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에 저도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았다. 물론 여행지 안내테마였다. 그런데 그 저도는 실은 오랫동안 일반인 입도가 금지된 섬이었다. 기자놈은 무슨 생각으로 혹은 무슨 의도로 출입제한인 섬을 추천여행지로 기사를 써 올렸는지 참말 쓰레기 같은 놈이다.
돼지섬 저도猪島.
박근혜가 대통령 재임시절에 휴가로 다녀왔다고 연출된 사진이 크게 관심을 끌었었다. 그때 엣 기사를 읽었던 것이 생각났다.
박정희가 대통령 휴가지로 지정하고 나서 이 섬은 오직 대통령에게만 허락이 되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섬을 박정희가 사유화한 셈이다. 그리고 박근혜도 그곳을 다녀왔다.
저도를 가려면 부산에서 거가대교를 건너 거제도로 간다. 거제 본섬에서 다시 칠전도로 건너야 저도로 가는 배를 탄다. 실은 저도는 거가대교 중간에 있다. 즉, 거가대교는 저도를 경유한다. 20분이면 도달하지만 다만 중도에 내리지 못하고 거제도까지 가야 하는 도로 시스템이라 몇 시간을 멀고 멀게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간 출입이 금지된 섬으로 소문이 무성해서 무슨 대단한 ‘신비의 섬’으로 기대를 안고 갔다.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섬이다. 오히려 다른 섬들보다 볼거리가 없다. 그저 박근혜가 다녀온 출입제한의 섬이라는 것으로 유명세를 탔을 뿐이다.
저도에 닿을 때쯤 선장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게 들어갈 때 카메라 들고 가면 안된다고 경고한다. 이런 황당할! 그럼 카메라를 배에 두고 내려야 합니까? 되물었더니 그에 대답은 안한다. 속으로 군사지역이라 사진촬영이 안되나 보다 하고 가방에다 넣었다. 섬에 내려 이리저리 눈치를 보는데 다른 사람들은 폰으로 잘도 찍는다. 곳곳에 서 있는 안내원 중 한 사람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사진 찍으면 안된다면서요? 그랬더니 아니예요 저런 군함이나 군사시설만 안나오게 찍으면 돼요, 한다. 이런 제길! 나만 혼자 쫄아 있었군. 선장이란 사람은 왜 그따위 헛소리를 해서는. 산책길 곳곳에 버젓이 포토존까지 있었다!
그저 그런 평범한 산책길을 돌고 거의 끝 무렵에 이 섬의 유일한 백사장이 나타난다. 박근혜가 모래 위에 낙서하는 연출 사진을 찍은 곳이다. 원래 백사장은 없었는데 섬진강에서 모래를 퍼다가 만든 것이라 한다. 과연 독재자 박정희라서 할 수 있는 행위다.
47년간 비밀의 섬으로 은닉해 있던 그 속을 들여다보고 난 후의 감상은 ‘허탈’이다. 비밀과 신비라는 허울에 매몰된 선망이 낳은 어이없음, 그것이다.
어쨌든 여길 한 번 가봐야지 마음먹게 했던 15년 전의 기사로 하나의 숙제를 끝냈다는 기분에 홀가분하니 그거면 족하다.
라흐마니노프 : 죽음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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