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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워크숍 흙사랑

말이 워크숍이지 그냥 1박2일 놀러 갔다 오는 게 취지다. 코로나로 2년동안 구속 아닌 구속으로 갇혀 있다가 봄바람과 함께 콧바람 쐬다. 이제 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바뀐 사람이 많다. 그만 둔 사람도 많고 새로 온 사람도 많고. 이리 휩쓸리고 저리 부대끼고 하면서 인연을 생멸시키는 게 우리 인생의 바람이라지만 멤버 변동이 심하다는 건 회사가 매력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겠다. 오늘도 나와 거의 동기생인 동료를 보냈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다. 인연이라는 건 우리 소관이 아니다. 베이시스 :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고부지간이 동서지간 되는 방법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두 과부가 살았다. 스물을 갓 넘긴 청상 며느리와 그의 시어머니. 어느 봄날 낯선 사내가 찾아들었다. 체격이 건장하고 사내 냄새 물씬 풍기는 포수였다. 돈은 얼마든지 낼테니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했다. 집이 워낙 누추한데다 여자만 둘이서 사는 집이라 곤란하다고 거절했다. 두 자매분이 참 이쁘십니다. 넉살 좋게 능갈치는 사내의 수작이 보통 아니다. 자매라니요. 이 아이는 제 며느립니다, 시어머니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내색은 못하나 마음이 달떴다. 어쨌든 앉으셔서 냉수라도 한잔 하세요. 아, 고부지간이시군요. 포수는 툇마루에 걸터앉더니 내려놓은 망태를 열어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낸다. 어머님이 이리도 정갈하고 한아하시니 며느님도 본을 받아 참으로 곱습니다. 미천한 몸이라 가진 게 변변..

맥문동의 계절 - 울산 태화강국가정원 성주 성밖숲

맥문동의 계절입니다. 태화강국가정원, 그중에 보라정원을 갔습니다. 꽃은 만개했지만 기대만큼 풍요롭지는 않았습니다. 올여름 날씨 탓으로 꽃대가 돋지 않은 것들이 많아 좀 엉성했습니다. 태화강뿐 아니고 다른 곳의 명소도 다 그렇다고 합니다. 좀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좀 풍성하게 보이게 카메라 조작을 부렸습니다. 그렇다고 이 여인들의 매력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니 보랏빛의 신비한 마성은 이 여름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울산에는 이런 길도 있습니다. 법원 앞을 지나가다... 울산에는 카메라든 오빠도 있습니다. 오빠... 훈훈하고 가장 듣기 좋은 단어 오빠. 나는 여동생이 없어 오빠로 불려본 적이 없고 소싯적에 다방에서 몇 번... 오빠라는 호칭으로 불려 보고 싶어요. 특히 ‘카메라 든 ..

국민의숲길 안개에 젖어

국민요정 국민여동생 국민첫사랑 국민배우 국민남편... 더 이상 가져다 쓸 게 없을 정도로 ‘국민’이 흔하던 그 어름. 그 유행에 편승해 평창군이 잽싸게 이름을 선점한 ‘국민의숲’입니다. 대서(大暑) 날이라 역시나 무더운 날, 꽝꽝 얼린 물에다가 등에 붙이는 쿨링팩, 그리고 합죽선. 또 숲속 모기가 있을지도 몰라 기피제까지 거의 완벽하게(?) ‘큰더위’를 대비해 갔습니다, 그런데. 대관령 고갯마루에 오르자 썰렁한 냉기가 끼칩니다. 숲으로 들어갈 때쯤엔 짙은 안개가 뒤덮어 덥기는커녕 춥지 않을지가 더 걱정이었습니다. 안개 안개 안개... 숲은 온통 안개에 묻혀 있습니다. 전나무 곧은 둥치에도, 넙데데한 떡갈나무 이파리에도, 내 발소리에 놀라 냅다 달아나는 다람쥐의 곧추세운 꼬랑지에도 온통 안개였습니다. 잘 ..

마님 빚 갚다

광실의 쌀가마니가 알게 모르게 축나는 것을 느낀 정연은 옆집 하인 석근이 의심스러웠다. 제집 여종인 금순이와 눈이 맞아 수시로 들락거리는 게 영 언짢던 참이었다. 오늘도 석근이 놈이 온 걸 대뜸 불러세웠다. “석근이 너 나좀 보자” 영문을 모르고 잔뜩 주눅이 든 석근에게 엄포를 놨다. “니가 우리 집 드나들면서 광실 쌀을 훔쳐 갔지?” “마님 무슨 그런 해괴한 말씀을... 아니유” 석근이는 한사코 아니라고 발뺌을 했지만 정연이는 곧이듣지 않고 을러댔다. “내가 네 놈 짓인 걸 모를 줄 알아? 그래서 너를 혼내 주겠어” 정연은 냅다 석근이의 가랑이 사이를 걷어찼다. 석근은 공중제비로 튀어오르며 비명을 질렀다. “바른대로 이실직고 하지 않으면 열 대 때릴 거야” 연달아 석근의 거시기를 후려찼다. 거시기를 때..

