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예술의전당에서의 클래식 감상.
코로나 이후로 공연 횟수도 줄었고 입장 관객수도 제한돼 왔다. 이번에는 작심하고 두 달 전에 일찌감치 예매를 했다. 자리도 아주 앞자리. 그간은 늘 뒷북을 쳐 그 많은 로얄석을 다 놓치고 뒤쪽이나 양 가장자리 쪽 자리만 겨우 앉았었다.
클래식 공연이야 음악을 들으면 됐지 앞자리면 어떻고 뒷자리면 어때? 하지만 음악을 들으려면 집에서 유튜브로 들으면 되지 뭐러 비싼 돈 내고 공연장엘 갑니까.
연주자들의 모션 하나나라를 현장에서 직접 보며 생생한 음질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음악 외에도 관객들의 열기 또한 현장 아니면 느낄 수 없다. 지휘자의 퍼포먼서는 또 얼마나 멋진가.
하루 종일 하늘이 회색빛으로 낮게 내려앉았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딱 2월의 날씨다.
관객제한수가 없어져 객석은 다닥다닥 콩나물시루 같다. 지금 코로나시국인 거 맞아? 어쨌든 예매한 두 번째 줄에 앉으니 너무 앞자리다. 시야엔 연주자들의 다리들이 가득 차고 뒤쪽의 관악기 주자들은 하나도 안 보인다.
다음엔 좀더 뒤쪽으로, 한 열 번째 줄이 좋겠다. 또 중간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위치라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첼로 소리가 상대적으로 커 밸런스가 안맞는다.
오랫동안 소원했던 KBS교향악단을 처음 감상한다.
레퍼토리는 시벨리우스 브루흐 차이코프스키 세 곡이다.
시벨리우스의 <축제풍 안단테>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곡이지만 특유의 핀랜드 감성이 가듟한 아름다운 곡이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바이올린협주곡은 오히려 시벨리우스 곡이 더 좋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유명한 바딤 레핀이 협주자라서 가슴 설렌 레퍼토리다. 지금 세게에서 가장 톱에 있는 바딤 레핀이다. 그의 연주를 바로 코앞에서 듣는 것이다. 확실히 그의 연주는 힘이 있고 깊이가 느껴진다.(내가 음악을 뭘 알겠는가만 다분히 기분 탓일 거다)
여러 번의 커튼콜 끝에 앵콜곡 하나를 더 연주하고 공연 전반부가 끝났다.
사실은 다음 곡인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을 듣고 싶었다.
인터미션 시간에 폰을 키니 문자가 와 있다.
벌써 약속장소에 와 있다는 무비와 여꿈의 문자.
이날은 내 생일이었다.
아침에 생일축하 문자와 함께 저녁에 식사와 커피를 대접하겠다는 약속이 있었다. 그의 문자를 받고 나도 생일인 걸 알았다. 생일이 뭐 별거라고 서울까지 가서 저녁을 먹을까, 이미 내가 이날 공연을 보러 상경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그리 스케줄을 만들었지.
차이코프스키 4번 교향곡은 44분 짜리다. 끝나고 앵콜 곡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니 그것만 해도 한 시간이고, 예술의 전당에서 명동까지 가려면 그것도 거의 한 시간이니 지금 명동 약속장소에 와 있다는 문자를 보고는 더 이상 음악을 들을 여유가 없어졌다. 두 시간 이상이나 기다릴 그들을 생각하며 음악이 들리겠나.
듣고 싶었던 차이코프스키를 포기하고 그냥 나왔다. 아깝긴 했다. 관람료도 비싼 공연이었지만 모처럼 앞자리를 예약한 것도 아까웠다. 그보다는 차이코프스키를 못듣는 게 가장 아쉽지만.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흩뿌리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어둡지는 않은 어스름이다. 춥지는 않지만 을씨년스런 저녁이다. 2월 하면 대번에 연상하게 되는 딱 그런 날씨다.
명동에서 그들을 만나 저격을 먹고 비엔나커피를 마시고 정담을 나눈다. 차이코프스키는 못 들었지만 그것을 보상하게 유쾌한 저녁시간이었다.
내가 생일을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낸 게 몇십 년 만이던가. 내 생리에는 맞지 않지만 어쨌든 고맙고 정다운 사람들이다.
명동거리는 인적이 없다. 어둡고 조용하다. 코로나 이후의 달라진 풍경이다. 마치 영화 속 유령의 도시 같다. 좀비라도 나올 것 같은. 게다가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이렇게 2월이 끝나고
겨울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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