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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단풍나무 숲길

예전에는 꽃이 만발한 봄날도 단풍이 새빨갛게 물든 가을날도 별 감흥없이 심상하게 맞곤 했다. 봄인가보다, 가을이네. 그저 그거였다. 오히려 이제 이만큼 나이 먹다 보니 계절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센티멘털해진다. 단풍은 언제쯤 절정일까 일기예보에 집중하기도 하고 이번 주를 놓치면 이 가을을 영영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조바심도 갈마든다. 내게 남은 가을이 소년시절 적처럼 하 많이 남아있는 게 아니라는 무의식의 조급증임을 안다. 그러니 이 귀중한 가을을 예전처럼 허투루 보내고 말 수는 없는 절박함이기도 하다. 독립기념관의 단풍숲길이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예의 언제쯤 단풍이 들까 노상 검색하다가 정한 날이 11월 6일이었다. 혼자 가도 좋지만 카페에 정기적으로 깃발을 드는 입장이니 이걸로 스..

10월 안성팜랜드

안성팜랜드를 지난 8월에는 유명한 해바라기를 보고 왔는데 당시 무슨 이벤트 행사기간이었는지 입장권을 한 장 더 주는 거였다. 12월 31일까지 유효기간인 것을 추운 겨울에야 그닥 볼 만한 게 없을 것 같아 10월 어느 날 다시 방문하다. 역시 명불허전 아름다운 풍경들. 유럽풍의 이런 이국적인 풍경들이 참 좋다. 갑자기 닥친 한파가 여러 날 이어지면서 나들이객들의 옷차림이 영락없이 겨울이다. 음 가을도 끝나가는 분위기다. 안녕 여름... 알렉산드라 : 지난 여름의 왈츠

배추고도 귀네미 마을

저 많은 배추를 누가 다 먹을까. 1박2일에 방영된 후로 유명해져 한때 그럭저럭 호기심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기도 햇던 곳이다. 이 곳에 올라보면 그 독특한 지형이 한번도 안가본 안데스산지 같은 풍광이다. 관광객이 보기엔 멋진 뷰지만 이곳은 뜨거운 뙤약볕 아래 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잇는 곳이다. 어디라고 그렇지 않을까. 시원하게 그린색으로 펼쳐진 전원풍경이 도시인들에게 낭만적인 정경이래도 거기 엎드려 일하는 농부들은 뼈 빠지는 삶의 터전인 것이다. 몇 년 동안 여름철이면 하장 일대에서 배추작업을 했었다. 그때 이 귀네미 마을에서도 몇 번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등이 휠 것 같은 힘든 노동의 날들이었다. 보기엔 아름답지만 저 가파른 자드락 돌밭에서 비료를 지고 오르내리는 일은 진정 막장인생의 ..

송지호연가

80년대 초반 미애라는 여가수가 있었다. 크게 뜨지는 못했지만 당시에는 라디오와 TV에 자주 출연하는 등 짧은 기간이나마 제법 인지도가 있었다. 가창력이 있어 좀 빛을 볼 줄 알았더니 슬그머니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부른 로 인해 강원도 고성에 그런 호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다시 송지호를 가다.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서 바라보는 풍취는 그저 그렇다. 건물이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이 너무 많아 조망이 좋지 않다. 그냥 호수 둘레를 걷는 것이 좋다. 송지호는 석호다. 모래가 쌓여 가두어진 호수다. 두 눈이 파래지도록 여름의 진초록이 아름다운 호수다. 관광객이 떼 지어 몰려들 만큼 알려지지 않아 아직은 청정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호수 주변엔 드넓은 습지가 둘러싸고 있다. 보통은 송지호만 둘러보..

