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156

세종 고복저수지 둘레길

몇 해 전 가을에 어여쁜(?) 아가씨들과 비암사를 갔었다. 비암사를 찾아 들어가기 전에 어느 호숫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호수가 고복저수지다. 호수가 예쁘다고 친구들은 한마디 씩 했는데 내 눈에는 뭐 그리 풍광이 빼어나 보이진 않았고 어딜 가나 흔한 평범한 호수였다. 가을 정취가 절정인 비암사는 썩 좋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을의 여행 풍경 사진이 가장 아름답고 추억 또한 진하다. 계절 탓이리라. 그 뒤로도 유정은 종종 비암사를 왔는데 비 오는 절의 풍취가 좋다는 등의 문자와 사진을 전송해 오곤 했다. 고복저수지에 데크길이 만들어져 있다는 소식도 함께. 별거 아닌 것에도 과장해서 감탄하는 사람이니 뭐 크게 공감하진 않으나 그래도 그녀의 반복되는 찬미에 조금은 마음이 동해 한번 호수둘레를 걸어 ..

철원 한여울 트레일

기온이 급강하하고 눈이 내렸다. 겨울 끝무렵에야 제자리로 한번 돌아간 모양새다. 한여울 트레일. 테마는 '한탄강얼음트레킹인'데 춥지 않은 겨울이라 물은 얼지 않고 이름처럼 도도하게 여울져 흐르고 있었다. 이 길은 독특한 지형을 탐험하는 매력적인 트레킹이다. 계곡 안으로 들어가 물과 가까이 걷는 길도 좋고 벼룻길도 좋다. 벼루에도 데크로 길을 만들어 사뭇 계곡을 조망하며 걸을 수 있다. 직탕폭포에서 출발하여 순담계곡까지 걷는 게 일반적인 코스다 . 보통의 관광객들은 송대소까지만 구경하고 돌아나온다. 지금은 물위에 부교가 있다. 이 강은 래프팅 명소이기도 해 날이 풀리면 부교도 철거한다. 나도 순담계곡을 요량하고 떠나온 길이었지만 전날 몹시 후덥지근했던지라 가벼운 행장이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고 눈까지 ..

고창읍성

중부지방엔 이제 마지막 벚꽃잎들이 하롱하롱 날리는데 고창은 역시 남녘이라 나무들은 이미 무성한 잎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성큼 여름 분위기다. 고창읍성은 2006년 국토해양부가 선정한 에 선정된 길이기도 하다. 지난 번 지나는 길에 들르려 했다가 비오고 바람 찬 궂은 날씨에 다음을 기약했었다. 바야흐로 초록이 짙어지는 좋은 날들이다. 성곽은 난간이 없어 고소공포증 심한 사람은 쪼매 무서울 수도 있겠다. 성곽길 아니고도 성내의 숲길도 근사해 도시락 싸들고 소풍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영부영하는 중에 어느새 4월이 다 가고 있네. 개인적으로 잔인한 4월이었다. 그렇지만 지나가는 모든 것은 아쉽고 허무하기도 하다. 푸른 5월을 기다린다. 베토벤 : 아델라이데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길

대숲은 그냥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태화강 십리대숲은 네 번째다. 언제나 겨울이었다. 그래서 그 숲에 들어가면 으스스 추운 기억만 강렬하다. 담양의 대숲도 언제나 겨울이었다. 산청의 대숲은 이른 봄이지만 그안에 들어가면 냉기가 덮치곤 해 대숲의 이미지는 서늘하다. 대숲엔 언제나 바람이 분다. 댓잎 사각이는 소리 요란하고 다각다각 대가지 부딪치는 소리도 이국적이다. 십리대숲이라지만 오랜 세월 지나면서 실은 그 규모가 축소되었는데, 이번에 보니 면적이 많이 넓어졌다. 그간 식재와 조림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다. 태화강의 파란 물결이 을씨년스럽다. 이쪽의 강상은 산그늘에 덮여 하루 종일 햇빛이 비치지 않는다. 대나무 숲속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차안의 세계에 든 듯한 환상에 빠진다. 뜬금없이 드라마 ..

전주 한옥마을

주말에 아무 데도 안 가고 방콕한다는 건 정말 시간낭비다. 물론 전적으로 내 사견이고 오로지 내 경우다. 아내와 아이들, 혹은 부모와 함께 지내는 것이 물론 지복지락이다. 홀로 존재하는 이에게는 문밖을 나서는 게 즐거움이다. 계획이 없어도 터미널에 나가 노선표를 보면 반드시 마음이 끌리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무작정 떠나온 곳이 전주 한옥마을. 세 번째다. 전의 것은 기억이 안나 처음방문인 것처럼 느껴진다. 날은 제법 쌀쌀한데 역시나 관광객들이 넘실댄다. 한국민속촌이나 낙안읍성과는 또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다. 옛것과 현대가 공존하며 세련된 풍광을 풍미한다. 그 조화가 아주 자연스럽다. 노년층과 젊은 층 모두가 매료되는 콘텐츠를 갖췄다. 한옥들은 전시용이 아닌 실제 주인 기거하며 갖가지 문화콘텐트를 생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