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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C인삼공사 : 페퍼저축은행

이번엔 KGC인삼공사와 페퍼저축은행 경기 보러 대전 충무체육관. 예매한 자리를 찾으니 내 양옆에 관객이 앉아 있고 나는 그 사이에 앉게 돼 있다. 이런 코로나시국에 거리를 띄우고 자리를 배치하는 게 상식인데 이 사람들 미친 거 아냐? 다닥다닥 붙어 앉은 광경을 보니 몹시 께름칙하다. 둘러보니 텅텅 빈자리가 많은데 왜 매표를 이렇게 했는지 황당하다. 1세트가 끝나고 휑뎅그레 빈자리로 옮겨 앉았다. 표가 많이 팔리지 않은 경기라 빈자리가 많아 다행이었다. 누구나의 예상대로 인삼공사의 3대0 일방적인 완승이었다. 경기는 1시간 18분만에 끝났다. 가깝지 않은 거리를 부러 왔는데 너무 순식간에 끝나 버려 허탈하고 좀은 입장료가 아깝다. 하긴 예상 못한 건 아니다. 신생팀 페퍼의 전력이 너무 약한지라 이번 시즌에..

현대건설 : GS칼텍스

여자배구경기를 직접 돈을 내고 들어가서 보는 날이 오다니! 프로야구도 아닌, 남자배구도 아닌 여자배구를... 한데 이제 모든 스포츠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 여자배구다. TV중계도 안보던 내가 돈을 내고 들어가서 볼 정도면. 수원 현대건설과 GS칼텍스의 경기. 양강의 두 팀이라 관심도도 높았지만 관중석을 보니 과연 여자배구의 인기를 실감하겠다. 경기는 기대한 그만큼의 재미가 있었고 최강 현대가 승리했다. 그보다는 나의 관심을 끄는 게 있었다. 배구경기장에는 웜업존(warm up zone)이라는 게 있다. 경기에 투입된 6명의 선수 외에 나머지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공간이다. 예전엔 벤치에 앉았는데 언제부터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웜업존에서 휴식도 취하고 함성을 지르며 동료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한다. ..

괭이부리말을 아십니까

괭이부리마을은 인천에 있다. 인천 사람들도 잘 모르던 그 마을이 세상에 알려진 건 김중미의 소설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이라는 오명을 받았고 지금도 역시 그런 곳. 에밀 졸라의 은 제목처럼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고상한 도시 파리의 하류층 인간상을 그린 소설이다. 가난에 찌들어 파멸해 가는 도시 빈민들의 비참한 이야기다. 괭이부리말도 가난한 마을이지만 에밀 졸라의 소설처럼 절망적이지 않다. 은 가난에 굴복해 살아가는 일말의 희망도 없는 군상들 이야기지만 은 가난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고 미래를 꿈꾸는 따뜻한 이야기다. 김중미 소설을 읽고 문득 그곳이 궁금했다. 소설이 히트하고 괭이부리말이 널리 알려지자 인천 동구는 이 마을을 체험하는 테마로 관광상품화하려 했다가 맹비난을 받고 철회했다. ..

젓 비린내 좋은 강경

태생이 강원도 깊은 산골인지라 산삼보다 구경하기 힘든 게 갯것이었다. 육고기도 귀해 기껏해야 어쩌다 손님이 오는 때 집에서 놓아 기르는 닭을 잡는 정도였다. 그렇지 않음 정기적으로 개를 달아매는 일이었다. 또 산에서 잡아온 꿩이니 토끼 등이 고기에 주린 촌사람들의 육식생활이었으니 그나마 육고기는 먹은 셈이었다. 그러나 갯것은 너무나도 귀했다. 가끔 미역국을 먹는 정도였고 식구 중 누구 생일 때면 미역국에 김, 그리고 짜디짠 고등어나 임연수였다. 산골에서 시내까지는 산넘고 물건너 머나먼 길이었고 새벽 조반을 먹고 떠난 아버지는 해가 저물고도 한참이나 돼 돌아왔다. 그럴 때 아버지 지게 등테에는 새끼에 엮은 고등어가 두어 마리 달려 있었는데 무더운 여름철이면 그게 물크러져 물이 뚝뚝 흐르기 일쑤였다. 심할 ..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길

왜 해남으로 알고 있었을까. 문수사로 마지막 단풍을 보려고 중부고속도로를 들어섰다. 오창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는 내비게이션을 실행하려고 문수사를 입력하니 해남 문수사가 없다. 전국 30여 개의 문수사가 뜨는데 해남 문수사는 없다. 왜 해남으로 알고 있었을까.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고창의 문수사가 가장 그럴듯해 검색을 해보니 단풍 명소로 유명한 그 도량이 맞다. 내 염두에 있던 문수사가 해남이 아닌 고창이었다. 어이없으면서도 한층 가까워진 여정에 오히려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해남보다 고창이 왕복 세 시간이나 더 짧다. 명성은 거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사찰이지만 또 한 해 중 이맘때 사람들이 밀려드는 반짝 특수 시즌이다. 입구에는 들고나는 차량을 관리하기 위한 인력도 배치되어 있다. 과연 단풍 명소임을 실..

팔공산 환상의 단풍나무거리

나는 단풍나무를 젤루 좋아합니다. 근래 배롱나무에 꽂히긴 했지만 역시 으뜸은 단풍나무입니다. 선연한 가을의 붉은 잎도 물론 좋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여름의 초록 잎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소싯적엔(?) 그저 단풍이겠거니, 차도 막히고 불편한데 무신 단풍놀이고? 북적대며 가을 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까짓 게 다 뭐야. 동료들과 방에 처박혀 고스톱으로 단풍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이제사 단풍, 그리고 다른 가을의 모든 것들의 아름다움을 깨닫고는 행여 가을을 잃어 버릴까 문밖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청춘시절, 그것이 조금 억울하기도 하고 어리석었던 자신을 질책하기도 합니다. 팔공산 단풍길을 일구월심 기다려 다녀왔습니다. 파계사에서 동화사까지 이십..

부석 은행나무길

참 희한한 일이었다. 내가 그 길에 들어서자 마자 바람이 몹시 불기 시작했다. 마치 언제부터 불고 싶었는데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은행잎이 어지러이 흩날려 정신이 아뜩하다. 얼핏 노랑나비 떼의 군무 같다. 길 위에도, 지붕 위에도, 자동차 와이퍼 위에도 날려 앉았다가는 세찬 바람에 또 날아가 버리는 중이었다. 나의 착각이었다. 바람은 나를 기다린 건 아니었다. 언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는지 은행나무 우듬지는 벌써 앙상한 나뭇가지인 채로 빈 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그러고 있었는 갑다. 여기는 영주 부석. 부석사라는 사찰로 유명하지만 매년 이맘때면 면소재지에 가로수로 늘어선 은행나무의 풍광이 멋진 길이다. 이 길을 걷노라니 내가 속한 이 세계는 단지 노랑만으로 가득한 공간인 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