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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해리

해리는 다비치의 그 해리가 아니다. 고창군 해리면이다. 폐교된 나성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서 책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리모델링이라고는 했지만 폐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건물의 지붕만 바꾼듯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는 하는데 내가 읽은 책 속에는 길이 없었다. 그러나 길 아니더라도 다른 것들은 있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다 보면 갈피 안에 라면 가닥이 말라붙어 있은 적도 있고, 그런 류의 음식물 흔적이 많았다. 또 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 지폐를 득템한 적도 두어 번 있었다. 그러니 책을 읽으면 돈이 생긴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를 지향하는 나는 책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는 게 많아지면 번민과 고통도 많아진다는 나만의 해괴한 논리다. 그렇지 않은가...

영동 백화산 계곡길

11월. “모든 것이 다 사라지지는 않은 달” 모든 달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인디언들의 11월에 대한 개념이다. 그렇군. 들판도 텅 비고 나무도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하고, 버석거리며 말라 가는 우리네 휑한 가슴. 다 사라져 간 것 같지만 집 밖 어디든 서 보면 11월은 텅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풍성해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이겠고. 충북 영동 백화산 계곡의 석천을 따라 걷는 길은 한 해중 이맘 때가 가장 아름답다. 벼르고 별러 떠난 가을 도보여행. 11월 첫날. 가을 반야사, 가을 계곡, 그리고 낙엽 그리고 비. 새초롬히 내리는 비와 함께 11월이 시작되었다. 촉촉이 물기 머금은 풍경이 운치 있어 맑은 날이 아닌 게 더 행운이었다. 가뿐하니 머릿속도 한결 상쾌하다. 별로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데..

이화동 골목

탐방객의 눈은 낯설고 이국적인 풍취를 즐기려고만 하지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척박한 불편한 생활은 전혀 생각해 보려 않는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한국의 몽마르트’라고 불리는 낙산공원 언덕 그리고 골목길. 주민들의 불편을 도외시하면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명소이긴 하다. 대학로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빠져나와 언덕을 오르다 보면 모던과 포스트모던의 그 어름에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몽마르트를 가 보진 않았지만 과연 그럴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욕구와 영감을 줄만도 하겠구나. 나도 목에 건 카메라가 있으니 이것저것 찍는다. 내로남불 나 역시 주민들의 눈엣가시 중 하나다. 시인은 시상을 떠올리겠고 음악가는 악상을 떠올리기도 하겠다. 이미 미술가들은 한바..

꽃잎 날리던 벼랑에 서서, 낙화암

거기 노총각들 내 얘기 듣고 고대로 함 해봐. 올해 안에 장가가게 될꺼야. 거왜 충청도 가면 낙화암이라는 데 있잖아. 예전에 삼천 궁녀가 떨어졌다 하는데 요즘도 거기 여자들이 떨어지러 많이 온다더군. 그니까 그 밑에 기다리고 있다가 떨어지는 여자를 받아서 살려내는 거지. 그 여자랑 사는 거야. 누가 몸으로 받아 내라는가? 같이 죽을라고? 왜 소방구조대원들이 불이 나면 밑에다 쿠션이나 뭐 그딴거 설치하잖아. 매트리스 몇 개 깔아놓고 기다리면 돼. 아 장가갈라믄 그 정도 투자는 해야지.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까 텐트를 쳐 놓고 당분간 기거하면서 지내는 거지. 그런 노력과 인내심도 없이 거저 여자를 얻을라구? 기껏 받아낸 여자가 늙수그레한 할머니라도 어쩌겠어. 이게 내 팔자구나 하며 델꼬 살아야지. 어차피 우리..

설악산 주전골

지리산을 좋아하지만 역시 설악산이 명산이다. 북쪽의 금강산이나 칠보산은 못 가봤으니 말할 건 없고 남한에서는 설악산이 갑이다. 피를 토한듯한 단풍을 기대하고 들었지만 좀 이른 건지 올해의 단풍이 이런 건지, 혹은 내 기대치가 높아서인지는 모르나 절정의 붉은 단풍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설악의 절경은 명불허전이어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예전에도 몇 번 가보지 않은 건 아닌데 그때는 도대체 뭘 보고 다녔는지 지금의 황홀한 감상이 없었다. 사물을 보는 눈도 연륜이 붙어야 진면목을 알아본다는 걸 짐작한다. 수없이 마주쳐 지나가는 아이들은 그저 계단 깡충깡충 오르는 것에 더 흥미가 있지 산세를 감상하지는 않는 것이 느껴지니 짜장 나의 그 짐작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의 예상에 이 주말이 단풍절정인데다가 마..

단양 온달산성

자, 진격하라우! 온달 장군은 군사를 진두지휘하여 적진을 향해 질풍같이 말을 달렸다. 그러나 실은 불만을 혼잣말로 씨부리고 있었다. "닝기미! 내래 고저 군대 안 갈라고 18년을 그리 또라이짓을 했디. 근데 무스거 저 평강이 썅 에미나이 때문에 완존 조때부렀어야..." 지금처럼 예전에도 군대는 다들 기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병역기피자를 색출하기 위해 왕이 평강공주를 보냈다는 야사... 믿거나 말거나. 결국 온달은 전쟁터에서 삶을 마감했다. 계속 바보로 살았다면 오래 살았을 것이다. 온달이 장수가 되어 전쟁터로 나가서 그 어머니는 아들을 잃었다, 평생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을 비운의 온달. “너 없이 천년을 혼자 사느니 너와 함께 하루를 살겠어”라는 노래 가사도 있는데 바보로 오래 사는 것보다 장수로..

그리운 바다 성산포

그곳에 바다가 있었다.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의 바다. 부여에서 나서 제주 사진작가가 된 김영갑, 평원에서 나서 제주 화가가 된 이중섭. 또한 서산에서 나서 제주 시인이 된 이생진. 그들에게 영감을 준 제주의 매력은 어떤 것일까. 나는 제주에서 그 어떤 모티프도 얻을 수 없었다. 다만 성산포에 탐닉한 이생진 시인의 필적을 찾아 바다 성산포를 거닐었다. 가을은 점점 깊어 가는데 바다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제주에서, 성산포에서 아무 영감도 얻지 못한 둔감한 내가 무슨 이야기를 여기에 쓸 수 있을까. 성산포를 사랑하고 그리워한 이생진의 시 구절만 가져다 옮기면서 이번 성산포 여행기를 대신한다. 일출봉 매표는 7시부터다. 일출봉이야 해돋이 보러 가는 곳이니 새벽에 부지런을 떨어 올라가면 공짜로 들어간다. 오..

석모도 보문사

참 멀고 먼 노정이다. 내비로는 3시간 40분 걸린다 해서 제법 많이 걸린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먼 길이었다. 아침 8시에 집에서 떠났는데 보문사에 도착한 게 오후 1시 30분이다. 도중에 지체한 건 아침 먹느라 휴게소에 들르고 자판기커피 한 잔 먹느라 또 한번, 도합 두 번 휴게소에 들렀다. 서울 시내에 들어서 올림픽대로에서 강화 섬으로 넘어갈 때까지의 거리도 거리려니와 차도 많고, 웬 신호는 그리 많은지 움직이는 시간보다 신호대기시간이 더 많은 것 같이 느껴졌다. 하도 짜증이 나서 그냥 돌아가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쯤까지 왔으니 집으로 돌아간대도 또 이만큼의 시간이 걸릴 테니 그냥 차에서 하루를 허비한다는 게 속상했다. 귀한 주말 이틀 중의 하루를 그냥 날려버리게 되니.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