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꽃잎 날리던 벼랑에 서서, 낙화암

설리숲 2020. 10. 23. 00:22

 

 

 거기 노총각들 내 얘기 듣고 고대로 함 해봐. 올해 안에 장가가게 될꺼야. 거왜 충청도 가면 낙화암이라는 데 있잖아. 예전에 삼천 궁녀가 떨어졌다 하는데 요즘도 거기 여자들이 떨어지러 많이 온다더군. 그니까 그 밑에 기다리고 있다가 떨어지는 여자를 받아서 살려내는 거지. 그 여자랑 사는 거야. 누가 몸으로 받아 내라는가? 같이 죽을라고? 왜 소방구조대원들이 불이 나면 밑에다 쿠션이나 뭐 그딴거 설치하잖아. 매트리스 몇 개 깔아놓고 기다리면 돼. 아 장가갈라믄 그 정도 투자는 해야지.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까 텐트를 쳐 놓고 당분간 기거하면서 지내는 거지. 그런 노력과 인내심도 없이 거저 여자를 얻을라구? 기껏 받아낸 여자가 늙수그레한 할머니라도 어쩌겠어. 이게 내 팔자구나 하며 델꼬 살아야지. 어차피 우리 인생이란 게 복불복이니까. 총각으로 늙어 죽을 바에야 그래도 그게 낫지 않겠어 낄낄낄.

 

 

 

 

 

 

 

 실없는 농담으로 노총각들 놀리기 좋아하는 아저씨의 말 아니더라도 뜬금없이 그곳이 가고 싶었다. 예전 어느 때 한번 가보긴 했지만 돌아와서 유리상자에 갇혀 있던 고란초에 대한 미안함을 후기로 남겨 놓은 것 밖에 전혀 기억이 없다.

 꽃잎처럼 떨어진 삼천 궁녀의 전설은 말 그대로 전설일 뿐이다. 그 당시 백제 인구를 따져 보면 궁녀가 삼천이란 건 어불성설이고 또한 그 많은 사람을 수용할만한 궁궐이 과연 가능할까.

 그건 재밋거리로 그대로 두기로 하고,

 벼랑 위에서 내려다보면 파란 금강이 유유히 흐르는데 실제로 그 천야만야 강물로 떨어지긴 어려워 보인다. 물에 떨어지기 전에 벼루 바위에 부딪쳐 죽게 되어 있다. 육상선수가 벼룻길을 힘껏 도움닫기하여 몸을 날리면 모를까 실제로 삼천궁녀가 몸을 날렸다 한들 죄다 강물이 아닌 벼루에서 죽었을 것이다. 상상해 보면 그 얼마나 처참한 참상인가. 바윗돌들은 살과 피가 튀어 시뻘건데 그 위에 또다시 떨어지는 몸뚱아리들. 어떤 사체는 나무에 걸리고 어떤 사체는 바윗돌에 걸리고 그 위에 다시 겹쳐지곤 하다가 강물로도 떨어지고 바위와 강은 온통 시뻘갰을 것이다. 지옥이 있다 하나 그 보다 무서운 참상이 있을까.

 

고란사

 

고란초.

고란초가 있어서 절 이름을 고란사로 했는지, 고란사에  있어서 풀 이름을 고란초로 지었는지 아직도 명쾌한 답은 없다.갉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고란사 법당에서 바라본 금강.

 

절벽에 써넣은 落花巖 글씨는 송시열의 글이라고 전해지는데 이렇듯 전국의 명승지마다 새겨 놓은 글씨들이 난립한다.

당시야 자연환경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니 속상하지만 비난할 수만은 없는데

저렇듯 글씨에다가 빨간 페인트로 칠해 놓은 건 기가 막힌 짓이다. 흉물도 저런 훙물이 없다.

북한의 명산 바위마다 김 씨 일가 찬양하는 글귀를 써 놓은 것과 같다.

백마강 유람선 업자가 한 짓이라는데 부여시 당국은 저걸 또 그대로 수수방관하고 있으니 참.

 

 

 허구로 윤색된 천 사백년 전의 비극을 두고 우리는 얼마나 왜곡된 삶을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어느 것 하나 진실은 없어 보인다. 그저 여건이 주어지는 대로 그것에 맞춰 살면 그만이다. 강물은 제 성질대로 흐를 뿐이다.

 

 

 

                         

                    

 

조명암 작사 임근식 작곡 이인권 오래 : 꿈꾸는 백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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