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삶은 계란이다

설리숲 2006. 8. 31. 23:10

 시각을 모르겠다. 곧 날이 밝을 것이다. 뜬눈으로 지새운 밤. 청년은 번민했다. 불확실한 미래,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인생의 실체, 살아간다는 것, 기쁨과 슬픔, 분노와 고통, 연애와 갈등 오만가지 물상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가는 나가고 또다시 들어와서 휘젓고.

 이제 인생을 시작하려는 출발점에서 그의 앞에 길게 누운 삶은 두렵고도 불안한 미지의 세계였다.

 떠나리라. 삶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그는 무작정 길을 나서기로 했다.


 푸르스름하게 날이 밝아왔다. 핏발선 눈으로 집을 나섰다. 첫차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당도했다. 아직은 어스름한 대합실. 비장한 각오로 승차장으로 향하던 그는 우뚝 섰다.

 아, 저거!

 대합실 한편 매점 기둥에 인생지침서처럼 붙어 있는 문구 하나.


 “삶은 계란”


 청년의 붉은 눈이 일순 열리며 얼굴엔 환희의 빛이 가득했다.

 ‘그렇다. 저거다.

 삶은 계란이다‘

 그는 다시 발길을 되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어렸을 적, 지지리도 가난한 집 자식이었던 나는 무척이나 계란을 먹고 싶어 했다. 시골 농가라면 집집이 닭이나 개 등 가축들이 있었다. 요 닭들이 매일 알을 낳으니 없어서 못 먹는 건 아니나.

 그러나 없는 농가 살림에 그 계란 한 알은 돈을 만들 수 있는 황금이었다. 어머니는 그 황금알을 고이 간직해 두었다 며칠 뒤 열 개가 되면 짚으로 엮은 꾸러미에 넣어 장에 내다 팔았다. 그걸로 집안살림을 엮어 나가는 것이다.

 어린 마음에 계란은 그래서 더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따금 누구 생일이라든가 할 때 부쳐주던 그 맛은 또 얼마나 기가 막혔던가. 가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만 하나씩 건네주곤 했는데 아버지가 이빨로 깨서 먹고 난 껍질엔 늘 한 방울 정도가 남아 있기 마련이었다. 그걸 얼른 가져다 화롯불에 얹으면 특유의 냄새와 함께 순식간에 익는다. 그 눈곱만한 걸 손톱으로 긁어 떼어 먹는 맛이라니.


 국민학교에 들어가서도 계란에 대한 궁박함은 여전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열면 뉘집 아이들은 색깔도 현란하게 계란부침이 얹혀 있었고 내 도시락은 늘 먹기 싫은 짠지쪼가리였다. 양극화현상을 내 이미 그때 체득했음을.

 계란,

 이담에 어른이 되면 저 빌어먹을 계란을 실컷 처먹을 테다. 삼시 세끼를 저 계란으로만 배를 채울 테다.


 삶이란 그런 건가.

 그 빌어먹을 계란이, 수퍼에서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그 황금알이, 어른이 된 지금엔 왜 싫어졌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손님이 계란 한 줄 사들고 와도 한 달이 다 되도록 다 못 먹고 있는 현상이라니.

 생각해보면 입맛은 변하는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김치나 파 같은 걸 아주 싫어했다. 그랬지만 어른이 된 지금 내 주위에 김치 안 먹고 파 안 먹는 사람을 아직 못 봤다. 오히려 김치라면 다들 사족을 못 쓰니.


 요즘 아이들 역시 가리는 음식들이 많다.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애들도 우리처럼 어른이 되면 입맛이 바뀌지 않을까.

 삶은 계란인 것이다.

 그 빌어먹을 계란을 배가 터지도록 먹어보지 못한 게 억울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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