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 2391

명동별곡 (明洞別曲)

내가 자란 춘천에도 명동거리가 있다.당연 춘천의 가장 번화한 거리여서였는데 내가 보기에도 화려한 최고 거리였다.그런데 가끔 서울서 온 듯한 아가씨들이 지나치면서 어이없어하는 웃음소리를 듣곤 했다. - 여기가 명동이야? 뭐 이래 꾸졌어! 그게 자존심 상하고 지방을 비하하는 것처럼 들려 불쾌했었다. 나중에 서울의 진짜 명동을 가 보고서는 그녀들의 반응을 이해하게 되었다.    明洞의 이름은.조선시대 明禮坊(명례방)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당시 명례방에는 종고개(鐘峴) 진고개(泥峴) 구리개(銅峴) 등의 고개가 있었다.니현은 땅이 질어서 진고개, 동현은 흙이 구릿빛이어서 구리개였고 약방이 즐비했다고 한다.종현은 임진왜란 때 명 군대가 주둔하며 숭례문에 있던 종을 걸어둔 데서 유래했고 지금의 명동성당 자리다.   ..

김제 귀신사

선득한 이름의 귀신사.선입감은 그렇지만 귀신사는 지나치게 조촐했다.섬뜩한 귀신이 아닌 귀신사(歸信寺)다. 지나치게 조촐하다고 말했지만 실은 20여 년도 더 전에 들렀을 때, 그땐 제법 음산한 느낌이었다.분명 그날의 내 심정이 음울해서였을 것이다.어디에고 마음 붙이지 못하고 쓸쓸했던 그 겨울이었다.공동체마을을 나와 여기저기 쏘다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귀신사였다.담장 밑에 눈이 두텁게 쌓여 있던 기억이다.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의 무대배경이 이 귀신사다.긴 분량에서 반 정도는 드러내도 될 것 같은 지루한 소설이다.그래도 소설 첫 문장에서 느닷없이 발견한 ‘귀신사’에 얼마나 반가웠던지.별것 아닌 것 같은 그 조촐한 도량에서도 문학의 모티프를 얻는 작가들의 능력에 존경심을 느꼈었다.     워낙 조촐하고 적막..

임을 위한 행진곡

TV는 연일 빨갱이들의 폭동을 보도했다. 악몽의 나날들이었다. 북한방송이 김일성이나 김정일의 동향을 보도할 때는 동영상이 아닌 스틸사진을 내보냈다. 정지사진이 전하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고 선정적이기 때문이다. KBS 역시 그랬다. 북한 지령을 받은 불순분자들의 폭력적인 스틸사진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은 공포에 떨었고 전두환의 군대가 그 폭도들을 쓸어 버리길 바랬다. 악몽의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된 광주는 살이 터지고 피가 흘렀다. 전두환 장군은 이미 방송과 언론을 장악하여 그에 맞서는 자가 전무한 상태였다. 국민들은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화려한 휴가가 끝나고 난 후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가장 비참한 역사를 보고 만다. 1980년 봄은 가장 비정한 봄이었다...

[도시투어 서울] 백사마을의 장미

백사마을에 가을이 끝나 가고 있었다.마지막 가을이고 마지막이 될 겨울을 맞고 있었다.  도시란 건설과 파괴의 되풀이다.청계천을 시멘트로 덮고 고가도로 숲을 만들더니 어느 날 고가도로는 다 허물어 버리고 청계천 뚜껑을 다시 열었다.젊은 때 내 회사의 본사가 청계천 고가도로 밑의 어느 사무실이었다. 가끔 본사 나들이를 할 때 허공에 걸린 고가도로가 인상적이었는데 지금은 그 위치가 어느 곳이었는지조차 모르게 바뀌어 버렸다.   원래는 경기 양주군 노해면 중계리 104번지였다.‘백사마을’의 이름은 이 번지수에서 유래되었다.1960년대 영등포 용산 청계천 등 서울 도심의 미화산업의 취지로 무허가 판자촌을 정비했다.그들이 강제로 쫓겨나 이주한 곳이 상계동 중계동 일대였고 백사마을 애환의 시작이었다.언덕빼기에 판자와..

