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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귀나무 꽃

참으로 독특하게 생긴 꽃이다. 꽃잎이 없고 털 같은 술만으로 이루어진. 꽃과 잎 공히 수많은 식물 가운데 그 어느 것도 닮지 않은 고유의 식물. 화려한 분홍의 색이 처연하게 느껴지는 건 예전 읽었던 운흥길의 소설 때문이리라. 소설 속에서 작가는 자귀나무꽃을 합환화(合歡花)로 쓰면서 묘한 에로티시즘의 뉘앙스를 전해준다. 실제로 예전부터 합환목이나 합환수로 불렀고 야합화 야합수(夜合樹)로도 불렸다. 분홍의 저 꽃잎을 밤이면 오므려서 그 모양이 마치 남녀가 서로 껴안고 밤을 보내는 것 같아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아무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묘한 느낌의 나무요 꽃이다. 목하 전국에 지천으로 자귀나무꽃이 만발해 있다.

진안 모래재 메타세쿼이아길 여름

전주에서 진안 쪽으로 구 26번 도로를 타고 가다 구불구불 구절양장 오르막을 오르면 모래재다. 고갯마루에 휴게소가 있어 그늘 벤치에 앉아 음료수 한 캔 마시고 있으면 영을 넘는 서늘한 바람이 몸의 땀을 식혀 준다. 고갯마루에서 진안 쪽으로 약 4km 남짓의 가로수는 메타세쿼이아다. 이곳의 그로수길이 근래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겨울 전주에 갔다가 이곳을 가려고 했는데 대중교통 조건이 워낙 불리해서 이리저리 검색해보다가 포기했었다. 그러나 유명세에는 아직 미흡하다. 4km라고 하지만 모래재부터 3km 구간은 이제 식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나무들이어서 앞으로 많은 해가 지나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나머지 1km 정도 되는 구간은 참말 명품길이다. 늦가을의 노란 나무들과는 또다른, 진초록 메타세쿼..

제주 사려니숲길

제주도라 남방식물이 많을 것 같지만 사려니숲은 고스란히 뭍의 수종들로 울창하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이라는 사려니숲길이다. 원시림 속을 거닐며 몽환의 시간을 누린다. 세상사를 잊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가는 탐방객들마다 죄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별수 없이 현실과 동행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폭염 속에 허덕이는 이곳 남쪽과 달리 중부지방에는 연일 폭우와 홍수로 난리다. 걷는 내내 북쪽의 재해현황이 실시간으로 들려온다. 이 나라는 결코 땅덩어리가 좁은 나라는 아니다. 이곳은 까마귀 천국이다. 내내 까마귀소리가 숲을 진동한다. 일천한 상식으로 가마귀는 겨울새로 알고 있었다. 전에도 왔다가 지천인 까머귀들을 보고 의아해했었는데. 검색해 보니 여러 종류의 까마귀 중에 한국의 텃새도 있다고 한다. 도처..

무안 회산백련지

광활한 연못에 연은 가득한데 꽃은 별로 없다. 드문드문 어쩌다 심심치 않을 정도로만 한두 송이 보인다. 흰색 연꽃은 원래 이리도 드물게 보여주는 건지. 백련화를 보러 갔다가 백일홍과 봉숭아와 우렁이알만 잔뜩 보고 왔다. 피부에 닭살이 돋게 연못과 연꽃, 또 시설물마다 붉은 이 우렁이알이 다닥다닥. 백련지 한쪽 귀퉁이엔 우리가 많이 보는 홍련. 역시 백련보다 화사하고 예쁘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2악장

평창 대관령 목장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그대와 한평생 살고 싶은 저 푸른 초원. 이제껏 보아온 무수한 사진들은 그렇게 우리를 동경하게 만들곤 했지. 우리가 상상하는 여름의 목장 풍경은 초원 위에 뭉게구름이 떠 있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아가씨가 흰 드레스를 입고 꽃바구니 끼고 거니는, 말 그대로 목가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목장도 치열한 삶의 현장이고 그 현장에서 오늘도 땀에 절은 인부들이 진종일 노동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로망과는 아무래도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장마철의 날씨는 우중충한 날의 연속이라 상상해왔던 진초록의 초원 풍경에는 약간 못 미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보지 못하는 양들을 이리도 가까이서 접하는 것도 색다른 체험이다. 우리나라에 양을 키우는 사람이 별로 없는 이유는? ‘양도소득세’를 내기 때문이다...

홍천 수타사 그리고...

홍천에 3년을 살면서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수타사엘 한 번도 가보질 않았다. 사람의 심리란 게 가까운 곳은 관심 밖에 두는 모양이다. 관심을 안 두기보다는 가까우니까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일종의 홀대 심리다. 그래 놓고는 멀리 떠나와서야 방문하는 패턴을 되풀이하곤 한다. 수타사 도량 자체는 뭐 특별하지는 않다. 유명세만큼 규모가 크지도 않고 건물이 특이하거나 아름답거나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여느 절만큼 조촐하고 수수하다. 다만 사찰이 자리한 계곡이 참 멋지다.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지 않을까 싶게 정원이 있다. 미적으로 세련되게 조경한 정원은 아니지만 계곡으로 오르면서 사뭇 길게 이어진 일종위 공원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 공원을 지나면서 덕치천을 따라 숲길이 조성..

돼지섬 저도

15년 전에 저도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았다. 물론 여행지 안내테마였다. 그런데 그 저도는 실은 오랫동안 일반인 입도가 금지된 섬이었다. 기자놈은 무슨 생각으로 혹은 무슨 의도로 출입제한인 섬을 추천여행지로 기사를 써 올렸는지 참말 쓰레기 같은 놈이다. 돼지섬 저도猪島. 박근혜가 대통령 재임시절에 휴가로 다녀왔다고 연출된 사진이 크게 관심을 끌었었다. 그때 엣 기사를 읽었던 것이 생각났다. 박정희가 대통령 휴가지로 지정하고 나서 이 섬은 오직 대통령에게만 허락이 되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섬을 박정희가 사유화한 셈이다. 그리고 박근혜도 그곳을 다녀왔다. 저도를 가려면 부산에서 거가대교를 건너 거제도로 간다. 거제 본섬에서 다시 칠전도로 건너야 저도로 가는 배를 탄다. 실은 저도는 거가대교 중간에 있다. 즉,..

데이지, 그 하얀꽃을 만나러

저 산에 호올로 핀? 아니다. 광활한 바다처럼 일렁이는 꽃송이들의 군무. 얼핏 멀리서 보면 가을날의 메밀밭 같아 가까이 가면 하얀 꽃잎이 청초한 그녀들. 들어는 봤나 데이지 Daisy.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평창 청옥산 산정 높은 곳에 흐드러지게 핀 6월의 꽃 데이지. 이곳의 지명은 ‘육백마지기’라한다. 육백마지기면 대략 20만평이라 할까. 육백마지기농장에서 이 넓은 데이지 꽃밭을 관리하여 여름철 이맘때면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데이지도 종류가 여럿인데 이곳은 샤스타데이지다. 가장 원초적인 외모이며, 그러므로 청초한 매력을 발산하는 하얀 꽃이다. 이곳의 향기를 전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가을의 상징 같던 국화를 이 성하의 여름에도 만날 수 있는 것도 소소한 행복이다. 누구세요, 이 고원에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