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미용실에서

설리숲 2021. 6. 15. 22:10

오랜만에 머리를 자른다.

전에 워낙 짧게 잘라서 이번 간격이 상당히 길었다. 코로나 이후로 처음이다.

 

아무리 그래도 머리를 자르려면 마스크를 벗어야겠지, 했는데 웬걸.

미용실에 들어서니 미용사들이나 의자에 앉아 손질받는 손님들이나 죄다 마스크를 썼다.

 

코로나가 세상일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더니 미용사들의 기술도 새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마스크 윗부분 가장자리에 길게 테이프를 붙여 머리카락이 들어가는 걸 방지하고,

양 귀에 걸린 끈을 피해 삭삭대며 잘라내는 기술이 시원스러우면서도 또 안쓰럽기도 하다.

에구, 이런 정경은 사람 사는 모양새가 아니다. 짜장 하찮은 바이러스가 ‘위대한’ 인류의 생활을 흔들어 놓았네.

 

그리고 머리를 감는 차례가 돼서 이번에야말로 ‘마스크 벗어야겠지요?’ 물었더니 ‘절대 안돼요’ 한다.

마스크에 물 한방울 안 튀기고 머릴 감겨주는 기술도 역시 현란하다. 아, 이렇게 인류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 나가는 거구나.

 

위기 속에서 또 그것을 극복하면서 좀더 질적으로 진화하는 게라고.

별거 아닌 것에 대단한 의미라도 있는 것처럼 혼자 만족해 한다.

 

마스크 쓰고 앉아서 머리를 깎는 이 해괴한 풍경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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