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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원 샤스타데이지

이맘때면 하얀 물결이 눈에 선합니다.그 하얀꽃 샤스타데이지를 만나러 정선 하이원엘 올랐습니다.몇 해 전에 평창 육백마지기의 하얀 평원에서 감동한 경험이 있던 터.       데이지 군락지로 가는 거리가 꽤 되어 보통은 저런 카트를 타고 갑니다.백 명 중 아흔아홉 명은 그럴 겁니다.카트 이용료가 5만 원이에요. 제주 왕복비행기값보다 비쌉니다. 나는 걸어가기로 합니다. 명색이 걷기카페 회원인데 뭘 타고 간다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그 돈으로 나중에 맛난 걸 사 먹는 게 이득이예요. 지하철을 탈 때 가끔 다리가 아플 때도 에스컬레이터를 안 타려는 똥고집이 있습니다.    걸어가는 길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각종 꽃들이 질펀합니다.이걸 외국 풍물처럼 멋지게 사진 찍고 싶었는데 영 그림이 안 나옵니다.      이..

푸르른 날, 금오산 약사암

국내에서 풍광이 좋기로 몇 손가락에 꼽힌다는 금오산 약사암이다.여길 가을에 가고 싶었는데 게으름 피우느라 여태 미루다 봄에 올랐다. 물론 가을만 좋은 건 아니다. 신록이 짙어지고 나뭇잎 무성한 이 계절의 산행도 좋다. 원래 등산은 좋아하지 않지만 오로지 약사암을 목적으로 오르기로 한다.    정보로는 금오산 오르는 게 만만치 않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내가 이제껏 올라본 산행 중 가장 가파르고 힘들었던 경험이 되었다.일반적인 들머리인 금오산호텔 코스로 들어선다. 입구 풍경이 아름답다. 여기는 아주 좋다.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된다. 내내 가파른 계단이다. 가파른 계단은 금오산 정상까지 계속된다.그래도 5월의 숲은 아름답다.      부처님오신날이다. 산길에 인파가 많다. 해운사에도 인파가 가득..

무주 구천동 어사길

더워요. 이젠 본격적으로 한여름입니다. 숲의 녹음도 검푸르게 짙어져 갑니다.여름은 역시 이 우거진 숲을 향한 동경이 커지는 철입니다.             무주 구천동계곡. 계곡을 끼고 백련사까지 들어가는 트레킹 길을 걷습니다.‘어사길’이라고 하네요. 방방곡곡 어딜 가나 무슨 무슨 이름 붙인 길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여긴 어느 소설에서 박문수가 지나갔다고 해서 지었나 본데 그런 거 별 의미는 없습니다.김호중이 걸으면 ‘김호중길’이 되기도 하니까.  어쨌든 ‘무주구천동’ 하면 예전부터 워낙 명성 높은 계곡이라 그 수려함은 말할 게 없습니다.우거진 숲에, 무엇보다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이 이곳의 절경입니다. 길은 시종 물길에서 한번도 멀어지지 않아 내내 물소리 청아하니 심신이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한동안 가물..

대전 상소동삼림욕장과 돌탑

숲이 좋다.더운 건 싫지만 깊고 으늑한 숲이 있어 그나마 여름을 견딘다.삽시간에 나뭇잎 우거지고 숲속은 짙은 고요다. 대전에 있는 상소동삼림욕장. 휴양림은 캠핑 등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고 삼림욕장은 단순히 하루 머물다 가는 곳이다.어느새 한여름 깊은 곳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웅숭한 숲그늘.물은 옥색이다.           휴양림 안에 이색적인 풍경.여기에 뜬금없이 이런 게 있는지 앙코르와트 같기도 하고 이슬람 건축물 흉내를 낸 것 같은 돌탑들. 이덕상 옹이 쌓았다는 안내문이 있다.이것 때문에 우정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곳의 명물이기도 하다.낮이 이울고 어스름이 내릴 때쯤이면 으스스 좀 무서울 것 같다.                                      이 말고도 숲 곳곳에 크고 ..

오지로의 여행, 정선 덕우리

어천은 깊은 산골을 굽이굽이 돌아 조양강으로 흘러들고조양강은 굽이굽이 돌아 흘러 동강이 된다. 어천이 지나는 정선 덕우리 일대는 지금도 오지에 속한다.그만큼 자연경관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그 장남인 이황이 이곳으로 유배되었다고 하니 그때는 오죽했을까.제주도 추자도 등 절해고도만큼 깊은 오지였을 걸 미루어 짐작하겠다. 정선에 십 몇 년을 살면서도 인근인 이곳을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내가 사는 곳이 오지였으니 굳이 인근 오지를 갈 일이 없었다.에전엔 전기가 들어오는지가 오지를 정하는 기준이었는데 지금은 전기 안 들어오는 마을이 거의 없다.전기가 있어도 이 덕우리 마을은 여전히 오지라 하기에 충분하다.     근래 이곳이 유명해진 건 원빈의 결혼식과 삼시 세..

