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놈들은 꼭 저녁이면 법석을 떨어댔다. 산골의 겨울은 참으로 길었다. 농한기이니 해가 떨어지면 할 일이 없어 초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부터 반자 위에서 쥐들의 난리굿이 시작되었다. 머리쪽에서 시작하여 우당탕탕 발치께로 뛰어간다. 간단없이 반대로 뛰어간다. 축구 경기..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20.03.25
도토리묵이요 산골의 가을은 추수가 끝났다고 한가해지지 않았다. 아버지와 형들은 겨울나기 할 땔감들을 부지런히 들였다. 우리 집만이 아니고 산골의 촌가들은 다 같았다. 다망한 중에도 꼭 필요한 일이 있었으니 도토리 채취였다. 남자들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누나 등 집안 모든 식구들이 도토리를..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8.12.08
밥 한 끼의 품격 명색이 산골농가라 생화는 당연 농사일이었다. 해토머리부터 입동까지 부지런히 일은 해도 지긋지긋한 가난은 숙명이었다. 하늘 세 뼘인 산골에 농토가 많을 리 없고 농토가 많지 않으니 더욱 죽어라고 움직여야 입에 풀칠이나 했다. 아버지는 노상 들판에서 살았고 집안 일이 많은 어머..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8.08.27
옥수수 하모니카 하늘이 세 평 되는 강원도 산골의 척박함은 빈약한 농토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평평한 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자드락 벗밭인데다가 그마저도 손바닥만 한 돌밭이었다. 이런 밭에 일굴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감자와 옥수수였다. 감자바위라는 조롱의 수식어를 얻은 연유다. 유년시절에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8.08.08
똥 홍명희의 <임꺽정>에 궁의 내시 이야기가 나온다. 불의의 사고로 성기를 다쳐 고자가 된 사내들의 선택이 내시였다. 그러나 개중에는 일부러 고자를 만드는 부모도 있었다. 아이 입에 넣어 줄 양식이 없는 빈한한 부모가 그래도 임금님 있는 궁궐에 가면 굶지는 않으려니 눈물을 머금..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8.01.09
추억 속에만 있던 과자 원기소 아이들 배불리 못 먹이던 시절이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원기소를 먹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내 희미한 기억으로는 우리 집만 빼 놓고 다른 집 아이들은 다 먹었던 것 같다. 어쩌다 그 옆에 있다가 두어 알 얻어먹는 때가 있었는데 아, 그 고소한 맛은 천하 일미였다. 영양제라지만 약은..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7.08.23
제비 구월 초아흐레 중굿날에 갔다가 삼월 초사흘 삼짇날에 온다는 제비. 같은 여름철새인 뻐꾸기나 꾀꼬리들보다 한 달 정도 빨리 온다. 그래서 알도 두 번 낳는다. 두 번째의 새끼들이 제 스스로 먹이를 해결할 수 있을 때쯤이면 계절이 바뀌어 강남으로 간다.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호주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7.03.30
묘약 산골이었다. 산은 모든 사람들의 일터요 놀이터였다. 집집마다 대청 뒷마루를 열면 싸리울 가까이 산이 있었다. 논밭에서 농사를 지어 얻는 것 말고는 대부분의 먹을거리는 이 산에서 얻었다. 난방 땔감 또한 이 산에서 얻었다. 아이들과 어른들, 누나들과 형들의 삶의 터전은 산과 숲이..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7.02.09
콩나물 쌀은 주렸어도 콩은 제법 여유가 있었기에 콩나물을 흔하게 먹었을 것 같은데 평소 밥상에 자주 올라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루 바닥에다 삼베를 깔고 콩을 깔고 매일 물만 주면 되는 가장 구하기 쉬운 먹을거리였다. 자주는 아니라도 이따금 밥상에 올라오는 콩나물반찬은 산골의 빈..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7.02.02
짠지와 무 우리 시골에서는 짠지였다. 김치란 말을 안 썼다. 대신 물김치를 김치라고 했는데 김치도 아닌 ‘짐치’라 했다. ‘지’는 김치라는 뜻이다. 짠지 묵은지 싱건지 단무지 오이지 등등. 근데 우리는 왜 짠지라 했는지 모르겠다. 추운 강원도 김장이라 그리 짜지도 않았는데. 어머니는 또한..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7.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