. 세상의 어지러운 와중에도 노랑 꽃들은 이리도 피어나 마음은 우울해도 눈만은 환하게 밝혀 준다.너무 흔해 빠져 벚꽃만큼 우리가 애정하지는 않는 이 개나리는 실은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아주 진귀한 꽃이라고 한다.한국 특산종이고 우리나라에만 자생한다고 한다. 학명도 Forsythia koreana이다.우리는 그저 그랬는데 외국인들이 왜 그리 애정하는지 이제 알겠다.  활짝 핀 개나리를 보니 비로소 봄을 실감하겠다.음울하지만 그래도 노랑의 화사한 기운으로 화창한 계절을 맞으리.고흐가 사랑한 색,내가 좋아하는 색. 노랑.화해와 용서, 귀환. 산불은 지금도 맹렬히 번지고 있는 중이다.돌아가자. 재난이 종식되고..

3월에 눈 내리는 마을, 여주 루덴시아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 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 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      우리는 대개 이국적인 풍경을 동경하고 선망한다.외국인들이 경복궁이나 외암민속마을 등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우리가 유럽풍의 건물이나 마을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사대주의라기보다는 일상적인 것으로부터의 일탈 같은 것..

대구 홍매화

여기는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홍매화가 절정으로 흐드러졌습니다.올봄은 이제야 비로소 화신(花信)을 받습니다.붉은색 꽃송이들이 내뿜는 아우라는 말할 것 없이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가장 먼저 피는 매화가 이제 개화했으니 많이 늦기도 했고, 그 보다는다음 주면 모든 꽃들이 삽시간에 필 것 같습니다.동백 진달래 산수유 개나리 목련……언제부턴가 자연은 본연의 순서와 질서를 잃고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아무려나 한해 중 가장 화려한 날들이 시작되었습니다.아주 짧게 스쳐 지나가고 말,애절한 화양연화.                           안예은 : 적동

신두리 모래바람 속에서

바람이었네, 천둥이었네.   가슴 깊은 모랫벌을 쓸고 가는   가을밤의 폭풍이었네.   고목 사이 손을 뻗으면   새 한 마리   슬퍼도 울지 않는 둥지였네.   빗소리였네, 어둠이었네.   뱃머릴 흔드는   사나운 흐름이었네.   곤히 잠들었던 내 출항지   한 방울의 파문으로도   가라앉으려 하네.   바람은 없었네, 어둠은 없었네.   썰물과 밀물에 들고날   나의 길은 없었네.      성춘복 폭풍의 노래>    신두리 해변을 몇 번 갔었으면서도 유명한 사구(沙丘)에 들어가 보진 않았는데 과연 ‘한국의 사하라’란 별칭이 붙을 만합니다. 물론 사하라에 비견한다는 게 얼토당토않은 과장이지만,어느 특정한 부분만 확대해서 허언하면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겠어요.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보이지 않는다..

장화리 노을

예전에 바닷물이 허옇게 언 사진을 처음 보고는 얼척없다는 생각을 했었다.짠 바닷물이 얼 수가 있는가?이젠 자주 접하는 풍물이라 기이할 것도 없다. 워낙 추우면 소금물도 별수가 있겠는가.  강화도의 바닷가도 허옇게 얼었다.하필이면 제일 추운 날인데다 일망무제 배래로부터 휘몰아오는 바람은 내 겉살을 무자비하게 할퀸다. 그래도 길을 따라 오르내리다 보니 몸이 훈훈해져 견딜만했다.강화나들길 7코스다.   겨울 갯벌과 바다는 무채색이다.어떻게 보면 죽어 있는 세상 같다. 움직이는 생명체가 없다. 햇빛을 받아 반작거리는 윤슬이 있어 그나마 영이 도는 느낌이다.    나는 황량한 겨울 들판을 좋아한다. 게다가 이렇게 매서운 바람이 부는 들판을 한 점이 되어 혼자 걷는 것을 좋아한다.강화도는 섬이지만 곳곳에 이런 들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