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위는 어둡다.
유명한 원주새벽시장을 구경하려고 잠을 조금만 자고 부지런을 떨었다.
아침형인간이 아닌 내가 이렇게 여명이 오기 전에 나서는 건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세상은 아직 어둡고 캄캄한데 원주천변 장터는 이미 성시였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얼마나 부지런한 거야.
어쩌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자정보다는 새벽이 가까울 시각에 귀가하려고 걷다 보면 그 시간에 벌써 좌판을 준비하고 있는 할머니들을 볼 때가 있곤 했다.
그럴 때 세상엔 열심히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한껏 게으른 나를 잠깐이지만 자책하기도 하고.
한쪽 끄트머리에 먹을거리가 있다. 날은 춥고 마침 시장도 하고, 모락모락 오르는 김에 허출한 속이 난리다.
강원도 특산물인 메밀적을 시켜 먹는다. 오랜만이다. 어릴 적 집안이나 이웃 행사 때 부쳐 먹던 메밀적 맛 그대로다. 역시 강원도의 맛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윽고 어둠이 걷힌다. 밝은 문명이 오듯 장터가 환히 열렸다. 모든 농산물들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도 부쩍 많아졌다.
원주새벽시장은 농산물이 생산되는 세월, 즉 봄 4월부터 가을11월까지 운영된다.
이제 이만큼 날도 추워지고 서리도 내린 11월이니 이 장터도 곧 긴 동면에 들어갈 것이다.
강원도 태생이라 이런 강원도 특유의 정서가 있는 풍경이 도탑다.
수구초심이라더니 나이 먹으면서 점점 옛 고향과 추억이 그리워진다.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가 되어 가고 있나 보다.
저런 밥밑콩을 넣고 지은 밥은 얼마나 구수하게 맛 있을까.
장터엔 정말 없는게 없다.
이건 메뚜기 볶은 것.
꽃 파는 아줌마도 있다.
저거 한 뿌리 먹었으면 몸이 가뿐해지겠구만서두.
날이 밝으면서 사람들은 발 디딜 틈 없이 밀려든다.
이곳 새벽시장은 오전 아홉시까지다.
오늘은 토요일인데다 오일장이 겹치는 날이라 일종의 대목인 셈이다.
흥성거리는 풍물을 뒤로 하고 빠져나왔다.
잠을 줄여 좀은 아까워도 구경 한 번 잘했다. 맛난 메밀적도 먹었으니 꽤 괜찮은 ‘시장구경’이었다.
매우 알싸한 가을 아침이다.
들판에 허옇게 서리가 내렸다.
이미자 : 그리움은 가슴마다
유년시절에 접한 몇 안되는 대중가요.
가슴이 두근거리며 그 시절이 곱다시 그리워지게 하는 노래다.
이것도 수구초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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