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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과 회룡포

한국의 복고풍이 조금은 짙은 곳이 예천이 아닌가 한다. 금당실에서부터 더러더러 눈에 띄는 누각과 정자들. 현재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주막이 풍양면에 있다. 물론 옛 건물은 아니나 그래도 초가지붕을 씌우는 등 옛것과 비슷하게 조성해 놓았다. 삼강주막에서 사림재를 넘으면 회룡포다. 낙동강의 지나면서 만든 독특한 지형이다. 영주의 무섬마을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회룡포가 유명하다. 이런 곳은 대개 모래사장이 넓다. 물이 휘돌면서 강변에 모래를 쌓아 놓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시에 적절한 적절한 풍경이다. 이 길을 카페 정기도보로 다녀왔다. 처음은 아니다. 그날밤 열대야가 이어질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추석도 지난 청풍명월의 계절에 열대야라니. 아무튼 사나흘 이상 고온이 맹..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광고카피 하나로 매출이 대박을 터뜨리고 그 기업은 주가가 올라 대성공을 거두지요. 이제껏 히트를 친 명 카피를 모아 봤습니다. 당신은 어느 게 가장 기억에 남나요.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여자라서 행복해요 산소 같은 여자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여러분 부~자 되세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잘 자 내 꿈꿔 감기 조심하세요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국물이... 끝내줘요 또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화장은 하는 거보다 지우는 게 중요합니다 가자 해를 따라 서쪽으로 짜장면 시키신 분~ 니들이 게맛을 알어?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나는 이 카피가 가장 좋습니다. 주말..

김포 금빛수로

계절은 분명히 가을인데 무척이나 더웠다. 안날부터 감기 기운이 돌더니 이 날 아침엔 맑은 콧물이 흐르기 시작. 시절이 시절인지라 혹시 코로나가 아닌가도 했지만 증상으로 보아 그건 아니다. 게다가 회사사람 말고는 누구랑 접촉한 적이 없으니 코로나 바이러스를 들이마셨을 가능성이 적다. 라는 이름의, 원래는 '김포대수로'였던 물길을 걷다. 그닥 길지 않은 거리를 걷는데 뜨거운 햇볕에 숨은 턱턱 막히고 감기가 더해 몹시 불편하다. 땀도 흐르고 몸 상태도 찌뿌드드한 게 영 좋지 않다. 콧물은 쉴 새 없이 흐르고 잠깐잠깐 쉬기를 반복한다. 이 금빛수로는 원래는 농사용 하천으로 비가 안 오면 물이 없는 건천이었던 것을, 김포시가 ‘한국의 베니스’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기획한 프로젝트다. 팔당댐에서 물을 끌어와 흐르게 ..

담양 관방제림 길

담양의 유명한 숲 관방제림. 오래된 노거수들이 으늑한 그늘을 지우고 줄지어 늘어선, 보기에도 시원한 그늘숲입니다. 푸조나무가 주종이며 팽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서어나무 등의 수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무마다 일련번호를 붙여 체계적인 관리를 하고 있어서 이 아름다운 숲이 보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름은 갔지만 여전히 나뭇잎과 숲은 짙은 푸르름으로 마지막 축제를 즐기는 듯 보였습니다 태풍 힌남노가 오기 하루 전 주말이었습니다. 폭풍전야의 고요인지. 바람 한 점 없이 물쿤 날씨. 하늘은 구름이 몰려들었다가는 파랗게 벗개기길 반복하며 이따금 는개가 흩뿌리기도 하고 곧이어 쨍쨍 햇빛이 쏟아지기도 하는 요상한 날씨였습니다. 관방천을 사이에 두고 유명한 죽녹원이 마주하고 있고 관방제 숲을 사뭇 걸어가면 또 유명..

예천 금당실. 가을이 발치 끝에 다가왔네

정기도보 답사에 나선 길에 염두에만 있던 금당실을 속속들이 둘러보았다. 어느 해 연분인가 예천 지보면에서 한 석 달간 지내면서 딱 한번 가 본적이 있었는데 지나는 길에 호기심으로 들여다본 것이어서 가 봤다고 할 수는 없다. 그때는 몹시 추운 겨울이어서 황량하고 척박한 기억인데 맘먹고 둘러보니 여러 감상이 느껴진다. 어릴 적 시골에 살았던 사람은 알 수 있는 아련한 모태적 그리움 같은 것. 요즘은 시골이라도 옛 고향의 정취가 거의 없다. 이곳 금당실은 현대 문명이 공존하고 있어 뷰가 그닥 시골스럽지 않은데도 어쩐지 옛 시골에서의 감성이 소담스레 젖어든다. 오곡백과가 영그는 이 시절이라 금당실의 풍광이 더욱 애절하다. 다시 유년시절의 시골로 돌아갈 수는 없다. 수구초심이라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뼈저리게..

