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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사나사

여름도 절정을 막 지났으니 더위도 한풀은 꺾이겠지.사나사로 가는 길은 여전히 무덥다.손에 잡힐 듯 가까이 선 용문산이 연무가 끼어 부옇다. 멀어 보인다.이렇게 연무 가득한 날은 영락없이 찜통이다. 이미 윗도리는 후줄근히 젖었다.   사나사는 마을에서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에 앉아 있어서 좋다.휴가철이라 좁은 길의 연도는 주차장 자리를 못 차지한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나사는 봉선사의 말사다.말사 치곤 규모가 제법 크고 당우도 여럿이다.담장 옆으로 등산객과 자전거라이더들이 있어 인해 그닥 고적한 느낌은 없다. 사나사의 주불은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사찰의 대웅전은 대적광전이라 한다.사나사( 遮那寺)라는 절 이름도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에서 가져왔다.비로자나불은..

연보랏빛 가을꽃, 봉천사 개미취 피다

절 주위에 꽃을 심은 게 아니라 꽃물결 바다 위에 사찰을 띄운 것 같다.   암자와 사찰을 순례하고 있는데 여기는 사찰이 아닌 개미취를 보러 갔다.연보랏빛 화해(花海). 문경 봉천사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절이다.인터넷에 검색을 해도 절 이야기는 없고 온통 개미취 이야기다.네이버 지식백과에는 대한불교 조계종이란 정보는 나오는데 단지 그것뿐이고 여기도 개미취 이야기다.봉천사는 개미취요, 개미취 하면 봉천사가 되었다. 잘 모르는 사찰이니 평소의 참배객은 거의 없을 듯하고 한 해에 한번 이 화려한 꽃의 바다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입장료로 제법 수익을 올릴듯하다. 입장료는 1만 원이다. 개미취는 가을 이맘때면 우리 산내들에서 아주 흔하게 보이는 들국화다.이 흔한 꽃들을 이렇게 한데 모아 군락을 만들어 놓으니 그야..

오근장 메타세쿼이아와 정북동토성

더러 기차를 타고 대전 쪽으로 가는 때가 있는데 오근장을 지날 무렵 멀리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언제 한번 와 보리라 요량하고 있다가 우정 오근장역으로 표를 끊었다.별로 특별할 것 없는 시골 촌동네다. 그래도 청주 시내로 들어가는 방법은 이 곳에서 내리는 게 가장 가깝고 빠르다.예외없이 엄청 더운 날이다.          다른 것들은 볼 것도 없이 곧장 메타세쿼이아 길로 들어섰다.길이 짧긴 해도 과연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뿜어내는 특유의 아우라는 명불허전이다.  길은 어디든 이어져 있다고 하지만 이 길이 끝나는 곳엔 공군부대가 있어 막다른 길이다. 참 멋진 나무들이다.원수 같은 폭염만 아니면 즐거운 풍경인데.     웬 매미가 그리도 많은지 나무 등걸마다 다닥다닥.         ..

어르신

예전에 나는 나이 많은 어른들에 대한 극존칭은 ‘어르신’이라고 생각했었다.가령 길을 물을 때 ‘어르신! 삽다리는 어느 쪽으로 갑니까?’할아버지라고 하면 기분 나쁠 것 같고 아저씨라 하면 건방지다 할 것 같아 내 딴에는 최고의 존칭이 어르신이었는데. 아직 극존칭을 받을 만큼은 안됐지만 이제 이만큼 나이를 먹으면서 다시 돌아보니,어르신이라는 존칭이 그닥 기분이 좋지도 않았고 그 상대 젊은이가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지만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어느 때 누가 나더러 어르신이라고 부르면 과연 그렇겠다고 절감한다. 이제 딜레마가 생긴다.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들에 대한 적당한 호칭이 뭐가 좋을까.적당한 답이 없다.그러네!길을 물을 때 어떤 호칭이 상대 어른에게 가장 좋은 건지 여태 그것 하나 정립되지..

금당실의 여름? 혹은 가을

언젠가는 기후로 인한 대재앙이 올 것이라고 예견들은 해 왔지만서두디드어 폭염 속의 추석을 맞는 시대가 왔다.  경북 예천 금당실 마을의 추석 밑 풍경들.    사람만 덥지 자연은 제 루틴대로 도래해산내들과 시골마을은 가을 풍경이 완연하다. 어느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 마루에 어머니가 누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그 팔베개를 누워 여름의 단잠을 자던 시절이 있었다.툇마루에는 갓 따온 봉숭아 꽃잎을 찧어 손가락에 처매는 누이들의 정경도 눈앞에 암암하다.                      김상희 : 팔베개

