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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속을 걸어가... 양구 펀치 보울

입춘 날이었습니다. 봄은 아직 저 멀리 있고 한창 깊은 겨울 속에 들어 있는 저 북쪽 땅 양구 해안, 거기다 해발 500미터의 고분지, 펀치 보울입니다. 해안면에서 군복무를 했다는 예전 회사동료는 춥고 고생했던 이야기만 늘어놓아서 내게는 아주 몹쓸 전방 황무지 땅이라는 이미지만 잔뜩 박여 있었습니다. 그 친구도 그곳이 펀치 보울이라고 불리는 걸 몰랐던 모양입니다. 열이면 열 다 ‘펀치볼’이라 하는데 ‘펀치 보울(punch bowl)’이라 해야 맞는 표기입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화채그릇’이란 말인데 제 눈으론 먼 옛날 아주 거대한 운석이 쿵, 하고 쩔어져 움푹 패인 것 같은 지형입니다. 같은 나라 땅이면서 멀게만 여겨지던 펀치 보울을 우정 작심하여 허위허위 올랐습니다. 군장병들 즐비한 동토의 황무지? ..

대청호수 호반낭만길

호수의 고요함은 여름보다는 가을이, 가을보다는 겨울이 으뜸입니다. 이른 새벽 자욱한 물안개를 보는 게 내 소박한 로망의 하나지만 원래가 아침 잠이 많고 게으른 탓에 동트기 전 호숫가에 닿아 서는 게 요원합니다. 비록 새벽 물안개는 못 보지만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호수의 바람이 소슬하게 가슴에 들어옵니다. 알싸한 그 느낌에 머리가 선득해집니다. 기분 좋은 선득함입니다. 대청호 둘레 거리가 5백 리라고 하는데 언제 시간적 여유가 되면 그 모두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날은 가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5백 리 여러 구간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찾는다는 4구간 을 이번에 둘러 봅니다. 과연 그 이름에 어울리게 낭만적인 호반의 정취가 가득합니다. 날이 제법 추워서인지 사람들의 인적도 없는 고즈넉하고 ..

한국도로공사 : KGC인삼공사

어느 정도는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도로공사의 일방적 완승이다. 선두 현대건설이 워낙 앞서 있어서 그렇지 현대를 빼놓고 보면 도로공사는 막강한 전력이다. 정대영과 박정아의 블로킹이 국내 최강이다. 이날도 두 선수의 위력적인 블로킹에 인삼공사는 제대로 된 공격 한번 못해보고 3대0 셧아웃이었다. 도로공사는 수비가 안정적이다. 그게 전력의 핵심이다. 리시브와 디그가 잘 되지 않으면 세터가 좋은 공을 절대 올릴 수 없다. 그러면 당연히 공격이 안 된다. 경기를 절대 이길 수 없는 거다. 그게 기본이다. 화려하지 않은 것 같지만 기본이 탄탄해야 그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좋은 집을 지을 수가 없다. 가장 단순한 진리인데 팀들은 수비보다는 우수한 세터나 강력한 스파이커에 더 집중..

청암사, 그리고 인현왕후길

김천의 수도산에 청암사가 있다.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의 이야기가 얽힌 사찰이다. 그리고 김천시에서는 이 근방 숲에‘인현왕후길’이라는 조붓한 오솔길을 냈다. 뭐 특별히 아름답다거나 하지는 않은 그저 평범한 오솔길이다. 그래도 청암사와의 인연과, 혹시 그 옛날 왕후가 울적한 심사를 달래며 걸었을지도 모르는 흔적을 느끼는 것도 나름 의미는 있을 것 같다. 이 도량에서 보살생활을 했던 지언 선배가 늘 이야기하더니 그게 바로 청암사였다. 그리고 인현왕후와 인연이 있다는 건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인현왕후는 민유중의 둘째 딸로 숙종의 왕비인 인경왕후가 일찍 승하하고 계비로 간택이 되었다. 숙종은 가례 전부터 나인인 장옥정을 총애하고 있었으나 어머니인 명성대비는 장옥정이 간특하고 악독하다 하여 궁 밖으로 내보냈다. 그..

