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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세화 해변

여전히 바다를 동경한다. 깊은 산골 태생인 내게 그는 늘 신비스러운 경외의 대상이다. 드넓은 무한의 세계. 거침없이 달리는 바람. 수려한 산협에 머물고 싶지만 때로는 광활한 바다를 꿈꾼다. 이름도 예쁜 세화 해변. 제주 북동부의 아름다운 바다. 몹시 춥고 냉랭한 날이었다. 외로운 여행자를 날려버릴 듯이 진종일 세찬 바람이 불어댔다. 옷차림이 허술해 따뜻한 방이 그립기도 했다. 맹렬한 바람은 미웠지만 맑은 날씨 덕에 바다는 내내 짙은 코발트 빛이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멋진 색이었다. 내 이름 불러줄 아무도 없는 이 땅 끝에서 나는 들불처럼 외로웠다 나를 스쳐간 바람은 빈들을 건너며 하루의 허무를 흔들고 가지만 바람길에 갈리는 먼 길 그 막막함이여 한기팔 중에서 한 쌍의 예비부부가 웨딩촬영을 하고 있었다...

매화와 기차, 강이 있는 풍경 - 양산 원동마을

원동역 플랫폼에 내리니 짙게 땅거미가 내려와 앉았다. 그래도 어른어른 사물은 눈에 들어왔다. 트랩을 건너 역광장으로 나오니 그 잠깐 사이에 완벽하게 어두워졌다. 겨울 끝이지만 어둠 내린 역광장은 제법 쌀쌀했다. 철길 너머는 바로 낙동강이다. 강에서 넘어오는 바람이 가세해 을씨년스러운 저녁이었다. 원동역에서 내린 사람은 나 혼자였다. 아직 일곱 시가 안된 시각이지만 어둠에 쌓인 거리는 적막했다. 시골은 일곱 시가 되면 사람들이 다들 제집으로 들어가 어둠과 고요함 일색인데, 도시는 반대로 그때부터 사람들이 기어(?) 나오며 휘황해진다. 그래서 즐비하게 많은 상점들이 죄다 문을 닫고 어둠이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이곳엔 편의점도 없어 밥 한 술 못 먹으면 이튿날까지 굶을 수밖에 없다. 불현듯 불안해졌다. 아..

영주 소수서원과 선비촌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애매한 계절 2월. 햇볕은 시나브로 따뜻해져 가고 대지는 메마른... 사람들 가슴에서도 버석거리는 소리가 난다. 수양버들에 물이 오르려면 아직은 더 있어야겠다. 영주 부석사를 들어가는 연도에 위치한 선비촌이다. 국사시간에 배웠듯이 주세붕이 안향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 그 유서 깊은 서원과 연계하여 선비문화를 앙양고취하려는 취지로 조성했다. 단순히 관광용 눈요기가 아닌 옛 고택을 고증하여 건물들을 지었고 숙박도 한다. 겨울의 쓸쓸한 풍경이 운치 있다. 담장과 들마루 툇마루에 내려앉은 오후의 양광은 봄 느낌이 완연하다. 우도불우빈 憂道不憂貧 가난해도 가난에 구애받지 않고 바른 삶을 추구한다고. 거무구안 居無救安 사는 데 있어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부산 초량동 이바구길

초량동 이바구길 기차에서 내려 부산역 광장을 지나 길을 건너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거대도시 부산의 정체를 볼 수 있다. 거미줄처럼 어지러이 난 좁은 골목길. 이곳 사람들의 숙명 같은 계단과 미로, 그리고 아프지 않은 옛 기억들이 고스란히 앉아들 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방금 지나온 부산역은 최첨단 기술과 예술의 복합공간이 되었지만 '한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 이 언덕배기는 여전히 개항기 때의 정경으로 남아 있다, 다만 판자가 아닌 번듯한 콘크리트집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라는 이름의 테마길. 조금만 걸어도 숨을 헐떡이는 가파른 골목길들을 허위허위 톺아 보았다. 남선창고 구 백제병원 담장갤러리 초량초등학교 초량교회 168계단 산복도로전시관..

[도시투어 전주] 우아동 모텔촌

모텔촌에 눈이 내린다. 조금은 이색적이면서 낭만적이기도 한 풍경이다. 어느 창문 올려다보고 ‘창문을 열어 주오’ 하는 세레나데를 목청껏 불러도 그럴듯한 장면이 될 듯한 분위기다. 전주에 있는 옛 아중역 앞은 모텔촌이다. 여기에 모텔촌이 형성된 연유는 모른다. 예전에 기차를 타고 전주에 거의 다 와 가는데 휘황한 불빛의 창밖 풍경에 탄성을 질렀더니 나중에 우아동 모텔촌임을 알았다. 이곳은 워낙 모텔이 많아 예약을 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모두 깨끗하고 고급이면서도 비싸지 않아 어느 집을 들어가도 만족스럽다. 폐역된 아중역은 지금은 레일바이크를 운영한다. 평일이고 눈이 와서인지 사람이 하나도 없다. 눈 내리는 아중호수는 무채색이다. 겨울이 깊으면 봄이 가깝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다..

