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설악 흘림골의 가을

설리숲 2022. 11. 1. 19:46

 

그곳에 단풍은 없었다.

 

 

가을단풍의 대명사 설악.

그중에서도 3대 명소에 꼽힌다는 흘림골을 들어갔다.

예전 암반 추락사고로 폐쇄했던 계곡을 7년 만에 다시 개방했다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

여러 날 청명한 날이 이어지더니 하필이면 내가 도착한 아침부터 이 지역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험한 산행을 각오한다.

 

 

상강(霜降) 날이었다.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최절정이라는 절기 상강 - 그런데 단풍이 없었다.

 

기온이 몹시 차다. 어쩌면 비가 눈이 되어 내릴 수도 있겠다 싶은.

 

 

 

 

 

 

 

 

 

 

 

 

 

 

 

가을비에 계곡과 초목이 촉촉이 젖었다.

들머리에서 우선 휘~ 둘러본다.

단풍잎이 곱지가 않다. 이미 절정이 지나 거의 퇴색되어 있었다.

실망이다. 설악 가운데서도 3대 명소라는 명성이 무색하다.

내가 너무 늦었다.

 

비도 오고 단풍은 이 지경이니 설렘과 기대가 추락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다.

이 흘림골은 내년 2월까지 한시적으로 개방된다고 한다.

훼손을 줄이기 위해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한다. 원래는 그 전 주에 가고 싶었으나 이미 예약이 매진된 상황이라 한 주를 늦춰 어렵게 예약을 했다.

그러니 귀한 기회를 그냥 썩힐 수는 없었다.

 

갈색으로 퇴색한 단풍잎들마다 함추룸 빗물.

 

 

비 덕분에 비교적 한가한 인적이다.

이제까지의 후기들을 보면 앞사람 궁뎅이만 보고 왔노라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벅적거리지 않는 이런 혜택은 또 괜찮다.

 

 

 

 

여심폭포 女深瀑布

이름을 이렇게 붙인 이유를 알겠다.

 

 

 

빨간 단풍잎이 없는 흘림골에 노랗게 새틋한 건 생강나무다.

 

 

 

 

 

 

 

 

 

 

 

 

 

 

 

 

그래도 명불허전.

비는 내려도,

단풍이 없어도 설악은 역시 절경이다.

이럴진대 가보지 않은 금강산은 어느 정도일까.

 

 

 

 

 

 

 

 

 

 

 

용소폭포 쯤 내려오니 하늘이 벗개지며 설악계곡이 환히 빛난다.

감탄하기보다는 약이 올랐다.

이렇게 멀쩡할 걸 내가 산에 든 두 시간 남짓 그때만 비가 내린 거냐.

드문드문 붉은 단풍나무도 보인다. 이런 단풍나무는 포토존이 돼서 너도나도 길게 나라미를 서서 차례를 기다린다.

 

 

 

 

 

 

 

 

 

 

 

빨간 단풍은 없었어도 설악의 비경은 마땅하게 표현할 단어가 없게 아름답다. 햇빛 받고 환하게 펼쳐진 저 위대한 신의 선물.

정비석의 <산정무한>을 찾아 읽어 봐야겠다. 그는 이 빛나는 자연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한동안 환하더니 내가 산행을 마치고 설악을 떠날 즈음 다시 비가 내렸다.

온통 비의 세계.

거침없이 낙엽이 지고 나목들은 더욱 스산하게 비어져 가고 있었다.

가을의 실종이다.

우리들의 가을은 어디로 갔나.

 

 

그러더니 오늘 과연 강원 산간에 눈이 내려 쌓였다고 한다.

어쩐지.

 

이젠 짜장 겨울에 들어섰나 보다 이 산협은.

하루 늦게 갔더라면 눈 쌓인 진귀한 풍경도 보았겠거늘.

 

 

 

 

                나나 무스쿠리 : 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