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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엔딩

만추? 가을이라 하기엔 많이 늦은 철. 낙엽의 계절. 길음동에서 개운산책길, 고려대학교, 숭인원 영휘원, 홍릉숲, 동대문은행나무길을 걸어 회기역까지 낙엽을 밟다. 또 눈물이 마렵다. 이놈의 지독한 가을앓이. 20여 명 중에 남자는 나 하나다. 이런 성비...헐! 11월 중순이면 오들오들 추울 철이건만 올해는 후텁지근한 나날이다. 이상고온이라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지만 여행하기 좋고 걷기 좋은 날씨라 그건 또 싫지 않다. 어쨌든 괴산터미널에는 이미 겨울이 들어와 있었다. 목마와 숙녀

비내섬에 억새가 한창이다

병원하고는 인연이 전혀 없을 줄 알았더니 나이가 들면서 병원 가는 일이 자꾸 생긴다. 허리가 아파 첫날은 괜찮아지려니 하고 출근해서 일을 했는데 밤새 고통스러워 잠을 설쳤다. 아침이 되니 영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괜히 무리하다 영원히 망가지느니 하루 쉬기로 작정하고 병원엘 가다. 내가 혐오하는 부류 가운데 하나가 의사다. 그렇지만 또 아쉬울 때 찾게 되는 게 또 의사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아이러니! X레이를 찍고 10여 분간 척추에 주사액을 주입하고, 처방전을 받아 약을 먹고 나니 완전하진 않지만 제법 움직일 만하다. 밤에는 고통도 없어졌다. 의사들! 그렇다고 당신들이 좋아지진 않지만 당신의 능력은 충분히 존경한다. 하루를 병가를 냈으니 시간이 널널하다. 의사는 집에 가서 한 시간 누워 있으라 했지만 ..

원주새벽시장

아직 사위는 어둡다. 유명한 원주새벽시장을 구경하려고 잠을 조금만 자고 부지런을 떨었다. 아침형인간이 아닌 내가 이렇게 여명이 오기 전에 나서는 건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세상은 아직 어둡고 캄캄한데 원주천변 장터는 이미 성시였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얼마나 부지런한 거야. 어쩌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자정보다는 새벽이 가까울 시각에 귀가하려고 걷다 보면 그 시간에 벌써 좌판을 준비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볼 때가 있곤 했다. 그럴 때 세상엔 열심히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한껏 게으른 나를 잠깐이지만 자책하기도 하고. 한쪽 끄트머리에 먹을거리가 있다. 날은 춥고 마침 시장도 하고, 모락모락 오르는 김에 허출한 속이 난리다. 강원도 특산물인 메밀적을 시켜 먹는다. 오랜만이다. 어릴 적 집안이나 이웃..

진안 모래재 메타세쿼이아 길 가을

짙은 초록의 여름도 풍경도 환상적이었다. 가을 풍경은 어떨까 궁금하여 다시 찾은 모래재. 이번에 때를 잘 맞춰 온 것 같다. 붉은색도 아니고 황금색도 아닌 메타세쿼이아의 독특한 색조. 이 길에 서면 깊은 가을에 갇힌 것 같다. 핫플레스에는 어김없이 출몰(?)하는 카메라 든 언니오빠들. 본의 아니게 저 카메라들 앞에서 모델이 되었다. 저 안에 내 모습이 수십 장 들어 있을 것이다. 내가 스타일이 제법 괜찮으니 저들도 제밥 괜찮은 작품사진들 얻었으리라. 이제 저 침엽이 다 떨어지면 겨울이다. 안네 바다 : Varsog

가을 정취가 절정인 날에 마석역을 떠나 북한강변으로

조지훈의 묘가 있는 마석역 - 모란미술관 - 메타세쿼이아 자전거길 - 금남저수지 -북한강변 - 대성리 계절이 좋았겠지. 나뭇잎이 물들고 조락하는 시절이니 이곳 아닌 다른 어느 곳도 아름답지 않겠는가. 모란미술관은 원래 입장료가 있다. 직영 커피점에서 커피를 사먹으면 입장하는 것이니 입장료라 하기는 뭣하다. 그런데 이날은 우리가 운이 좋았다. 전시프로그램이 없는 날이어서 무료개방한다고 카페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한다. 모란미술관 정원의 고품격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것도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가을 오후에. 로드 매퀸 : Long Long Time

설악 흘림골의 가을

그곳에 단풍은 없었다. 가을단풍의 대명사 설악. 그중에서도 3대 명소에 꼽힌다는 흘림골을 들어갔다. 예전 암반 추락사고로 폐쇄했던 계곡을 7년 만에 다시 개방했다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 여러 날 청명한 날이 이어지더니 하필이면 내가 도착한 아침부터 이 지역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험한 산행을 각오한다. 상강(霜降) 날이었다.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최절정이라는 절기 상강 - 그런데 단풍이 없었다. 기온이 몹시 차다. 어쩌면 비가 눈이 되어 내릴 수도 있겠다 싶은. 가을비에 계곡과 초목이 촉촉이 젖었다. 들머리에서 우선 휘~ 둘러본다. 단풍잎이 곱지가 않다. 이미 절정이 지나 거의 퇴색되어 있었다. 실망이다. 설악 가운데서도 3대 명소라는 명성이 무색하다. 내가 너무 늦었다. 비도 오고 단풍은 ..