충무김밥

충무김밥. 지금은 대중화되었지만 그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이 김밥이 탄생한 유래는 다 알다시피 뱃사람들의 도시락이었다고 한다. 김밥은 금방 쉬어 버리니까 김에 맨밥만 만 일종의 아이디어 음식. 통영에서 시작된 김밥. 충무김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유명한 국풍‘81이었다. 쿠데타로 국가를 전복한 전두환 정권이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주최한 닷새간의 어용관제축제였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동원된 사람들이었지만 아무튼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대규모 국풍축제였다. 주관한 KBS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이 행사를 다루는데 할애앴다. 그 축제현장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선을 보인 게 충무김밥이었다. 뚱보 할머니라 불리던 어두이 씨(魚斗伊, 당시 63세)를 모셔 와서 천막 김밥집을 차려놓고 선보였는데 700인분이 3시..

운탄고도 만항재에서 새비재까지

평생 볼 눈을 이틀 동안에 다 보았다. 이 길은 돠연 다른 계절 아닌 겨울이어야 한다. 후기는 그닥 쓸 게 없다. 감동적이면 그냥 가슴으로만 느끼지 차마 표현이 안되는 것이다. 빠르게 내린 어둠. 서편 능선으로는 붉은 노을이 시시각각 자연의 쇼를 연출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동편 능선으로 ‘여기 봐라 나도 있다’ 둥근달이 시나브로 떠오르고 있다. 앞에는 노을 뒤에는 보름달. 이런 신비한 우주쇼라니! 이 세상 현실 같지 않은, 공상영화에서 가끔 보던 환상의 공간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날리네 아직도 겨울 바람이 부는 바람 끝에 시린 내 사랑이 매달리고 눈시울은 차가운 바람에 촉촉이 젖어 있네 소리없이 게절은 시간 따라 흐르는데 운명 같은 내 사랑은 바람에 흔들리네 차가운 바람, 겨울바람이 내마음 시리도록..

굴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천북굴단지

가끔 여행길에 포구를 지날 때 굴을 까는 할머니들을 보게 되는데 팍팍한 삶의 애환을 느끼곤 한다. 굴 까는 작업장을 박신장이라 한다. 시설이 좋은 곳은 번듯한 건물에 난방도 잘 되지만, 지붕과 벽만 허술하게 막았을 뿐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열악한 박신장이 많다. 평소에는 내가 하는 일이 천하게도 여겨지고 어렵다고 불만스러워하기도 하지만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이런 고달픈 노동의 현장을 보면 나의 배부른 소리임을 자각하곤 한다. 여행에서 배우는 것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배우고 자각하는 것. 물론 돌아와 생업에 들어가면 금세 망각하여 도로아미타불 반복이지만. 추운 요즘이 제철인 굴. 보령 수룡포구에 천북굴단지가 있다. 나도 어지간히 굴 좋아한다. 굴전에 탁주 한잔 들이켜면 와우! 생굴회 굴밥..

제주 레몬뮤지엄

11~12월의 제주는 어딜 가든 감귤 천지다.제주는 도보여행이라야 제맛이다.그렇지 않으면 저 노란 과일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알고 일부러 찾아간 건 아니고 다른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이란 간판이 있어 들어갔다.이름은 뮤지엄이지만 정체는 카페다.그래도 농장 안에는 레몬 트리가 한가득이다. 아직은 덜 익은 푸르스름한 레몬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레몬은 먹기만 했지 나무에 달린 건 처움 본다. 이쁘다.레몬 뿐 아니라 이름만 들은 라임나무도 있다. 뜻밖의 풍물을 보게 되니 몹시 기쁘다.여행의 즐거움은 이런 것이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문득 만나게 되는 풍광들.        귤나무만 아니라 뮤지엄 농장에는 진귀한 가금들과 군데군데 꽃들도 만발해 있다.칠면조 공작 등의 새들이 우리..

제주 휴애리

제주도는 여름에 가면 여름만 있는데 겨울에 가면 사계절이 다 있는 독특한 여행지다. 그래서 그렇게들 몰려 가겠지. 나 사는 동네와는 다른 이국적인 풍광들을 즐기러. 신례리에 있으면서 이름이 왜 휴애리인지 모르지만 휴애리자연생활공원은 이런 제주의 사계가 모두 들어와 있다. 바람도 없고 포근한, 햇살 많이 쏟아지던 날. 코나 : 그녀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