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함양.
14년 전 이곳서 살았었다. 다볕이라는 공동체마을에서 읍으로 나가는 연도에 이 숲이 있었다.
오래 전 고운 최치원이 이 고을 현령으로 재임할 때 조성했다는 숲 상림.
내가 생각하기레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석학은 최치원이 아닌가 한다.
이곳을 비롯해 지리산 일대는 최치원의 흔적이 도처레 산재해 있다. 지리산에도 그가 지나갔다는 길이 있어 안내 팻말이 있고, 매해 봄 내가 차를 만드는 산청의 계곡 이름은 '고운동'이다. 그 상류에 최치원이 한동안 거처했다 한다.
함양에 살 때 이 상림 숲을 자주 거닐었었다. 읍내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에도 들러 한동안 명상을 하기도 했다.
고요해지는 심상을 빌어 글을 썼고 그 해 작가로서의 길을 들어섰다.
함양, 그리고 상림은 내 인생의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여름과 가을 숲은 늘 다녔지만 어쩐 일인지 가을 숲을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 늘 이곳의 숲이 눈 앞에 암암했렀는데 이번에 드디어 가을 깊은 상림에 들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전에 호젓한 숲을 즐기고자 일찌감치 나섰는데도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오가고 있었다. 나중에 나올 때는 그 넓은 주차장이 만차가 돼서 일대가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상림은 강렬한 색채의 단풍나무는 거의 없다. 참나무와 서어나무들이 대다수라 가을빛의 은은함이 아름다운 숲이다.
그리고 낙엽,
아 낙엽...
이 낙엽이면 늘 울고 싶어라.
상림 내의 이 광장,
그해의 여름은 월드컵으로 뜨거웠었다.
이 광장에 함양의 젊은이들이 모여 그 젊음을 폭발시켰다. 시골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다고 하더니, 나도 그런줄 알았더니 어디서 그 많은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왔을까.
한국 축구는 승승장구했고 여름은 점점 뜨거워져 갔다. 스페인을 꺾고 4강이 오르던 밤, 함양 읍내는 밤새도록 젊은이들의 환희의 함성으로 가득 찼었다.
정말 대단했다. 농협 직원들은 유니폼이 아닌 빨간 옷을 입고 근무했으면 시장의 할매들도 죄다 빨간 티셔츠 차림으로 좌판을 벌였다.
아, 두번 다시 못 올 감동의 그 여름이여.
오늘 서울에서는 근혜 양 퇴진 전국민 행진이 있는데 실은 나도 참석하고 싶었다.
워낙 정치나 시사에 무관심한 나지만 근혜 양은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더럽혀 놓다니. 이완용 버금가는 매국노 아닌가.
그해 여름의 함성이 다시 한번 천지를 진동하여 그녀를 징벌하기를...
그 광장에 지금 낙엽이 떨어져 쌓이고 있다.
가을이 가고 있다.
남택상 : 별밤의 세레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