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156

문경 소야벚꽃길

영남 쪽으로 여행하다 보면 문경 부근 중부내륙고속도로 옆 들판에 벚나무가 길게 줄지어 있던 것을 보곤 했다. 관광지도 아닌 들판에 뜬금없이 벚나무를 저리 심었을까. 어쨌든 벚꽃 피면 볼만하겠구나 생각했었다. 언제 한번 꽃피면 가 보리라 하면서도 유명관광지가 아닌 탓에 잊어먹고 있었는데 이번 주말 다른 곳에 가는 중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아, 잊고 있었네. 예정에도 없이 문경새재IC로 급히 빠져 나와 이 봄꽃들을 감상하는 오후 한때였다. 알려지지 않은 외진 시골 들판을 사람들은 어찌 알고 이리들 찾아오는지. 지도를 찾아보니 이 개천이 조령천이다. 좁은 농로에 차들이 밀고 들어와 혼잡하니 벚꽃 감상이 그닥 여류롭지는 않았다. 평소는 그닥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는 평범한 시골 천변이래..

전주 자만벽화골목

보통의 관광객들은 한옥마을만 돌아보고 지척인 이 벽화마을은 잘 모른다. 오목대에서 육교를 건너면 바로 만나는 강파른 산록에 형성된 마을이다. 으례 그렇듯이 이 달동네에도 골목을 벽화로 치장했다.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의 벽화인데 좀 현란하여, 부정적인 말로는 귀살스럽다고 할 수도 있고 더 심하게는 귀신더버기라고 할 사람도 있을 듯하다. 날이 궂거나 어스름이 내릴 때, 혹은 어두운 밤에는 지나가기에 좀 무서울 것도 같다. 그런만큼 빛나는 낮에는 화려한 색채가 아름답다. 길버트 오설리반 : Alone Again

도시투어 대전

도시투어 대전. 소제동골목, 벽화와 철도관사촌 기차역이 있는 곳은 대체로 레트로의 클래시컬 볼 것들이 많다. 오가던 사람들, 이별과 상봉이 있었으니 이야깃거리도 많았을 테고 이들을 다 감싸안은 마을은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가 되기 마련이다. 대전역 옆댕이 중앙시장이 그 대표적인 장소다. 중앙시장은 대전의 상징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없는 게 없다. 우리 어머니 표현대로 ‘처녀불알’까지 있다. 이번엔 들르지 않았지만 천원 짜리 국밥집도 있다. 철도관사촌은 현재 카페나 퓨전음식점이 영업을 하고 있다.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고풍스런 외관들이다. UFO를 닮은 목척교는 대전천의 명물이 되었다. 대전역에서 은행동 대흥동을 지나 옛 충남도청까지의 거리가 이번 나의 도시투어의 여정이고, 또 이곳만 둘러보아도 대전을 거..

우도 올레길

육지에서는 여러 날 참혹한 산불의 재앙이 이어지고 있는데 먼 나라인 듯 제주 섬은 고요하고 따스하게 봄이 한가득이다. 이처럼 고즈넉하고 따스하게 봄을 맞고 싶은데 우리의 봄은 왜 매양 이리도 아픈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천안함 세월호 제주4‧3 5‧18 그리고 봄만 되면 연례행사처럼 일곤 하는 동해안 산불. 또하나, 윤석열 당선. 시일야방성대곡 암울한 봄이다. 섬은 내내 강풍이 몰아쳤다. 이놈의 바람 때문에 울진삼척의 참상이 극을 이루었다. 날은 완연한 봄이건만 강풍 때문에 추웠다. 봄이겠거니 하늘하늘한 옷차림으로 한껏 멋내고 건너온 아가씨들이 날씨 이변에 움츠러든 모습들이다. 우도. 제주 올레길 중 가장 걷기 좋고 풍광도 빼어난 코스인 것 같다. 유명한 서빈백사해변의 흰 모래도 아름답지만 섬 동쪽..

2월, 무주 금강변을 걷다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고 시간은, 손짓해 나를 부른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고 시간은 그저,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 속절없이 흐른다. -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노래 노랫말 중에서 차를 타고 휙휙 지나다니며 보던 금강변. 이번에 그 유장한 물줄기를 바로 곁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이었다. 메마른 흙먼지 흩날리는 고적한 이런 계절엔 생명력 충만한 기운을 느끼러 강변으로 가자. 그곳 서덜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강물과 세월이 더불어 유장하게 흐르는 삼라만상을 느낀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어. 여울져 흐르는 물은 사실은 하루 종일 강안의 모든 것들과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엔 증발하여 사라지겠지.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니고 애매한 계절이다. 마치 목적 없이 길..

