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비 굳건하고 안락한 나무들이 있거늘 연약한 갈대에 매달려 있는 새 개개비다. 갈대숲에서 나서 갈대숲에 살다가 갈대숲에서 죽는다. 둥지도 갈대숲에 짓는다. 이들의 주식은 거미라고 한다. 거미는 먹고 거미줄로는 둥지를 짓는다. 천부적인 건축기술을 갖추고 있다. 거미줄은 같은 무게의.. 서늘한 숲/숲에서 2017.08.21
물봉선 - 나를 건드리지 말아요 옛날 아름다운 소녀 하나가 있었는데 밤하늘의 별을 좋아하였다. 소녀는 밤이면 마당에 나가 별을 보며 노래를 불렀다. 너무나도 고운 노랫소리에 반한 별 하나가 낮게 귀를 기울이다가 그만 땅에 떨어졌다. 소녀가 가슴 아파 하며 별을 땅에 묻어 주었는데 이듬해 그 자리에서 꽃이 폈으.. 서늘한 숲/숲에서 2017.08.17
휘파람새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 물론 인간들의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 새를 명금류라고 한다. 꾀꼬리 쏙독새 두견이 등. 나는 휘파람새소리가 가장 좋다. 전문가들의 실험에 의하면 전라도 새, 경상도 새, 강원도 새 지역마다 그 소리가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말하자면 휘파람새.. 서늘한 숲/숲에서 2017.08.09
조팝나무 서러운 이름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눈길이 고운 사람 말이 고운 사람 표정이 고운 사람. 웃을 때 예쁜 사람을 웃음 笑 고울 豔을 서서 소염미인이라 한다. 조팝나무가 소염파 식물이다. 눈싸리꽃, 분설화 하얀 눈이 쌓이듯 꽃이 피면 모내기철이고 잎이 누렇게 마르기 시작하면 벼.. 서늘한 숲/숲에서 2017.07.24
층층나무 키도 크고 가지도 넓게 뻗어서 넓은 장소를 차지한다. 숲에 빈 곳만 생겼다 하면 재빠르게 자리를 차지한다. 때문에 선구수종이라는, 즉 인간세의 선구자에 해당하는 별칭을 주기도 한다. 자리를 잡으면 이내 위로 쭉쭉 옆으로 확확 거침없이 몸피를 불린다. 이런 특성 덕에 나무 자신은 .. 서늘한 숲/숲에서 2017.07.14
묵향 붓꽃 이탈리아 피렌체 명문가에 아이리스라는 어여쁜 딸이 있었다. 그녀는 자연을 사랑하고 특히 푸른 하늘을 좋아하였다. 황태자와 결혼했다가 10년 만에 사별했다. 사교계의 블루칩이 된 이 여인에게 많은 사내들이 접근했지만 여인은 다 마다하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홀로 지냈다. 어느 .. 서늘한 숲/숲에서 2017.07.08
사마귀 봄부터 초여름은 반딧불이나 사마귀가 나타나 부침의 한 살이를 시작하는 계절이다. 알주머니에서 겨울잠을 잔 사마귀는 보통 5월에 태어난다. 갓 생겨난 새끼들의 생김새는 전혀 사마귀가 아니다. 알주머니에서 빠져나오면 꽁무니에서 실을 뽑아 매달린다. 매달린 채 서서히 껍질을 벗.. 서늘한 숲/숲에서 2017.07.01
쥐똥나무 꽃피는 5월이 신록의 계절이라면 6월은 울창한 숲의 계절이다. 이 빽빽한 6월의 숲 안에서도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나무와 초록의 세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향은 진하고 꽃은 흰색이다. 쥐똥나무. 인간들이 이름은 뭣같이 지어 줬어도 그 향은 은은하고 깊다. 그 열매가 천연 .. 서늘한 숲/숲에서 2017.06.23
천년의 숲, 상림 다시 함양. 14년 전 이곳서 살았었다. 다볕이라는 공동체마을에서 읍으로 나가는 연도에 이 숲이 있었다. 오래 전 고운 최치원이 이 고을 현령으로 재임할 때 조성했다는 숲 상림. 내가 생각하기레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석학은 최치원이 아닌가 한다. 이곳을 비롯해 지리산 일대는 최.. 서늘한 숲/숲에서 2016.11.12
조릿대의 꽃을 보다 지리산에 갔더니 어느 조릿대 군락이 죄다 꽃이 피어 있다. 줄기와 잎은 쇠해져 말라 가고 있었다. 곧 생을 마감하려는 생명들이다. 대나무 종류는 평생 딱 한 번 꽃이 핀다. 죽기 전에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본능이다. 모든 생명 가진 것은 다 그렇다. 고목이 된 소나무는 자신의 최후를 .. 서늘한 숲/숲에서 2016.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