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156

진천 이팝나무 길

봄이면 전국 어디나 벚꽃 명소 이닌 데가 없어서 굳이 유명한 곳을 찾아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그만큼 벚나무는 우리 일상속에 함께 있는 나무가 됐다. 언제부터인지 이팝나무도 부쩍 흔해졌다. 4월 환하게 봄을 밝히고 사라진 벚꽃에 이어 5월에 또다시 빛을 발하는 이팝나무 꽃! 이제 어디서나 보게 된 이팝나무인데 그중 명소라 할만한 데가 진천이다. 백곡천을 따라 약2km 늘어선 이들이 매년 이맘때쯤 뿜어내는 아우라는 가히 장관이다. 해마다 이곳을 찾곤 한다. 아름답지만 명성은 높지 않아 그 한적한 하얀 터널 속을 거니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올해도 화려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진천군에서 행사를 새로이 시작했다. 군에서야 지역 홍보용으로 이만한 콘텐츠가 없으니 섭섭하지만 비난할 수는 없겠..

돌담이 있는 풍경, 군위 한밤마을

여기는 군위 한밤마을. ‘한밤’이란 이름에 별 의미는 없다. 부계면 大栗里(대율리)를 우리말로 풀어 쓴 것이다. 밤이 많이 나는 마을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한밤마을의 상징은 돌담이다. 고려 중기 부림 홍씨 입향조가 이주해 오면서 형성된 마을이라 한다. 이곳은 온통 돌 투성이어서 집을 짓거나 농토를 가다룰 때 골라낸 엄청나게 많은 돌들로 담장을 쌓으면서 돌담마을이 됐다고 한다. 제주도가 아닌 내륙에 이런 독특한 돌마을이 이례적이어서 ‘내륙의 제주도’라고 한다. 알음알음 듣고 있어서 언제 한번 가 봐야지 하다가 봄빛이 절정으로 무르익은 날 봄나들이 삼아 휘적휘적 고샅을 돌아다녔다. 맨 돌담이다.(아주 오래전 찰스 브론슨의 맨담 광고가 생각났다) 그리 큰 기대는 안 했는데 걷다 보니 의외로 규모가 크다. ..

그곳은 설국이었다... 내소사

딱히 갈곳이 마땅치 않던 주말이라 역시나 만만한 비내섬이나 갈까 하다가. 호남 지방에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눈구경이나 해볼 요량으로 떠난 길이었다. 과연 군산 쯤 다다르니 하늘은 어둡고 저 멀리 대기가 뽀얗다. 정말 눈이 많이 오는 듯 싶었다. 서서히 차량 속도가 떨어지면서 거의 정체 수준으로 길이 막혔다. 안날에도 대설에다가 또 눈이 내린다. 눈에 잘 뵈지도 않는 가루눈이다. 날은 또 강력 한파라 길이 미끄러우니 차들이 엉금엉금이다. 도로가 위험할 땐 이렇게 지정체 상태로 가는 게 안전하다.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지루하게 부안에 도착했다. 세상은 온통 눈세계다. 교통상황은 최악이지만 그것만 양보하고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 사뭇 눈이 날린다. 이미 어스름 저녁이 다 되었다. 모텔에서..

낙엽 엔딩

만추? 가을이라 하기엔 많이 늦은 철. 낙엽의 계절. 길음동에서 개운산책길, 고려대학교, 숭인원 영휘원, 홍릉숲, 동대문은행나무길을 걸어 회기역까지 낙엽을 밟다. 또 눈물이 마렵다. 이놈의 지독한 가을앓이. 20여 명 중에 남자는 나 하나다. 이런 성비...헐! 11월 중순이면 오들오들 추울 철이건만 올해는 후텁지근한 나날이다. 이상고온이라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지만 여행하기 좋고 걷기 좋은 날씨라 그건 또 싫지 않다. 어쨌든 괴산터미널에는 이미 겨울이 들어와 있었다. 목마와 숙녀