오수역에서 서도역으로

전라도를 가려면 전라선 기차를 탄다.전에는 용산에서 밤 열차를 타면 새벽에 내려 일찍부터 여행을 시작했지만이젠 밤기차가 없어져서 첫차를 탄다 해도 느지막한 아침나절이다.‘일일생활권’이던 교통문화가 오히려 퇴보했다.    지구를 세 바퀴 반을 돌았다는 한비야의 일화.어느 곳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 인사하면서 어디서 왔냐고 하니 임실에서 왔다고 하더란다.임실? 임실이 어디지?그때 몹시 부끄러웠다고 한다. 세계를 많이 돌아다녔다고 유명해지고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정작 내 나라의 임실을 모르면서 뻐기고 다녔다는 자괴감과 부끄러움.그래서 외국 아닌 국토종단 여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무궁화열차를 타고 와서 임실 오수역에 내렸다. 내가 내린 오수역은 신역(新驛)이라 정감이 없고한 20분 면내로 걸어 ..

울진 왕피천은어길

은어라면 섬진강이지만 울진 왕피천도 은어 서식지다.은어를 보지는 못하였다.나는 은어를 보러 간 게 아니니 상관없다. 왕피천이 지나는 구산리 구간의 천변에 이색 트레킹 길이 있다고 하여 궁금했다. 왕피천은어길. 또는 '봇도랑길'이라는 이름이다. 봇도랑은 논에 물을 대기 위한 물길이다.천변에 시멘트로 봇도랑 형태의 길을 만들었다.그 흔한 나무데크길을 지양하려는 발상인 것 같다.  하안단구처럼 수려한 경관은 아니지만 아직도 원시 생태로 남아 있는 보배로운 하천이다.이곳에 관광객을 끌어들이려 뻘짓을 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만 나 역시 그들의 홍보에 혹해서 다녀온 사람이니 비난할 처지는 아니다.           고요하고 한적한 풍경이다. 곳곳에 핀 야생화, 서덜과 모래톱, 웅숭 깊은 녹색 소와 웅덩이들..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

김호중.이 자가 또 범죄 저질렀네.술 먹고 운전하다가 택시 들이박고는 그대로 뺑소니쳤단다.3시간 뒤에 매니저가 경찰서에 출두해 자기가 운전했다고 자백했단다. 웃긴 건 매니저가 김호중이 입었던 옷으로 바꿔 입고 출두했다고. 그리고 17시간 뒤에 김호중이 다시 자진출두. 소속사의 해명이 있었다. 김호중이 경황이 없어 사후처리를 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다며 매니저가 출두했단 걸 알고 자신이 처리해야 된다는 생각에 김호중이 다시 나갔다는 게 소속사의 해명이다.김호중은 경찰에서 처음에는 자기가 운전 안 했다고 했다가 이어지는 추궁에 그제야 실토했다.음주는 측정이 안됐다고 하지만 경찰은 더 세밀한 조사로 음주 여부를 조사할 것이다. 이건 빼박이다. 더구나 차량의 블랙박스 칩도 제거했다니 김호중이 빠져나갈 수 있는 ..

인천 배다리 골목

배다리는 동인천역에서 중앙시장을 지나 도원역으로 가는 중간에 있다.  기껏 자동차를 만들어 놨더니 이젠 걷는 게 좋다고 어깃장을 놓질 않나, 문명과 부의 상징인 신발을 신으면서 뻐기고 다니더니 이젠 맨발이 좋다고 어깃장을 놓는다. 사람이 간사한 게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옛것을 그리워하는 수구초심이 내재돼 있어서일 것이다.하회마을 등 옛 고샅을 거닌다거나 고궁 담장을 걷는다거나 오래도록 낡은 찻집을 부러 찾아간다거나 그런 일들이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골목이라 하지만 실은 골목이랄 수도 없다. 그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여섯 책방이 있을 뿐이다.가 보지 않고 상상하는 레트로 분위기는 전혀 없다.   어쨌든 책방에 들어가면 자신이 무슨 인텔리겐치아가 된 듯한 묘한 허영기가 생기..

벼랑 위의 연꽃, 산청 정취암

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바다로 바다로 걷다가 더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여수 향일암이 있다면산청의 정취암은 산기슭으로 오르다 오르다 벼랑 끝에서 만나는 것이다. 예전에는 천애절벽의 이 암자엘 오르기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대형버스도 문 앞까지 다다른다.‘벼랑 위의 연꽃’이라는 수식어가 있는 산청 5경 중의 하나라니 관광객이 많이 오나 보다. 암자의 규모에 비해 주차장도 크다. 산청에서 지낼 때는 가까우니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녀올 여건이었지만마음만 있었지 게으름 피다 한번도 가보질 못했다.이제서 먼 길을 다녀오다.         원래는 正趣寺였다.정취보살(正趣觀音菩薩)을 본존으로 모신 데서 붙인 이름일 거라는 추측이다. 정취보살은 구도의 길을 떠난 선재동자가 스물아홉 번째로 만난 선지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