바람 속을 걸어가... 양구 펀치 보울

입춘 날이었습니다. 봄은 아직 저 멀리 있고 한창 깊은 겨울 속에 들어 있는 저 북쪽 땅 양구 해안, 거기다 해발 500미터의 고분지, 펀치 보울입니다. 해안면에서 군복무를 했다는 예전 회사동료는 춥고 고생했던 이야기만 늘어놓아서 내게는 아주 몹쓸 전방 황무지 땅이라는 이미지만 잔뜩 박여 있었습니다. 그 친구도 그곳이 펀치 보울이라고 불리는 걸 몰랐던 모양입니다. 열이면 열 다 ‘펀치볼’이라 하는데 ‘펀치 보울(punch bowl)’이라 해야 맞는 표기입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화채그릇’이란 말인데 제 눈으론 먼 옛날 아주 거대한 운석이 쿵, 하고 쩔어져 움푹 패인 것 같은 지형입니다. 같은 나라 땅이면서 멀게만 여겨지던 펀치 보울을 우정 작심하여 허위허위 올랐습니다. 군장병들 즐비한 동토의 황무지? ..

대청호수 호반낭만길

호수의 고요함은 여름보다는 가을이, 가을보다는 겨울이 으뜸입니다. 이른 새벽 자욱한 물안개를 보는 게 내 소박한 로망의 하나지만 원래가 아침 잠이 많고 게으른 탓에 동트기 전 호숫가에 닿아 서는 게 요원합니다. 비록 새벽 물안개는 못 보지만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호수의 바람이 소슬하게 가슴에 들어옵니다. 알싸한 그 느낌에 머리가 선득해집니다. 기분 좋은 선득함입니다. 대청호 둘레 거리가 5백 리라고 하는데 언제 시간적 여유가 되면 그 모두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그날은 가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5백 리 여러 구간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많이 찾는다는 4구간 을 이번에 둘러 봅니다. 과연 그 이름에 어울리게 낭만적인 호반의 정취가 가득합니다. 날이 제법 추워서인지 사람들의 인적도 없는 고즈넉하고 ..

청암사, 그리고 인현왕후길

김천의 수도산에 청암사가 있다.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의 이야기가 얽힌 사찰이다. 그리고 김천시에서는 이 근방 숲에‘인현왕후길’이라는 조붓한 오솔길을 냈다. 뭐 특별히 아름답다거나 하지는 않은 그저 평범한 오솔길이다. 그래도 청암사와의 인연과, 혹시 그 옛날 왕후가 울적한 심사를 달래며 걸었을지도 모르는 흔적을 느끼는 것도 나름 의미는 있을 것 같다. 이 도량에서 보살생활을 했던 지언 선배가 늘 이야기하더니 그게 바로 청암사였다. 그리고 인현왕후와 인연이 있다는 건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인현왕후는 민유중의 둘째 딸로 숙종의 왕비인 인경왕후가 일찍 승하하고 계비로 간택이 되었다. 숙종은 가례 전부터 나인인 장옥정을 총애하고 있었으나 어머니인 명성대비는 장옥정이 간특하고 악독하다 하여 궁 밖으로 내보냈다. 그..

당진 버그내 순례길

버그내는 삽교천의 옛 이름이라고 한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인 솔뫼성지부터 시작하여 '한국의 카타콤바'라고 하는 신리성지까지 여러 성지를 잇는 일명 ‘순례길’이다. 크리스천이 아닌 내게 ‘순례’는 별 의미가 없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순례 목적으로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난 게 아니었을 것이다. 종교는 알지도 못하고 그저 ‘길’을 떠났을 것이다. 솔뫼성지 지나간 2021년은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특별희년이었다. El Bosco : Nirvana 이 노래는 스페인의 프로젝트 그룹 엘 보스코(El Bosco)와 엘보스코수도원 어린이성가대가 부르는 다. 니르바나(nirvana)는 열반 혹은 해탈이라는 불교 용어인데 기독교의 성가대가 니르바나를 찬양한다. 노래가사는 누가복음 21장의 내용으로..

고창 문수사 단풍나무길

왜 해남으로 알고 있었을까. 문수사로 마지막 단풍을 보려고 중부고속도로를 들어섰다. 오창휴게소에서 아침을 먹고는 내비게이션을 실행하려고 문수사를 입력하니 해남 문수사가 없다. 전국 30여 개의 문수사가 뜨는데 해남 문수사는 없다. 왜 해남으로 알고 있었을까. 이것저것 둘러보다가 고창의 문수사가 가장 그럴듯해 검색을 해보니 단풍 명소로 유명한 그 도량이 맞다. 내 염두에 있던 문수사가 해남이 아닌 고창이었다. 어이없으면서도 한층 가까워진 여정에 오히려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해남보다 고창이 왕복 세 시간이나 더 짧다. 명성은 거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사찰이지만 또 한 해 중 이맘때 사람들이 밀려드는 반짝 특수 시즌이다. 입구에는 들고나는 차량을 관리하기 위한 인력도 배치되어 있다. 과연 단풍 명소임을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