도시투어 송도

바다 위에 세운 도시. 간척할 때부터 장기적으로 계획된 도시.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인공으로 꾸민 도시 송도. 실은 원래 있던 섬이 아니니 송도라는 이름은 좀 뜬금없다. 중앙공원이라 하면 될 걸 꼭 센트럴파크라고 해야 됨? 국제도시라서? 센트럴파크라고 하면 좀 고상하고 우아한가. 자연의 풍경도 물론 아름답지만 완벽한 인공의 도시도 아름답다. 어느 것 하나 허술하게 지나치지 않은 완벽에 가까운 인공미. 구석구석 틈바구니 둘러볼 것이 많다. 때론 아, 이런 기발한 발상이라니! 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한 특별한 도시 송도 여행이다. 63빌딩이 오래도록 회자되고 특히 지방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건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어서다. 송도에는 그보다 높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전에 수..

영덕 벌영리 메타세쿼이아 숲

오늘 10월 중순인데 엄청 덥다. 숲에 바람 한 줄기 안 들어오고 등골에 땀이 송글송글. 뉴스에서는 이상고온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어쩐지. 나만 더운 게 아니었구나. 내일부터는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한다. 영덕 벌영리 메타세쿼이아숲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곳인데 어찌들 알고 찾아왔는지 주차장에 차가 가득하다. 아직 여름의 잔상이 가득한 푸른 숲속의 풍경이다. 이제 저 푸른 저 나뭇잎도 조락하기 시작할 것이다. 좋은 나날들이다. 10월의 멋진 날이다. Meav - The Mermaid

곰소소금밭길

예전 정선 숲에 살 적에, 비어 있던 옆 폐가에 부부가 이사를 왔었다. 십 몇 년을 신안의 염전에 있다가 이젠 힘들고 지쳐 산으로 왔다고 했다. 나이가 나보다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겉늙어 보이는 데다 굴왕신 같은 매골이어서 환갑도 더 지나 보였다. 얼굴은 새카만데다 버석거리는 피부. 한눈에도 고생에 찌든 인생이 보였다. 일년 정도 그 폐가에 살다가 큰골로 집을 얻어 갔는데 그 이후로는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그 아저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깝게 지내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몹시 우울했다. 한 가련한 인생을 떠나보낸 것 같은 슬픔이었다. 내 인생도 그보다 나은 것도 아니면서. 부안마실길의 한 구간으로 왕포에서 곰소까지의 이 길이 ‘곰소소금밭길’이다.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

신의 정원 옥천 수생식물학습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13-14) 청소년 시절에 루이제 린저의 을 감명 깊게 읽었다. 성경에 나오는 구절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소설이다. 대청호 호안가 언덕에 있는 옥천 수생식물학습원은 저 ‘좁은문’이라 쓴 문으로 들어간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간다. 이곳에 오면 결코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말고, 바람보다 앞서가지 말고 천천히 관조하며 거닐라는 배려의 의미로 작게 만들었을 것이다. ‘수생식물학습원’이라는 이름은 교육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이곳은 멋진 정원이다. 인공적이면서도 그 인공적인 느낌을 최소로 줄여 짜장 느릿느릿 산책하게 되는 정원이다. 유럽풍의 건물과 ..

군위 화본역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지금도 여객열차의 기능을 하고 있다. 대부분은 관광객이다. 역사가 가장 아름답다는 타이틀이 붙은 역. 입장료 1000원이다. 간이역이지만 역무원이 근무한다. 역무라기보다는 입장료 매표업무다. 주차장은 있는데 내방객이 많아 구석구석 빈자리 찾아 헤매다 겨우 골목길에 비집고 주차함. 화본역 꽃 진 물자리, 젖꼭지 달렸네 자다 잠 깬, 꽃물 든 목숨이네 앉은 자리 꽃 진 자리 꽃자리 선 자리 꽃자리 꽃 뿌리 눈물 뿌리 방울새 어디 서서 우나 배꽃. 메밀꽃, 메꽃 배꼽 눈 보이네, 배꼽도 서 있네 녹물 든 급수탑 억새풀 고개 숙인 목덜미 눈물 포갠 기다림, 설렘 흰 겨울 눈꽃에 젖네 어머니 젖꽃 어머니 젖꽃 젖꽃 실뿌리, 실, 실, 실, 웃는 실뿌리 오솔길, 저녁 낮달로 떴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