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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깡이마을 양다방

영도다리를 건너면 일명 ‘깡깡이마을’이다. 조선업의 활황으로 이 일대는 그에 관련된 기계제작과 수리, 철공소의 밀집지대다. 선박의 철판을 긁어내는 도구가 깡깡이다. 밤낮으로 철재를 다루는 소리가 깡깡거린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붙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유곽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조선 공장들이 있고 사내들이 있으니 유곽도 자연스레 생겨났을 것이다. 근래 깡깡이예술마을로 ‘예술’이란 단어를 첨가했지만 그닥 예술적이진 않아 보인다. 그저 단단하고 삭막한 철공소 골목이다. 뭐 깡깡거리고 만들어낸 작품이 예술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아는 사람이 부산에 가면 이곳을 한번 들러보라고 하여 우정 발길을 돌렸다. 마을보다는 그 분이 추천한 양다방을 가기 위해서였다. 주인 마담이 양 씨인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1968년 ..

석모도 바람길

지난 가을 강화도행 교통의 열악함을 절감했던 터라 새벽 일찍 서둘렀다. 5시에 일어나 대충 낯만 씻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겨울에는 차 유리가 허옇게 얼어 녹이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일쑤라 안날 저녁에 미리 종이박스로 앞유리를 덮어 놓아서 시동 걸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실은 차를 바꾸고 시운전 겸 자축의 의미로 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를 질주하고 싶었던 여행이기도 하다. 새 차에 만족한다. 잘 샀군. 일찍 떠난 덕분에 막히지 않고 예상된 시각에 강화에 입도했다. 그리고 다시 석모도로 건너간다. 석모도 바람길을 걸을 요량이었다. 이 길은 강화나들길의 한 구간으로 석모도석착장이 그 시발점으로 되어 있다. 내비에 의지해 갔는데 내비가 엉뚱한 곳에 내려준다. 석모대교가 개통한 지 3년이라 그 전까지는 오로지 배편으..

황사영백서

국사시간에 듣긴 들었던 것 같다. ‘황사영백서’라는 말은 귀에 남아 있는데 그 단어 말고는 전혀 아는 게 없고 관심 또한 없었다. 지난 여름 끝에 간 추자도에서 잊혔던 황사영을 만났다. 추자도는 천주교박해 때 참수된 황사영 신부의 부인 마리아 정난주와 그 아들 황경한의 행적이 있는 가톨릭 성지중의 하나인 곳이다. 황사영백서는 1,800년 초에 나라에서 천주교를 금하고 박해한다고 황사영 신부가 중국의 주교에게 보내려 한 밀서다. 그 내용이 경천동지할 만하다. 조선을 청의 한 성(省)으로 복속시켜 중국이 관리해 줄 것과 서양의 군대를 조선에 파견하여 천주교를 박해하지 못하도록 조정에 압력을 넣게 해달라는 것이 주요 골자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세상에 이보다 더한 매국노가 있을까. 오로지 천주 하나님을..

직지사에서

얼마 전, 강원도 산골에서 텃밭을 일구거나 장작을 패거나 소설 나부랭이를 끼적이거나 하다가 더러 숲의 소리에도 귀기울이며 자연에 묻혀 자연의 일부처럼 '홀로 사는 즐거움과 의미'를 구현하는 소설가(?) 아우와 만나 직지사 경내를 거닐었다. 그 절의 이름은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한다. 그 짧은 말에 들어있는 깊고 넓은 의미를 여기서 되새겨 볼 여유는 없다. 그 말이 승가의 가르침이라면 굳이 그런 산 속에 그런 우람한 모습으로 그런 엄청난 재력과 노동력을 들여 웅장한 건축물이 사찰로 들어앉아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그 절에 오르고 경내를 거닐고 다시 내려오면서 우리는 잔잔한 이야기들을 좀 나누었는데, "아우는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는 척 보면 다 알 수 있지?" "그 정도는 알겠는데, 소..

박하사탕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근래 을 보았다. 윤도현의 동명의 곡을 듣다가 문득 생각난 거였다. 보고나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창동. 영화 참 잘 만드네. 주인공이 강 위의 철로에서 질주하는 기차에 부딪쳐 죽는 결말로 시작하는 독특한 구성의 영화. 평범한 소시민이 왜 처참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 담담하지만 처절하게 그려나간다. 나 역시 같은 386세대인가. 어디 한군데 안주하지 못한 격변과 풍랑의 세대. 어쩌면 현 생존자들중 가장 불행한 세대의 우리들이 아닐까. 그리고 영화의 촬영지인 제천 애련리의 그곳에 가 보았다. 늦가을이라도 이미 풍경은 겨울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듯한 삭막한 풍광. 유명한 영화의 촬영지라는 안내판만 있을 뿐 그냥 외진 시골이다. 관광객이 찾아들 만한 일말의 매력이 없다. 그래도 더..

강천사 가는 길

강천사를 처음 찾았던 게 2002년 12월이었다. 공동체마을에 축복하지 못할 결혼식이 있었다. 축복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결혼이 있었다. 감히 말리지는 못하고 그냥 나와 버렸다. 그들의 결혼을 부정하는 내 알량한 의사표시였다. 날은 왜 그리 추운지 전라도 일대는 눈 내리고 며칠이 지나도록 녹지 않고 그대로 설원이었다. 차창 밖의 설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낭만적인데 그 정취를 즐기지 못하게 마음은 얼어 있었다. 이름 모를 산협 모퉁이의 암자들을 찾아다녔다. 훗날에야 일종의 ‘암자순례’로 포장했지만 사실 당시는 왜 그러고 싸돌아다녔는지 알 수가 없다. 실은 그 며칠 전부터 정찬주의 포켓용 책을 일고 있었던 참이었다. 책에 소개된 암자들을 찾아 전라도 일대를 헤메 다녔다. 시시각각으로 그때의 소회를 적은..

갑사 가는 길

다시 또 가을. 그것도 만추. 어김없이 자연은 그대로 순환하는데 변하는 건 사람의 일이다. 조금씩 늙어 가면서 똑같은 가을을 맞다가 가뭇없이 소멸한다. 그 뒤를 다른 사람들이 살다가 역시 소멸하고. 어떻게 보면 이것도 끝없는 순환의 반복이긴 하지만. 갑사는 처음이다. 춘마곡추갑사. 우정 가을에 방문하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이것도 때를 못 맞춰 빨간 단풍이 흐리마리 끝나 가고 있었다. 그러나 만추의 풍정이 곳곳에 가득하니 진짜 가을을 실감하겠다. 곧 이 길에 눈 내리고 겨울 오겠지. 드라마 중, Return To 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