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이 강원도 깊은 산골인지라 산삼보다 구경하기 힘든 게 갯것이었다.
육고기도 귀해 기껏해야 어쩌다 손님이 오는 때 집에서 놓아 기르는 닭을 잡는 정도였다.
그렇지 않음 정기적으로 개를 달아매는 일이었다.
또 산에서 잡아온 꿩이니 토끼 등이 고기에 주린 촌사람들의 육식생활이었으니 그나마 육고기는 먹은 셈이었다.
그러나 갯것은 너무나도 귀했다.
가끔 미역국을 먹는 정도였고 식구 중 누구 생일 때면 미역국에 김, 그리고 짜디짠 고등어나 임연수였다.
산골에서 시내까지는 산넘고 물건너 머나먼 길이었고 새벽 조반을 먹고 떠난 아버지는 해가 저물고도 한참이나 돼 돌아왔다.
그럴 때 아버지 지게 등테에는 새끼에 엮은 고등어가 두어 마리 달려 있었는데 무더운 여름철이면 그게 물크러져 물이 뚝뚝 흐르기 일쑤였다. 심할 때는 쉬파리가 알을 쓿어 놓을 때도 있었는데 그걸 칼로 긁어내고 먹었지 절대 버리지는 못했다.
그만큼 산골에서는 해산물 먹기가 열악했었다.
어쩌다 새우젓이 있을 때가 있었는데 꼬마는 달랑 한 마리 집어먹고는 짭짤한 그 맛이 입에 당겨 또 몇 마리 집어 먹다가 물켠다고 엄마한테 지청구를 듣곤 했다.
실은 물켠다는 걱정이 아니라 귀한 그것을 축내는 게 아까운 것임을 꼬마 소견으로도 알았지만.
세상은 무진장 넓어 그 귀한 갯것들이 지천으로 넘치는 고장들도 또한 많으니, 산골아이가 성장해서 이곳저곳 다니며 보는 풍물은 참으로 풍부했다.
젓갈의 고장 강경.
지도에서 보면 내륙 깊숙이 들어온 고장이지만 대하(大河) 금강을 옆구리 낀 천혜의 조건으로 큰배들이 드나들며 비릿한 갯것의 집산지가 되었다.
구한말까지 강경은 평양 대구와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꼽혔으며 원산과 함께 조선 2대 포구로 꼽혔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그 명성은 남아 이곳에 들어서면 비릿한 젓 냄새가 진동한다. 영산포 근처에 이르렀을 때의 홍어 냄새나, 감포에서의 가자미, 법성포의 조기처럼 오장을 자극하는 기분 좋은 비리내다. 강경은 온통 젓갈 천지다.
지금은 다른 시장과 포구들이 발달해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아진 것이지 그 규모가 줄어든 게 아니고 그 전통성이 퇴색한 것 또한 아니다.
오늘은 강경 장날.
절정으로 치닫던 가을이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근디 저 총각은 멀라고 사진을 박는디야?
거 아주머이 젓이 우리 게 명물이라 그런디야.
충청도 시골장의 전형적인 입담들.
시대가 시대인지라 지금은 농촌이나 어촌 도시를 막론하고 플라스틱 콘티박스가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푸라스틱이 이게 불저태만 안가믄 만년 굿짜여.
장날이라 역시 장기판도 놓였다.
오늘은 한판만 허고 말자구. 이따가 김수희 보러 가야제. 어여 자네버텀 두어봐.
오늘은 멀 먹을라나. 성님 돈 솔찮게 갖구 왔겄제?
먼 소리여 시방. 자네 이적지 내한테 한번이라도 이긴 적 있등가?
옛날, 동서지간인 두 아낙네가 강경장에서 새우젓을 사서는 그래도 제가 조금 젊다고 작은 동서가 한아름 안고 버스를 탔는데 장날이기도 하고 마침 하교시간이라 중학생놈들이 자꾸만 올라타니 버스는 곧 콩나물시루가 되었다.
게다가 길바닥은 고르지 않아 걸핏하면 버스가 덜컹거리니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찬 승객들에 짜부가 된 동서는 비닐봉지에 담긴 새우젓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도 고생을 하고 있었다.
보다못해 큰동서가 왜장을 쳐댔다.
아 이눔덜아 밀지 좀 마!
우덜 젓 터지겄다~~
배가 드나들기 쉬운 고장은 예외 없이 외세의 침략과 이국의 종교가 들어오기도 쉽다. 법성포 등 서해안 곳곳에 불교와 기독교가 상륙해 각 성지가 되었듯이 강경도 걷잡을 수 없이 기독교가 들어왔다. 인구와 면적에 비해 엄청나게 교회가 많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약탈도 이런 포구를 거점으로 무자비하게 조선을 잠식했다.
구룡포 동래 목포 군산 제물포 등이 그렇다.
강경에도 곳곳에 일제의 잔재들이 건물로 남아 있다.
강경 태생은 아니지만 이웃 연무 출신인 박범신의 문학비를 작가와의 협의하에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관광 다니기 좋고 놀기 좋은 가을이었다.
젓갈공원에서 가수들의 공연이 있었다. 출연가수들의 말로는 코로나 이후로 처음 갖는 대면공연이라 한다.
아까 장기판노인들이 말하던 게 이 김수희였군.
은행잎은 노랗게 나부끼고 등 뒤 저쪽 금강에서 살랑거리며 바람은 불어오고.
더이상 좋을 수 없는 만추의 어느 날이었다.
강경을 키운 건 팔 할이 금강이었다.
저 유장한 물줄기 따라 문물이 드나들고 세월이 왔다가는 또 가고.
여전히 강경은 옛 전통이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고장으로 이런 이국적이고 생경한 풍경들이 산골 태생인 나그네의 심정을 사뭇 달뜨게 한다.
나는 여전히 새우젓을 좋아하고 특히 새우젓을 얹어 먹는 수육은 그야말로 진찐이다.
바람이 서늘해지면서 금강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김희애 : 웨딩케익
'서늘한 숲 > 햇빛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수 고소 1004벽화마을 (0) | 2021.12.10 |
---|---|
괭이부리말을 아십니까 (0) | 2021.12.08 |
10월 안성팜랜드 (0) | 2021.11.03 |
배추고도 귀네미 마을 (0) | 2021.10.27 |
도시투어 송도 (0) | 2021.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