여름이 끝나고 학암포에서

철 지난 바닷가는 어떤 분위기일까. 태안 학암포 바다. 올 여름은 비만 내리더니 그 마지막까지도 비가 내린다. 바다는 가뜩이나 철이 지나 쓸쓸한데 오락가락 는개비에 바람이 거세다. 드넓은 모래톱에 몇몇 철지난 사람들이 왔다가는 거센 바람에 옹송거리며 추워들 한다. 나도 거닐다 어스름이 내려 텐트로 돌아온다. 밤이 깊어도 바람은 멈추지 않고 한밤중 언제인가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텐트를 요란하게 때린다. 자고 나면 하늘이 열리겠지. 자고 나니 하늘이 열렸다. 빗방울은 멈추고 새소리가 시끄럽다.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무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느지막이 바다엘 나가니 해수욕객이 제법 많아 어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햇빛은 내리쏟아지고 이대로 여름을 보내기 아쉬워하는 듯 제법 바캉스휴양지 같아졌다. 맨발로 구..

4월 워크숍 흙사랑

말이 워크숍이지 그냥 1박2일 놀러 갔다 오는 게 취지다. 코로나로 2년동안 구속 아닌 구속으로 갇혀 있다가 봄바람과 함께 콧바람 쐬다. 이제 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바뀐 사람이 많다. 그만 둔 사람도 많고 새로 온 사람도 많고. 이리 휩쓸리고 저리 부대끼고 하면서 인연을 생멸시키는 게 우리 인생의 바람이라지만 멤버 변동이 심하다는 건 회사가 매력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겠다. 오늘도 나와 거의 동기생인 동료를 보냈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다. 인연이라는 건 우리 소관이 아니다. 베이시스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고부지간이 동서지간 되는 방법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두 과부가 살았다. 스물을 갓 넘긴 청상 며느리와 그의 시어머니. 어느 봄날 낯선 사내가 찾아들었다. 체격이 건장하고 사내 냄새 물씬 풍기는 포수였다. 돈은 얼마든지 낼테니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했다. 집이 워낙 누추한데다 여자만 둘이서 사는 집이라 곤란하다고 거절했다. 두 자매분이 참 이쁘십니다. 넉살 좋게 능갈치는 사내의 수작이 보통 아니다. 자매라니요. 이 아이는 제 며느립니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내색은 못하나 마음이 달떴다. 어쨌든 앉으셔서 냉수라도 한잔 하세요. 아, 고부지간이시군요. 포수는 툇마루에 걸터앉더니 내려놓은 망태를 열어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다. 어머님이 이리도 정갈하고 한아하시니 며느님도 본을 받아 참으로 곱습니다. 미천한 몸이라 가진 게 변변..

맥문동의 계절 - 울산 태화강국가정원 성주 성밖숲

맥문동의 계절입니다. 태화강국가정원, 그중에 보라정원을 갔습니다. 꽃은 만개했지만 기대만큼 풍요롭지는 않았습니다. 올여름 날씨 탓으로 꽃대가 돋지 않은 것들이 많아 좀 엉성했습니다. 태화강뿐 아니고 다른 곳의 명소도 다 그렇다고 합니다. 좀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좀 풍성하게 보이게 카메라 조작을 부렸습니다. 그렇다고 이 여인들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니 보랏빛의 신비한 마성은 이 여름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울산에는 이런 길도 있습니다. 법원 앞을 지나가다... 울산에는 카메라든 오빠도 있습니다. 오빠... 훈훈하고 가장 듣기 좋은 단어 오빠. 나는 여동생이 없어 오빠로 불려본 적이 없고 소싯적에 다방에서 몇 번... 오빠라는 호칭으로 불려 보고 싶어요. 특히 ‘카메라 든 ..

국민의숲길 안개에 젖어

국민요정 국민여동생 국민첫사랑 국민배우 국민남편... 더 이상 가져다 쓸 게 없을 정도로 ‘국민’이 흔하던 그 어름. 그 유행에 편승해 평창군이 잽싸게 이름을 선점한 ‘국민의숲’입니다. 대서(大暑) 날이라 역시나 무더운 날, 꽝꽝 얼린 물에다가 등에 붙이는 쿨링팩, 그리고 합죽선. 또 숲속 모기가 있을지도 몰라 기피제까지 거의 완벽하게(?) ‘큰더위’를 대비해 갔습니다, 그런데. 대관령 고갯마루에 오르자 썰렁한 냉기가 끼칩니다. 숲으로 들어갈 때쯤엔 짙은 안개가 뒤덮어 덥기는커녕 춥지 않을지가 더 걱정이었습니다. 안개 안개 안개... 숲은 온통 안개에 묻혀 있습니다. 전나무 곧은 둥치에도, 넙데데한 떡갈나무 이파리에도, 내 발소리에 놀라 냅다 달아나는 다람쥐의 곧추세운 꼬랑지에도 온통 안개였습니다. 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