화양구곡에 내리는 비

괴산 화양구곡입니다.몇 년 전 한번 가보긴 했지만 나뭇가지에 눈도 틔지 않은 3월이라 계곡은 메마르고 쌀쌀했었습니다.여기 여름 숲은 어떨까 궁금해하면서도 가까운 곳이라는 안일함으로 이후 한번도 가보지 않았어요. 더 먼 곳 충주로 옮기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봅니다.여름 끝자락이라지만 숲의 초록은 한참 더 지나야 퇴색합니다. 곧 비 뿌릴 것 같이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습니다.뽀얀 이내가 서리고 습기 가득해 역시나 무더운 날입니다.소나기 한바탕 내렸으면 좋겠는 습윤한 숲입니다.   명산은 명산이라 속리산에서 내려온 계곡의 수려함이 명불허전입니다.겨울의 적막도 말할 것 없고 여름의 무성함도 역시 좋습니다.혼자 걷는 길도 고적하지 않고 풍성합니다. 평일인데다 날도 궂은데 구곡으로 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골목투어 삼척] 정라진 나릿골

삼척항에서 올려다보이는 언덕빼기마을, 나릿골> 이야기를 전에 들은 적이 있어 한번 가보려고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실은 그간에도 갈 생각은 몇 번 했었지만 워낙 폭염이라 길을 걷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자칫 길바닥에서 쓰러질 수도 있는 세월이라.길을 좋아하는 사람이 길에서 죽는 게 영광이라고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죽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더구나 노인 하나 온열질환으로 쓰러졌다는 뉴스는 아무래도 모양이 빠집니다.  폭염도 좀 누그러졌습니다.이번 정기도보 답사를 떠나면서 강원도 가는 김에 그곳엘 들르려고 우정 행장을 차렸어요.그치만 같은 강원도 지역이라도 삼척과 고성은 엄청 멀어요.뉴욕을 가는 딸내미한테 미국 간 김에 엘에이에 있는 이모한테도 들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

동강 그리고 칠족령

오래전에,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동강댐 건설이 기획 단계에서 백지화되었다.가끔 동강 길을 갈 때마다 얼마나 그게 잘한 결정인지 절감하곤 한다. 세상이 파괴의 시대에 들었어도 이 강은 여전히 태초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내가 정선에 살 때만 해도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오지였는데 지금은 래프팅을 비롯해 전국에서 트레킹족들이 많이 찾아오는 동경의 땅이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그나마 환경이 덜 훼손된 우리 최후의 오지로 남았으니지나고 생각하면 동강댐 건설계획은 엄청난 파괴의 음모였다.  칠족령을 올랐다.문희마을 쪽에서 백룡동굴을 지나 오르는 코스가 있어 보통은 그리로 드나들지만 나는 연포마을을 들러 그 너머 반대쪽으로 올랐다. 아찔한 뼝대 위 벼룻길을 걷는다는 건 탐험의 길을 나선 모험가처럼 가슴 떨리는..

[도시투어 영천] 지붕 없는 미술관 가래실마을, 그리고...

영천 여행.별별미술마을이라 하는 가래실에 도착했다. 안동 권씨, 평산 신씨, 영천 이씨의 집성촌이며 재실과 정자, 가묘 등의 전통문화자원들이 있는 마을이다.옛 정미소 우물, 토성, 폐가 등이 산재해 있다. 여느 곳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농촌마을이지만 여기는 세련된 예술공간이다.경주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하듯 이 마을은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 한다.특구로 지정한 곳은 아니고 원주민들이 그대로 살고 있는 틈틈이 벽화와 설치공예 등이 전시되어 있고 공예체험장 역사박물관 미술관 작업실 카페 등이 들어와 있다.                                       여름 한낮의 뙤약볕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무덥다.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비와 폭염이 갈마드는 나날이다. 머리를 태울 듯한 햇빛에 습기가..

김민기의 고향 함열

하릴없이 심심해지자 친구는 남춘천역 옆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카페 이름이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였다.이름도 참 별나다고 했었는데 김민기의 노래에 나오는 가사인 걸 나중에 알았다. 그때까지 김민기라는 이름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나 역시 전혀 몰랐었다.나보다 한 해 먼저 대학에 들어간 그 친구는 대학가에 돌던 주체사상 등 불온문서와김민기 양병집 등 활동금지된 대중가수들까지 훨씬 많은 문물을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날 처음으로 김민기라는 사람을 알았다. 김민기가 족쇄에서 풀린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였다.한국문단 최고의 서정시인인 정지용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가장 감수성이 풍부해야 할 우리들의 청소년기는 그렇게 암울했었다. 김민기는 평생을 두고 단호하게 말했다.난 민중가수가 아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