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마을은 인천에 있다.
인천 사람들도 잘 모르던 그 마을이 세상에 알려진 건 김중미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이라는 오명을 받았고 지금도 역시 그런 곳.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은 제목처럼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고상한 도시 파리의 하류층 인간상을 그린 소설이다. 가난에 찌들어 파멸해 가는 도시 빈민들의 비참한 이야기다.
괭이부리말도 가난한 마을이지만 에밀 졸라의 소설처럼 절망적이지 않다. <목로주점>은 가난에 굴복해 살아가는 일말의 희망도 없는 군상들 이야기지만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가난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고 미래를 꿈꾸는 따뜻한 이야기다.
김중미 소설을 읽고 문득 그곳이 궁금했다.
소설이 히트하고 괭이부리말이 널리 알려지자 인천 동구는 이 마을을 체험하는 테마로 관광상품화하려 했다가 맹비난을 받고 철회했다.
가난을 상품화하겠다는 몰상식한 발상은 도대체 어느 대가리에서 나왔는가.
가난은 불편할 뿐이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나 역시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고 앞으로도 가난할 사람이라 포장된 세간의 동정과 위로가 와 닿지 않는다. 나의 가난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배짱이 나는 없다.
동인천역에서 내려 괭이부리말로 가는 길가에 은행잎들이 아름답다. 금방이라도 눈 내리고 얼어붙을 것 같이 늦은 가을날이었다.
화도진공원은 화려한 가을축제였다. 소설에서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깡통을 줍던 공원인데 어느 구석에도 그 이미지는 전혀 없다. 아름다운 만추의 한 폭 그림이다.
그리고 괭이부리마을.
나 역시 가난을 엿보러 이곳을 찾은 것 같은 떳떳하지 못한 기분 때문에 아주 조심스러웠다. 사람 하나 비껴가지 못하게 좁은 골목들. 어둑신하고 메마른. 우리의 또다른 자화상.
행여 발소리 날까 사뿐사뿐 사르디딘다. 정적에 잠든 골목에 이따금 누르는 내 셔터 소리가 소스라치게 크게 들린다.
골목에 나온 생활 집기들이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이 현재 삶과 생활이 영위되고 있는 곳임을 보여준다.
지금은 다들 떠나가고 마땅히 연고가 없는 일부 노인들만 남아 있다고 한다.
자연은 공평해서 이곳도 만추의 서정이 가득 들어와 있다. 곧 닥칠 겨울이 버겁긴 하겠지만.
마을에서 내려와 북성포구로 간다.
여기서부터는 황량한 공장지대다. 만석부두사거리에서 약 500미터 정도의 공원길은 참말 아름다운 길이다. 온통 척박한 공장지대에 파라다이스 섬처럼 떠 있는 이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마법에 걸려 동화 속으로 순간이동한 것 같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가을풍경이 보고 싶으면 매년 이맘때 이곳으로 오리라.
그리고 곳곳에 즐비한 은행나무들의 마지막 축제.
포구 같지 않은 포구 북성.
칙칙한 공장과 너무나도 잘 조화로운 풍광의 작은 포구.
바람이 싸늘하다.
여우네식당에 들어가 국수를 주문한다.
1인분은 안 받아주는 게 보통이라 어떨까 했는데 흔쾌히 받아주니 나는 그게 고마워 소주 한 병을 추가로 달래 마신다.
사실은 소주 한 잔이 구쁘긴 했다. 을씨년스런 날씨에 칙칙한 포구 풍경이 자꾸만 술을 부르던 터였다.
인천은 내게 낯선 도시가 아니다. 청춘시절 한때 나는 이곳서 노동자였다.
즐거울 일이 없었던, 오직 돈만이 목적인 메마른 노동의 날들이었다.
그러한 나날들의 유일한 탈출구는 연안부두에 나가 값싼 김치찌개에 소주를 마시는 거였다.
나는 지금도 키움 히어로즈의 팬이다. 삼미 청보 태평양 현대를 거쳐 지금에 정착한 애환의 팀이다. 당시는 태평양 돌핀스 시절이었다.
충청도에서 온 회사 동료 하나가 빙그레 이글스의 팬이라서 가끔 빙그레 팀이 원정을 오면 둘이서 야구장엘 갔다. 경기가 끝나면 12번 버스를 타고 연안부두엘 갔다. 태평양이 이기면 그가, 빙그레가 이기면 내가 술을 샀다. 연안부두는 늘 무채색이었다.
많이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먹고 때로는 골목길에 엎드려 게우곤 했다. 일급 400원을 올리려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들불처럼 번지던 절명의 시절.
인천의 거리들은 날마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패악질을 부렸다.
지금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12번 버스가 그 코스 그대로 연안부두를 운행하고 있다.
태평양 돌핀스의 응원가가 <연안부두>였다. 여우네식당에 앉아 바지락칼국수에 소주를 마시고 있자니 연안부두 노래가 나온다. 울컥 고독했던 그 시절이 달려온다.
.
아 연안부두!
젊은 시절의 내게 연안부두는 삶의 무게였고 어둠에 가려진 그늘이었다. 바다는 기름에 절어 악취가 진동했고 정박해 있는 배에서 나오는 자들도 죄다 퀭한 눈의 촛점 없는 자들이었다. 세상은 희망 없는 노동자들만 구성된 집단이었다.
기억과 추억은 의미가 다르다. 기분 좋거나 아름다운 기억을 우리는 추억이라 한다.
나는 다 추억이다. 고독도 상심도 열패감도.
이제 추억을 되새기는 때가 많아지는 걸 보니 내게도 여류한 세월이 겹겹이 쌓여 있음을 알겠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이 알싸한 항도 인천의 마지막 가을저녁이었다.
'서늘한 숲 > 햇빛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대건설 : GS칼텍스 (0) | 2021.12.22 |
---|---|
여수 고소 1004벽화마을 (0) | 2021.12.10 |
젓 비린내 좋은 강경 (0) | 2021.11.24 |
10월 안성팜랜드 (0) | 2021.11.03 |
배추고도 귀네미 마을 (0) | 2021.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