안동역 아니고 모디684다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그 사람은 벌써 여러 번의 겨울을 보낸 시방도 소식을 모르겠다. 하기야 이 지방은 눈 한번 오지 않는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대설주의보가 있는 날 안동역엘 가니 여긴 쾌청하다. 남부 캘리포니아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어느 팝송도 있거니와 짜장 이곳은 눈이 없는 지방인가. 그런데 여긴 안동역이 아니다. 다른 곳에 새 안동역이 생기고 이곳은 역으로서의 흔적이 사라졌다. [모디684]라는 생경한 이름이 떡 하니 걸렸다. 지도에서도 옛 안동역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첫눈 내리는 날 만나기로 했던 그 사람은 여기가 아니고 신 안동역 앞에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의 바람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

당진 버그내 순례길

버그내는 삽교천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성지부터 시작하여 '한국의 카타콤바'라고 하는 신리성지까지 여러 성지를 잇는 일명 ‘순례길’이다. 크리스천이 아닌 내게 ‘순례’는 별 의미가 없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순례 목적으로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난 게 아니었을 것이다. 종교는 알지도 못하고 그저 ‘길’을 떠났을 것이다. 솔뫼성지 지나간 2021년은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특별희년이었다. El Bosco : Nirvana 이 노래는 스페인의 프로젝트 그룹 엘 보스코(El Bosco)와 엘보스코수도원 어린이성가대가 부르는 다. 니르바나(nirvana)는 열반 혹은 해탈이라는 불교 용어인데 기독교의 성가대가 니르바나를 찬양한다. 노래가사는 누가복음 21장의 내용으로..

KGC인삼공사 : 페퍼저축은행

이번엔 KGC인삼공사와 페퍼저축은행 경기 보러 대전 충무체육관. 예매한 자리를 찾으니 내 양옆에 관객이 앉아 있고 나는 그 사이에 앉게 돼 있다. 이런 코로나시국에 거리를 띄우고 자리를 배치하는 게 상식인데 이 사람들 미친 거 아냐? 다닥다닥 붙어 앉은 광경을 보니 몹시 께름칙하다. 둘러보니 텅텅 빈자리가 많은데 왜 매표를 이렇게 했는지 황당하다. 1세트가 끝나고 휑뎅그레 빈자리로 옮겨 앉았다. 표가 많이 팔리지 않은 경기라 빈자리가 많아 다행이었다. 누구나의 예상대로 인삼공사의 3대0 일방적인 완승이었다. 경기는 1시간 18분만에 끝났다. 가깝지 않은 거리를 부러 왔는데 너무 순식간에 끝나 버려 허탈하고 좀은 입장료가 아깝다. 하긴 예상 못한 건 아니다. 신생팀 페퍼의 전력이 너무 약한지라 이번 시즌에..

현대건설 : GS칼텍스

여자배구경기를 직접 돈을 내고 들어가서 보는 날이 오다니! 프로야구도 아닌, 남자배구도 아닌 여자배구를... 한데 이제 모든 스포츠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 여자배구다. TV중계도 안보던 내가 돈을 내고 들어가서 볼 정도면. 수원 현대건설과 GS칼텍스의 경기. 양강의 두 팀이라 관심도도 높았지만 관중석을 보니 과연 여자배구의 인기를 실감하겠다. 경기는 기대한 그만큼의 재미가 있었고 최강 현대가 승리했다. 그보다는 나의 관심을 끄는 게 있었다. 배구경기장에는 웜업존(warm up zone)이라는 게 있다. 경기에 투입된 6명의 선수 외에 나머지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공간이다. 예전엔 벤치에 앉았는데 언제부터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웜업존에서 휴식도 취하고 함성을 지르며 동료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