누나들과 가을여행

6남매. 큰형은 오래 전에 돌아가시고 남은 5남매. 누나가 셋이다. 모두 살아 있어서 고맙다. 세 누나와 함께 2박3일 여행을 다녀오다. 실은 누나들이 주체고 나는 서포터다. 저거들 남편도 다 놔두고 막냇동생을 기사로 채용했다. 2007년 봄에 이어 또다시 프로젝트. 그때는 어느 정도 젊었지만 이제는... 막내인 내가 60대를 앞두고 있으니 어련할까. 늙은 큰누나를 위해 마련한 여행 프로젝트였다. 어쩌면 이제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서글픔과 조바심의 발로였다. 양양 바닷가 한 펜션을 예약했다. 누나들을 위한 나의 선물이었다. 바다뷰가 좋은 펜션이었다. 제법 고급진 숙소를 접하고는 다들 좋아한다. 낙산사 홍련암 설악해변 아바이마을 대포항 주문진 강릉커피거리... 평소에 내가 알고 있던 장소를 추천하며 충실하..

검은 바다 전설

내륙의 산골은 그 아침에도 싸늘했다. 약속시간을 한 시간이나 늦춰야 되게 늦잠을 잤는데 그제도 마당에 하얀 서리가 덮여 있었다. 그의 얼굴을 오랜만에 본다. 늘 가까이 있는 느낌이지만 실상 1년만이다. 묵호항... 오들오들 떨 정도로 추운 산골의 아침과는 확연히 다르게 따뜻하다. 잔잔한 바다. 고요한 바다. 항구에 가면 사람의 냄새가 난다. 비릿한 생선냄새가 아닌 활기차고 부산한 삶에의 의지로 가득한 인간 냄새. 아직은 새벽어둠이 푸르스름할 때 거친 파도와의 비장한 게임을 마친 고깃배들이 돌아오면 선창과 어판장은 이미 생활의 가장 중심에 들어 왁자지껄 부나하다. 아침놀을 날개에 얹은 갈매기떼 어지러이 날고 몇 놈은 밤새 일한 어부보다 제가 더 고단한 척 배의 이물에 앉아 있다. 바다는 그렇다. 더구나 항..

홍주, 그 붉은 유혹

술을 아주 좋아한다고 구라를 친다. 그러면 내가 억병 주태백인 줄 안다. 기실 소주 두 잔이 적량이고 그 이상은 못 마신다. 까무라치는 게 아니라 속에서 받아주질 못해 토악질을 한다. 그러므로 여태 필름이 끊긴다는 걸 경험해 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 그러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구라는 아니다. 술 엄청 좋아한다. 많이 마시지 못할 뿐이다. 맥주만 말고 모든 술을 다 좋아한다. 진도 홍주. 빨간술. 다른 음식들도 그렇지만 술도 역시 비주얼이 좋은 걸 선호한다. 맛이야 다 거기서 거기고 우선은 강렬한 유혹의 마력이 있음. 맥주는 싫어한다. 우선은 맛이 싫고 비주얼이 그렇다. 꼭 오줌 같다. 거품이 덮이면 더 그렇다. 맛도 오줌 같다고 하면 맥주 비하일까. 홍주. 알코올 40% 독주다. 한 잔만 마..

강릉 월화거리 커피거리

KTX가 들어오고 구 영동선이 폐쇄됐다. 강릉 시내를 지나던 옛 철로를 걷어내고 새로 조성한 테마거리가 월화거리다. 청춘시절에 청량리에서 출발하여 해돋이 무렵에 정동진에 도착하는 열차가 있었다. 특별히 운행한 게 아니라 운행배차의 하나였고 청춘남녀들이 많이 타던 노선이어서 토요일의 그 열차는 늘 매진이었다. 서울이 아닌 강원도에 살던 나도 그것을 타려고 일부러 애인이랑 청량리로 가곤 했었다. 연인과 1박 2일 보내곤 싶지만 모텔을 가기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던 젊은이들의 차선의 선택지였던 셈이다. 이젠 가버린 추억이다. 낭만은 사치고 고속질주가 진리다. KTX는 순식간에 우리의 여행문화를 바꿔 놓았다. 근래 다시 토요일 밤에 그 열차를 운행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어쩐지 김이 빠진 모양새여서 옛 추억이 그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