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제주 세화 해변

설리숲 2024. 3. 17. 14:53

 

여전히 바다를 동경한다.

깊은 산골 태생인 내게 그는 늘 신비스러운 경외의 대상이다.

드넓은 무한의 세계.

거침없이 달리는 바람.

수려한 산협에 머물고 싶지만 때로는 광활한 바다를 꿈꾼다.

 

 

 

 

 

 

 

 

이름도 예쁜 세화 해변.

제주 북동부의 아름다운 바다.

 

몹시 춥고 냉랭한 날이었다.

외로운 여행자를 날려버릴 듯이 진종일 세찬 바람이 불어댔다.

옷차림이 허술해 따뜻한 방이 그립기도 했다.

맹렬한 바람은 미웠지만 맑은 날씨 덕에 바다는 내내 짙은 코발트 빛이었다좀처럼 보기 힘든 멋진 색이었다.

 

 

 

 

 

 

 

 

 

 

 

 

 

 

   내 이름 불러줄

   아무도 없는

   이 땅 끝에서

   나는 들불처럼 외로웠다

 

   나를 스쳐간 바람은

   빈들을 건너며

   하루의 허무를 흔들고 가지만

 

   바람길에 갈리는

   먼 길

   그 막막함이여

 

       한기팔 <이 하늘 이 땅 끝에서> 중에서

 

 

 

 

 

 

 

 

 

 

 

 

 

 

 

 

 

 

 

 

 

 

 

 

한 쌍의 예비부부가 웨딩촬영을 하고 있었다.

사진은 아름다워야 하니 옷차림이 가냘프다. 냉한 바람에 속수무책이다. 아가씨가 덜덜 떤다.

결혼이 참말 힘들다. 저런 역경을 극복해 가면서 사는 게 결혼일지니.

혼자 겪는 역경과 둘이 겪는 역경의 강도는 다른가?

모르겠다.

나는 한 번도 외롭거나 고통스러운 적이 없었다.

 

 

 

참된 여행자에게는 방랑의 즐거움, 모험의 유혹이 함께 한다.

의무도 없고 목적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고

소식도 전하지 않으며 관심 두는 지인도 없으며.

따라서 배웅과 마중도 없다.

여행자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지 모르는 법이며 더구나 어디서 왔는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서 있는 곳이 현실이고 삶이다.

 

 

이 섬은 정말 바람이 많은 삼다도인 걸 새삼 알겠다.

내가 갈 때만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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