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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투어 수원

도시에는 많은 집들이 있다. 많은 창과 불빛과 많은 사람과 셀 수 없는 골목들이 있다. 이러한 도시는 나를 미아로 만든다. 분명히 그렇다. 도시는…… 길이 많아서 걸핏하면 길을 잃곤 한다. 루소는 ‘도시는 인류의 쓰레기 터’라고 부정적으로 표현했다. 아무리 그래도 도시는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는 건 확실하다. 그러니 온갖 사람들이 모여들어 바글거리지. 나는 태생이 산골이라 여전히 시골에서 사는 걸 행복해 하지만 하루라도 아니 며칠 이라도 놀기엔 도시가 좋다. 구경거리도 많고 먹을거리도 많고, 사람이 많으니 갖가지 인간군상들 대하는 것도 얼마나 재밌는지. 장마가 시작되었다. 푸지게 비 내리고 무시로 돌풍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수원 화성 성곽을 넘어 행리단길을 걷는다. 서울의 경리단길이 유명하니..

곰배령 길

천상의 화원이라고 사람들은 곰배령 평원만을 목적하고 오르곤 한다. 보통의 등산인들이 그렇다. 산의 정상에 올라 표지석 앞에서 사진 찍는 것에 산행의 의미를 둔다. 숲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보려 하지 않는다. 들머리까지만 가더라도 숲의 그윽한 향취를 맛본다면 이미 훌륭한 숲나들이다. 맑은 물가에 앉아 발을 담그고 있어도 좋고 내내 들려오는 산새들 지저귐을 들어도 좋다. 산정상은 올라도 그만 안 올라도 그만이다. 나는 그렇다. 점봉산의 유명한 곰배령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계절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곰배령까지는 약 5km의 숲길이다. 사람들은 이 대부분의 길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영마루만 바라보고 힘겹게 오른다. 영으로 가는 이 숲이 짜장 빼어난 명소인 것을. 사람들은 자연보다는 과시욕(?)에 더 몰..

동9릉, 짙은 녹음의 숲에서

구리 동9릉은 봄가을에 한번씩 숲길을 개방한다. 작년 가을엔 뒤늦게 정보를 접해 가보질 못하고 이번 봄 열리길 디다렸다가 다녀왔다. 봄이라고 하지만 6월 30일까지니까 여름숲이다. 아홉 기의 능도 초록색 잔디고 숲도 짙푸른 녹음이라 보이느니 푸른 세상이다. 전에 갔었던 광릉 숲보다도 더 그윽한 아우라를 지녔다. 왕릉이 아홉 기나 있어 규모가 무척 크니 세세하게 돌아보려면 하루를 옹긋 즐기 수 있다. 초록 일색인 지금의 숲도 명품이지만 조락의 가을길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기대가 된다. 올가을 개방 때 또 가봐야겠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아흔 일곱 들리브 오페라 중, " 오라, 말리카"

배상면주가 산사원

“술이요? 엄청 좋아하지요.” 술 좋아하냐고 누가 물어보면 난 그렇게 대답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내가 술고래인 줄 안다. 술, 엄청 좋아한다. 단지 많이 마시지 못할 뿐이다. 그 좋아하는 술을 기껏 두어 잔 밖에 못 마시니 원통하다. 지금은 가양주(집에서 담근 술)가 사라졌지만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거의가 가양주였다. 일제가 수탈 목적으로 주세법을 만들어 허용된 업자들만 술을 만들게 하고 고액의 세금을 뜯었다. 그 외는 일체 술제조 금지였다. 한국의 전통 약주의 명맥이 끊긴 연유다. 내 사견은 지금도 가정마다 술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이나 김치는 그 가정의 가풍과 음식맛을 가늠하는 음식이다. 김치가 집집이 다 가풍을 입은 특유의 맛이 있어 참말 풍성한 음식문화를 누리고 있다. 이처럼 집집..

옛 철로변 따라 백마고지로

목하 우리 산내들은 온통 금계국 천지입니다. 이 식물이 언제들어왔는지 짐작은 못 하지만 봄이 끝나고 여름이 가까워지면 전국을 노랗게 덮어 버리는 귀화식물이 되었습니다. 철로변의 금계국도 절정으로 피어 예쁩니다. 옛 경원선의 대광리역에서 시작하여 백마고지를 향한 길을 걷습니다. 경원선은 현재 전철화공사로 인해 운행이 중단되어 기차 대신 버스가 똑같은 코스 똑같은 시간으로 동두천에서 백마고지역까지 운행되고 있습니다. 보통 이 여정은 신탄리역에서부터 시작합니다만 저는 대광리역에서 내려 천변을 걷습니다. 천변의 길섶에도 역시 노란 금계국이 만발해 있습니다. 이 금계국은 백마고지역까지 내내 철로변에 가득합니다. 길을 떠난다는 건 일상의 속박에서 놓여나는 것, 그게 어느 곳이든, 아름다운 길이든 삭막한 길이든 일상..

