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희한한 일이었다.
내가 그 길에 들어서자 마자 바람이 몹시 불기 시작했다.
마치 언제부터 불고 싶었는데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은행잎이 어지러이 흩날려 정신이 아뜩하다.
얼핏 노랑나비 떼의 군무 같다.
길 위에도, 지붕 위에도, 자동차 와이퍼 위에도
날려 앉았다가는 세찬 바람에 또 날아가 버리는 중이었다.
나의 착각이었다.
바람은 나를 기다린 건 아니었다.
언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는지 은행나무 우듬지는 벌써 앙상한 나뭇가지인 채로 빈 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미 며칠 전부터 그러고 있었는 갑다.
여기는 영주 부석.
부석사라는 사찰로 유명하지만 매년 이맘때면 면소재지에 가로수로 늘어선 은행나무의 풍광이 멋진 길이다.
이 길을 걷노라니 내가 속한 이 세계는 단지 노랑만으로 가득한 공간인 것 같다.
조락의 계절이다. 나뭇잎들은 이제 사라지려 한다.
그런데 자신의 쓸쓸한 퇴장을 어느 누가 저토록 화려하게 분출할 수 있을까.
잎잎이 기록된 푸른 햇살이여
이제 안녕!
펄럭이던 해와 바람의 일기장에서 삭제되었다
낡고 지루한 사랑과의 이별은
조이던 스카프를 풀어낸 헐렁한 목이다
파장한 장터의 풍경처럼
내 손금을 벗어난 전생처럼
슬하는 오히려 풍요롭다
파산한 내 집을 구경하는 나는
낯선 관객이다
오명선
눈부시던 가을을 이젠 나도
안녕, 해야 하나 보다.
부석우체국.
우체국 앞에는 짜장 그닥 멋들어졌다고는 할 수 없는 키 큰 은행나무가 서 있다.
오후 햇살을 받아 가장 빛나고 있는 시각이었다.
유명하기로는 부석사 일주문과 사천왕문 사이의 그리 길지 않은 은행나무길이다.
보통 이맘때면 이 길을 보고자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온다.
나는 또 때를 못 맞췄다.
부석사 은행잎은 이미 죄다 잎이 떨어져 있었다.
도대체 언제 가야 되냔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석사 도량은 사람으로 넘실거린다.
아, 이들도 가을을 이별하러 온 사람들일 것.
잎 진 나무들 도열한 광경이 겨울 풍경이다.
은행잎이 떨어질 무렵이면 아침들판에 허옇게 서리가 내렸다.
옷을 갈아입을라치면 찌직거리며 정전기가 일고 나는 이날부터 겨울이라고 계절을 구분하곤 한다.
그러고 보니 입동 날이었다.
오늘 비 내리고, 비 그치면 춥다고 하니 세월은 조금의 어긋남이 없다.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 우체국이 보이면 생각나는 시, 이수익 <우울한 샹송> 일부
윤도현 : 가을 우체국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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