구례구역의 사랑 노래

그날,   낙엽이 바람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처럼 몹시도 외롭던 날에,   마른 빵을 물도 없이 꾸역꾸역 삼키다가 울컥 목울대를 지르박 듯 눈물 비죽 흘리던 그날, 섬진강 강가에선 밤새도록 노랫소리 들렸다.   살인적인 더위는 밤과 낮을 안 가리고 숨통을 조이고 갈대밭이든 시궁창이든 사방에서 몰려나온 모기들이 기승을 떨치는 여름날이건만, 나는 덧없이 사라져가는 가을날의 낙엽처럼 몹시도 스산하고 쓸쓸했다.     역전 여인숙.   온몸으로 흐르는 땀으로 목욕을 하며 손바닥만 한 창문도 없는 3,000원짜리 그 여인숙에서 늦도록 잠을 못 이루고 강가 어디서 또 나처럼 고독한 청춘이 불러대는 노래를 들었다.      화개장으로 가신다꼬예?      전라도 땅인 구례에서 여인숙 아지매는 경상도 말을 했다.    ..

[도시투어 세종] 2층버스를 타고

2층버스를 타고 세종시 투어를 하려고 몇 번을 들어갔다가 다섯 번만에 성공했다. 첫 번째는 혹서기라 임시 휴행이었고,여름이 끝나기를 기다려 두 번째 예약을 시도했지만 이미 매진되어서 실패. (그러나 매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세 번째는 여유롭게 예약을 했는데 이틀을 앞두고 신청자 수가 적어서 운행을 취소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네 번째는 정상적으로 접수를 하고 조치원역까지 갔는데 시내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시간에 대지 못했다. (나랑 세종은 궁합이 안맞는가 보았다.) 비로소 다섯 번째 만에 2층버스를 탈수 있었다.  사방이 노출된 객실이라 이제 찬바람 불면 운행을 중단한다 하니 어쩌면 내가 참가한 건 올해의 마지막 시티투어일지도 모르겠다.  2층은 측면이 개방돼 있어 자칫 가로수 가지에 다칠 염려도 있..

영종도 구읍뱃터

영종도가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을까.본토에서 물리적으론 지척이지만 마음으론 먼 낙도 같았던 섬이었는데.오로지 여객선으로만 드나들었던 그 낙도가 하늘국제도시가 되었다. 이제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가 있어 무시로 드나들 수 있게 되었지만 구읍뱃터로 가는 길은 배로 건너는 게 가장 빠르고 비용도 적다.  월미도선착장에서 한 시간마다 출항하는 연락선을 탄다.기껏해야 15분 걸린다. 가을,날은 맑고 공기는 선선하다.    길만 있고 허허벌판이던 뱃터는 지금은 왁자하니 사람들의 핫플레이스다. 나는 한때 인천에서 노동자생활을 잠시 한 경력은 있지만 부속 도서에 관한 인연은 전혀 없어 이곳 구읍뱃터의 역사를 모른다.그래서 현재의 풍광이 참 좋다.   옛 구읍포구를 모르는 나는 떠들썩한 지금의  이 풍광이 좋다. 먹을 ..

[도시투어 수원] 나혜석 거리

거리는 여전히 뜨거웠다.9월이 가까운데. 이쯤 되면 정말로 추운 겨울이 그립지 아니한가.   청소년기에 남다른 독서열의 누나들 덕분에 책을 접하는 기회가 많았다.그때 접한 게 나혜석이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지금도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페미니즘이니 뭐니 잘 알지도 못했고, 아예 이데올로기 따위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 책은 저자의 역량 때문이었는지 그닥 딱딱하지 않게 읽었던 것 같다.책에 나오는 그의 시로 어설프게 작곡도 하나 했었는데 지금도 가끔 흥얼거리곤 한다. 책 내용은 재미 있었지만 나혜석이란 인물에 대해선 물음표다.흔히‘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스트’라는 수식어를 붙이긴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단순히 자신의 입신양명의 결과요, 이혼과 불륜을 서슴지 않은 여자였다.그 과정에서 물론 고..

[도시투어 서울] 신당동 개미골목

광희문은 한양도성의 사소문 중 남소문이다.풍수상 물이 빠져나가는 문이라 하여 사람들은 수구문(水口門)이라 불렀다.   저 광희문을 나가면 신당동이다.사람이 죽으면 도성 안에 묻을 수 없으므로 성밖에 장사를 지냈다.시신들은 대개 남쪽 수구문을 통해 성을 나갔다.그래서 시구문(屍口門)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광희문 밖은 무덤과 망자의 세상이었고 그들을 위해 무당들이 모여들어 신당을 차리고 무꾸리를 하였다.그래서 신당동(神堂洞)이 되었다. 해방을 지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없앤다고 바꾼 게 新堂洞이었다.이왕 바꿀 거면 참신하게 다른 이름으로 하든지 그대로 신당동이다.  광희문 밖은 사자들의 세계였다.    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천주교순교자현양관이다.그 뒤쪽으로 조붓하고 어지러이 골목길이 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