미용실에서

오랜만에 머리를 자른다. 전에 워낙 짧게 잘라서 이번 간격이 상당히 길었다. 코로나 이후로 처음이다. 아무리 그래도 머리를 자르려면 마스크를 벗어야겠지, 했는데 웬걸. 미용실에 들어서니 미용사들이나 의자에 앉아 손질받는 손님들이나 죄다 마스크를 썼다. 코로나가 세상일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더니 미용사들의 기술도 새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마스크 윗부분 가장자리에 길게 테이프를 붙여 머리카락이 들어가는 걸 방지하고, 양 귀에 걸린 끈을 피해 삭삭대며 잘라내는 기술이 시원스러우면서도 또 안쓰럽기도 하다. 에구, 이런 정경은 사람 사는 모양새가 아니다. 짜장 하찮은 바이러스가 ‘위대한’ 인류의 생활을 흔들어 놓았네. 그리고 머리를 감는 차례가 돼서 이번에야말로 ‘마스크 벗어야겠지요?’ 물었더니 ‘절대 안돼요’ 한다..

이방초등학교와 산토끼

창녕군은 근래 이방면의 이방초등학교가 노래 의 탄생지라고 대대적으로 문화선양사업을 하고 있다. 동요 는 마산 출신의 이일래가 이방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에 만든 노래라 한다. 그간 작자 미상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가 1938년 출판된 영인본이 1975년에 나오면서 이일래의 노래로 비로소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미심쩍은 건 이 노래는 오랜 세월을 남과 북 모든 사람들이 불어오던 노랜데 정작 작곡자인 이일래는 왜 익명으로 숨어 있었을까 하는 것. 내막이 궁금한 건 아니고 새로 밝혀졌다는 위 사실이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방초등학교 옆 동산에는 산토끼노래동산이라는 테마공원이 있다. 봄꽃들이 한창이던 지난 봄에 이곳을 다녀왔다. 전에 갔었던 서울의 둘리뮤지엄도 그랬고 이 산토끼노래동산도 역시 하나도 재미가 없..

찬양하라

어느 음식점엘 들어갔더니 주인이 기독교인이다. 입구 문설주에 십자가와 함께 무슨무슨 성결교회 따위 문구가 있으니 그런 줄 알지. 벽에는 시편 한 절이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그거야 뭐. 기독교인도 불교인도 식당을 하는 거야 뭐 못마땅할 리 없지만 이 집은 들어가니 찬송가를 틀어 놓았다. 음식을 먹으면서 내내 찬송가를 듣다 나왔다. 문 닫을 때까지 그럴 테지. 불쾌하다. 신앙 깊은 주인의 성정이야 이해하려 해도 밥 먹으러 온 손님들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전혀 없는 순전히 막가파식 개신교인이다. 싫으면 네가 싫지 내가 싫어? 싫으면 오지마, 이런 식이겠다. 이런 소소한 것들 때문에 그 종교에 정나미가 떨어져 가는 것이다. 한데 그들은 아예 모른다는 게 한심하다. 하긴 그정도 되면 그 집단에선 신앙심이 깊은..

대왕암에서 방어진까지

내가 매 주말 사진 여행을 떠나는 걸 아는 동료가 울산엘 가라고 한다. 물론 울산도 여러 번 갔었지. 어렸을 때의 선입견이 평생을 지배한다. 현대가 세운 공업도시 울산. 예전엔 현대시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 이미지 때문에 울산은 내내 공장굴뚝으로 가득한 삭막한 도시로 각인되어 있다. 태화강 십리대숲이 좋아 몇 번 가보고 장기도보 때 동해안 방어진과 대왕암 일대를 걸었던 기억. 여전히 동구 일대는 정주영의 도시다. 울산을 가라고 추천해준 동료는 남편이 평생 현대중공업에서 근무해서 오래도록 그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처럼 애착심이 대단하다. 지난 봄 동백꽃을 보러 학성공원에 갔다 왔다 했더니 이번에 그가 추천해준 곳이 울기공원이다. 울기공원? 지금은 대왕암공원으로 알려진 곳이다. 단연 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