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곰배령 길

설리숲 2021. 6. 29. 00:42

 

 

천상의 화원이라고 사람들은 곰배령 평원만을 목적하고 오르곤 한다.

보통의 등산인들이 그렇다. 산의 정상에 올라 표지석 앞에서 사진 찍는 것에 산행의 의미를 둔다.

숲의 낭만과 아름다움을 보려 하지 않는다. 들머리까지만 가더라도 숲의 그윽한 향취를 맛본다면 이미 훌륭한 숲나들이다. 맑은 물가에 앉아 발을 담그고 있어도 좋고 내내 들려오는 산새들 지저귐을 들어도 좋다. 산정상은 올라도 그만 안 올라도 그만이다.

나는 그렇다.

 

점봉산의 유명한 곰배령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계절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곰배령까지는 약 5km의 숲길이다.

사람들은 이 대부분의 길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영마루만 바라보고 힘겹게 오른다. 영으로 가는 이 숲이 짜장 빼어난 명소인 것을.

 

 

 사람들은 자연보다는 과시욕(?)에 더 몰입하는 속성이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저 표지석 앞에 길게 나라미를 섰다. 인증사진을 찍어 카톡이나 SNS에 올려야 여행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다.

 딱 내 취향과는 정 반대다.

 

 

밤부터 비가 흩뿌리고 아친 나절 내내 오락가락 했다. 우산을 갖고 가 말아? 주주차장에 도착해서는 선택의 고민에 빠진다. 일단 현재는 비가 내리니 판초우의를 입고 장우산은 말고 접이우산을 가방에 넣었다. 든든하니 가볍게 숲으로 들어선다. 우의가 멋쩍게 비는 오는둥마는둥이다. 숲이라 또 몸에 떨어지는 빗방울도 거의 없다. 우의를 벗는다. 한결 편안하다. 이후로 종일 내내 비는 내리지 않았다.

 

천상의 화원이라지만 갈 때마다 화려하게 온갖 야상화가 즐비한 건 아니다. 그 시기에 맞는 꽃들이 피고 지고 봄부터 가을까지 그렇게 차례로 왔다 간다.

내가 갔을 때의 야생화 목록은,

지리터리 꿩의다리 범의꼬리 붓꽃 샤스타데이지 술패랭이 노루오줌 쥐오줌풀 미나리아재비 좀조팝나무 정향나무 용머리 들이 제 삶을 살고 있었다.

 

 

 

우주의 섭리에 따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곰배령과 강선리골 곰배골 계곡은 천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신의 정원을 입장 탐방객수 제한을 둔 건 정말 잘 한 일이다.

생태관리센터에 본 점봉산과 계곡은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신비함이 느껴졌다.

 

 

 

 

              케니 G : Song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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