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 가운데 뱀만큼 억울한 애들이 있을까. 인간들은 뱀을 싫어한다. 어떤 이들은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증오까지 한다. 왜 미워할까. 이유가 없다. 그냥 싫어한다. 뱀이 우리에게 밉보이거나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그저 미움을 받는 거다. 그러니 얼마나 .. 서늘한 숲/숲에서 2006.06.21
봄밤 봄이다. 봄밤이다. 그를 만나러 진주로 가는 밤길. 지리산 검은 능선 위로 큰달이 떴다. - 어, 저거 횃대다. 횃대 얼굴이다 봄의 한가운데다. 저녁에 전화 오다. - 행님 보고싶어 지금 진주 왔지롱~ 지금 나올 수 있나? 날 보러 부러 오지 않은 줄은 알지만 그럼, 나가고 말고. 이방에서 맞는 뜻밖의 해후, ..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6.06.05
위문편지 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지겹게도 썼던 국군장병위문편지. 일말의 성의 없이 선생님이 하라니까 편지지 한 장만 겨우 채워 제출했던 기억들이 다들 있을 것이다. 내용은 거개가 다 똑같다. 여름이라면. “무더움 속에서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겨울이라면, “추위 ..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6.03.31
산골마을의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막내누이와 그 동무들은 진종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흥얼거리며 종이꽃을 만들었다. 나로선 처음 듣는 노래였다. 크리스마스라고 했다. 오늘 자고 낼 한 번 더 자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누구야?" 내가 물어도 누이들은..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6.02.13
겨울 남한강을 다녀와서 시골 촌놈이 큰 도시로 나들이할 때의 두려움과 막막함. 계곡 물을 따라 큰 강으로, 또 망망대해로 나갈 때의 낯설음과 역시 두려움. 갈수기라 물의 양은 현저히 줄었지만 강언덕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남한강은 산골촌놈에게 경외와 두려움을 주기 충분했다. 여행길을 떠날 때의 이런 두..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6.01.20
겨울 이야기 그가 왔다. 늘 자연을 동경해 온, 그러나 현실을 벗어나기 힘들어 했던 사나이. 그가 모처럼 서울을 벗어나 정선 숲으로 왔다 겨울나그네처럼. 새해를 사흘 앞둔 세밑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그가 서울을 떠난 구구절절 사연이야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아. 다만 그래도 후배라고 ..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6.01.20
웰컴투 스무골 내 오두막집에 일단의 낯선 이들이 찾아 왔다. 영화촬영팀이란다. 무슨 영화인지는 모르나 감독과 스태프들이 장소를 헌팅하러 이 외진 골짜구니를 올라온 것이다. 머지않아 이곳 스무골에서 영화촬영이 있을 것 같다. 이런 오지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일단 그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긴 하지만 ..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5.12.10
속물 고급 옷가게에서 일행인듯 한 여자손님들이 쇼핑을 하고 있는데, 한 물건을 놓고 다투었다. 400만원짜리 가격표가 붙은 옷을 놓고 디자인과 색감이 세련됐다느니 재질이 고급스럽다느니 침을 튀기며 극찬하며 서로 사겠다고 우기다가, 그때 종업원이 와서는 가격표가 잘못 붙었다며 새로 붙이고 갔다... 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2005.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