진안 모래재 메타세쿼이아 길 가을

짙은 초록의 여름도 풍경도 환상적이었다. 가을 풍경은 어떨까 궁금하여 다시 찾은 모래재. 이번에 때를 잘 맞춰 온 것 같다. 붉은색도 아니고 황금색도 아닌 메타세쿼이아의 독특한 색조. 이 길에 서면 깊은 가을에 갇힌 것 같다. 핫플레스에는 어김없이 출몰(?)하는 카메라 든 언니오빠들. 본의 아니게 저 카메라들 앞에서 모델이 되었다. 저 안에 내 모습이 수십 장 들어 있을 것이다. 내가 스타일이 제법 괜찮으니 저들도 제밥 괜찮은 작품사진들 얻었으리라. 이제 저 침엽이 다 떨어지면 겨울이다. 안네 바다 : Varsog

가을 정취가 절정인 날에 마석역을 떠나 북한강변으로

조지훈의 묘가 있는 마석역 - 모란미술관 - 메타세쿼이아 자전거길 - 금남저수지 -북한강변 - 대성리 계절이 좋았겠지. 나뭇잎이 물들고 조락하는 시절이니 이곳 아닌 다른 어느 곳도 아름답지 않겠는가. 모란미술관은 원래 입장료가 있다. 직영 커피점에서 커피를 사먹으면 입장하는 것이니 입장료라 하기는 뭣하다. 그런데 이날은 우리가 운이 좋았다. 전시프로그램이 없는 날이어서 무료개방한다고 카페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한다. 모란미술관 정원의 고품격 풍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것도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가을 오후에. 로드 매퀸 : Long Long Time

설악 흘림골의 가을

그곳에 단풍은 없었다. 가을단풍의 대명사 설악. 그중에서도 3대 명소에 꼽힌다는 흘림골을 들어갔다. 예전 암반 추락사고로 폐쇄했던 계곡을 7년 만에 다시 개방했다고 한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 여러 날 청명한 날이 이어지더니 하필이면 내가 도착한 아침부터 이 지역에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험한 산행을 각오한다. 상강(霜降) 날이었다. 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최절정이라는 절기 상강 - 그런데 단풍이 없었다. 기온이 몹시 차다. 어쩌면 비가 눈이 되어 내릴 수도 있겠다 싶은. 가을비에 계곡과 초목이 촉촉이 젖었다. 들머리에서 우선 휘~ 둘러본다. 단풍잎이 곱지가 않다. 이미 절정이 지나 거의 퇴색되어 있었다. 실망이다. 설악 가운데서도 3대 명소라는 명성이 무색하다. 내가 너무 늦었다. 비도 오고 단풍은 ..

강릉 월화거리 커피거리

KTX가 들어오고 구 영동선이 폐쇄됐다. 강릉 시내를 지나던 옛 철로를 걷어내고 새로 조성한 테마거리가 월화거리다. 청춘시절에 청량리에서 출발하여 해돋이 무렵에 정동진에 도착하는 열차가 있었다. 특별히 운행한 게 아니라 운행배차의 하나였고 청춘남녀들이 많이 타던 노선이어서 토요일의 그 열차는 늘 매진이었다. 서울이 아닌 강원도에 살던 나도 그것을 타려고 일부러 애인이랑 청량리로 가곤 했었다. 연인과 1박 2일 보내곤 싶지만 모텔을 가기는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던 젊은이들의 차선의 선택지였던 셈이다. 이젠 가버린 추억이다. 낭만은 사치고 고속질주가 진리다. KTX는 순식간에 우리의 여행문화를 바꿔 놓았다. 근래 다시 토요일 밤에 그 열차를 운행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어쩐지 김이 빠진 모양새여서 옛 추억이 그립..

삼강주막과 회룡포

한국의 복고풍이 조금은 짙은 곳이 예천이 아닌가 한다. 금당실에서부터 더러더러 눈에 띄는 누각과 정자들. 현재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주막이 풍양면에 있다. 물론 옛 건물은 아니나 그래도 초가지붕을 씌우는 등 옛것과 비슷하게 조성해 놓았다. 삼강주막에서 사림재를 넘으면 회룡포다. 낙동강의 지나면서 만든 독특한 지형이다. 영주의 무섬마을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회룡포가 유명하다. 이런 곳은 대개 모래사장이 넓다. 물이 휘돌면서 강변에 모래를 쌓아 놓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시에 적절한 적절한 풍경이다. 이 길을 카페 정기도보로 다녀왔다. 처음은 아니다. 그날밤 열대야가 이어질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추석도 지난 청풍명월의 계절에 열대야라니. 아무튼 사나흘 이상 고온이 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