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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이팝나무 길

봄이면 전국 어디나 벚꽃 명소 이닌 데가 없어서 굳이 유명한 곳을 찾아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그만큼 벚나무는 우리 일상속에 함께 있는 나무가 됐다. 언제부터인지 이팝나무도 부쩍 흔해졌다. 4월 환하게 봄을 밝히고 사라진 벚꽃에 이어 5월에 또다시 빛을 발하는 이팝나무 꽃! 이제 어디서나 보게 된 이팝나무인데 그중 명소라 할만한 데가 진천이다. 백곡천을 따라 약2km 늘어선 이들이 매년 이맘때쯤 뿜어내는 아우라는 가히 장관이다. 해마다 이곳을 찾곤 한다. 아름답지만 명성은 높지 않아 그 한적한 하얀 터널 속을 거니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올해도 화려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진천군에서 행사를 새로이 시작했다. 군에서야 지역 홍보용으로 이만한 콘텐츠가 없으니 섭섭하지만 비난할 수는 없겠..

돌담이 있는 풍경, 군위 한밤마을

여기는 군위 한밤마을. ‘한밤’이란 이름에 별 의미는 없다. 부계면 大栗里(대율리)를 우리말로 풀어 쓴 것이다. 밤이 많이 나는 마을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밤마을의 상징은 돌담이다. 고려 중기 부림 홍씨 입향조가 이주해 오면서 형성된 마을이라 한다. 이곳은 온통 돌 투성이어서 집을 짓거나 농토를 가다룰 때 골라낸 엄청나게 많은 돌들로 담장을 쌓으면서 돌담마을이 됐다고 한다. 제주도가 아닌 내륙에 이런 독특한 돌마을이 이례적이어서 ‘내륙의 제주도’라고 한다. 알음알음 듣고 있어서 언제 한번 가 봐야지 하다가 봄빛이 절정으로 무르익은 날 봄나들이 삼아 휘적휘적 고샅을 돌아다녔다. 맨 돌담이다.(아주 오래전 찰스 브론슨의 맨담 광고가 생각났다) 그리 큰 기대는 안 했는데 걷다 보니 의외로 규모가 크다. ..

선림사에서 다시 길을 시작하려 한다

젊어 한때 방황을 했다. 그 방황이란 게 내게만 있었던 특별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질풍노도라는 이해불가한 시기의 강을 건넜을 테고 스스로 심각했다고 생각하는 나의 방황도 그런 수준의 것 이상은 아닌 치기에 불과했다. 젊은 시절엔 근본 없는 번민에 괴로워하고 쓸데없이 고민하고 스스로 고뇌거리를 찾았던 셈이다, 돌아보면 그것이 멋인 줄 알았고 남 보기에 깊은 성찰을 하는 철학자 따위로 보일 것으로 착각하는 소아적인 치기였다. 오히려 나이 먹은 지금은 고민도 없고 걱정은 더 없으며 우선은 깊이 사고하는 것 따위가 귀찮아 죽겠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더니 마인드는 과연 순진무구해지는 것 같다. 그 고뇌하는 척 했던 시기에 나는 절과 암자를 찾아 돌아다녔다. 정찬주의 포켓판 책을 주머니에 넣고 책에 나오는 암자들..

새만금, 모진 비바람 속을 걷다

아직 세상이 깊은 어둠에 빠져 있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몽롱한 머리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어릴 적 장에 나가는 아부지가 새벽조반을 먹는 소리를 잠결에 듣곤 했는데 그 새벽 아부지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설렜을까 삶의 무게에 힘겨웠을까. 칠흑 같은 어둠을 찢고 달린 버스는 바다 한가운데 우리를 배출한다. 바다인 건 알지만 보이는 모든 것이 어둠이라 실감은 나지 않는다. 새만금이다. 몹시 바람이 불고 버스가 토해내자 마자 후두둑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이룡일 비 내린다는 예보는 이미 접했으니 다소 오긴 하겠지. 첫 발걸음을 떼면서부터 빗방울이 굵어진다. 사위가 어두우니 바람소리는 유난히 위협적이다. 저만치 고기잡이배 몇 척의 불빛이 이곳이 바다임을 알려준다. 우리는 청승이라 신새벽 비바람 속으로 들어왔지만 ..

보령 천북폐목장

근래 각광을 받고 있는 보령의 청보리밭. ‘천북폐목장’이라는 이름의 핫플레이스다. 정식 소명은 ‘보령청보리밭’이고 원래 목장이었다고 한다. 너무도 유명한 고창의 학원농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그래서 그와는 또다른 매력의 풍광. 봄철 이맘때가 가장 눈 시리게 푸른 풍경이다. 저 동산을 첨 마주쳤을 때 꼭 텔레토비동산 같아 조금 웃겼다. 언덕 위의 건물은 구 목장의 축사였던 걸 지금은 카페로 리모델링해서 근사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카메라든 언니오빠들의 포커스는 푸른 보리밭보다 저 건물이다. 언덕 위의 하얀 집이거나 혹은, 우리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것을 꿈꾸곤 했지. 하얀 담장에 빨간 넝쿨장미를 올리고. 동화 같은 그 꿈을 지금쯤엔 다들 이루고 살고 있으리니. 언덕 위의 집 청보리..

증도, 해가 뜨지 않는 섬

참 멀고 먼 땅.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이 남는 법이지만 막상 그 길을 갔다면 그닥 새로울 것도 없고 역시나 평범한 길임을 깨달을 테지. 오래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섬 증도. 작은 기다림 끝에 드디어 발 디디다. 여기도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특별히 판타스틱할 것도 없고 경탄스러울 것도 없고. 여느 갯가마을 어디에서나 보는 흔한 풍광 그대로다. 그렇다고 실망했던 건 아니다. 미지의 세계, 즉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었다. 바다는 청량하고 해변은 드넓었다. 우전해수욕장은 그 길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인적도 드문 이 섬과 바다는 그래서 내가 멍때리고 소요하기에 최적의 섬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이상향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함초빵 안에 든 초록색 소가..

기차 타고 1박 2일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예전에 한번 충주역에서 진행한 열차여행을 다녀왔더니 그 후로 충주역이나 제천역에서 특별관광열차 일정이 있으면 공지를 보내 준다. 이번에 이라는 테마로 부산을 간다고 문자를 보내 왔다. 호텔 바캉스라는 신조어 ‘호캉스’가 나쁜 말은 아닌데 좀 스멀거리는 게 어감이 좋지 않다. ‘호빠’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낱말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호텔은 구미가 당기지 않지만 방문지가 송도해상케이블카, 태종대, 행동용궁사, 부산X더스카이, 그리고 해운대라 가보고 싶었던 태종대와 해동용궁사가 있어 참가신청을 했다. 무엇보다도 장시간 기차를 타는 것이 가장 맘에 들었다. 비용이 29만 5천원. 비싼 편이다. 나 혼자 다녀오면 절반도 안될 비용이지만 때론 다른 이의 리딩에 편하게 따라다니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