바다가 보이는 언덕 논골담

휴가의 절정기인데다가 주말이었다. 동해 묵호를 갈 생각이었다면 미리 숙소를 예약을 했어야 했는데 난 그런 면에선 절박함이 항상 부족하다. 뭐 있겠지. 없으면 돌아오면 되지. 그랬더니 과연 모텔이 없다. 간판 불도 거의 다 꺼졌고 간혹 불이 켜져 있는 곳엘 가니 다 만실이다. 내가 그럼 그렇지. 집으로 돌아오려니 너무도 멀다. 이왕 왔으니 방은 없어도 차에서 자면 된다. 묵호항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잠을 청한다. 이 일대는 주차할 곳이 많아서 좋다. 주차장에 차가 많다. 시동을 캬놓고 있는 차들이 많은 걸로 보아 그들도 나처럼 차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인 것 같다. 아마 나처럼 숙소를 못 잡은 게 분명하다. 나는 저녁놀을 좋아한다. 이유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일찍 일어나지 못해서다. 그래서 내 여행사진은 ..

목포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8년 전, 그러니까 2014년 6월이었다.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목포역에 내려 기다렸던 시티투어버스. 승객은 나 혼자 뿐이어서 버스운행을 취소했었다. 그 두 달 전 있었던 세월호 참사로 인해 관광객이 뚝 끊겼다고 한숨을 쉬더니. 그리고 이번 여름에 드디어 투어버스를 타게 되었다. 8년 전과 다르게 만차였다. 제물포 군산 구룡포 동래 등 바닷가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목포도 일제의 수탈 역사를 지닌 땅이다. 일제가 남기고 간 근대문화건축물을 돌아보는 관광상품이 있다. 광복절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들의 연속이다. 오죽 더우면 예정에 있는 유달산을 패스하기로 합의했다. 목포는 수탈의 역사와 함께 저항의 역사도 공유한 도시다. 그리고 민주화를 이끌고 완성한 도시이기도 하다. 아픔과 기쁨 영욕의 세월을 건너..

달성 육신사 배롱나무길

昨夜一花衰 今朝一花開 相看一百日 對爾好衡杯 어젯밤 한 송이 떨어지고 오늘 아침에 또 한 송이 피어 서로 일백일을 바라보니 너와 마주하여 한잔하리라 (성삼문) 달성 하빈면에 있는 육신사는 사육신을 모신 사당이다. 원래는 박팽년을 모셨고 나중에 여섯 위패를 봉안했다. 생전에 성삼문은 배롱나무를 사랑하였다고 한다. 육신사 경내에도 배롱나무가 있지만 정작은 사당으로 들어가는 길의 배롱나무를 보러 간다. 폭염의 절정인 이 계절에 그나마 위안을 주는 정열의 꽃. 특히 이 육신사 길은 국내 몇 손가락에 꼽힐만한 배롱나무 명소다. 민해경 : 변명

슬로시티

언제부턴가 ‘느림의 미학’이란 단어와 함께 슬로시티가 우리 여가활동의 큰 부분으로 들어왔다. 슬로시티는 단순히 빠르다(Fast)의 반대 개념이 아닌 개인과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인 ‘여유’를 지향하는 개념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1999년 느린 도시 만들기의 캐치프레이즈로 시작된 치따슬로(Citta Slow)다. 전세계 32개국 283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선정되었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스위스 등 유럽에 많고 특히 이탈리아는 87개로 가장 많다. 캐나다와 미국이 있고, 아시아는 한국 16개, 터키 21개, 일본 2개, 타이완 4개의 도시가 있어 분포상 한국이 많은 편에 속한다. 한국의 16개 슬로시티는 태안 예산 서천 ..

연천 연강나루길

우리 지역은 흐릿하고 후텁지근했는데 경기 북부지역은 폭우가 쏟아졌나 보다. 군남댐에서 시작했다. ‘연강나룻길’이라는 이름의 이 코스는 평화누리길, 또 경기둘레길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임진강변이다. 군남댐은 북한쪽에서 내려오는 수량을 조절하기 위한 댐이다. 시뻘건 흙탕물이다. 댐의 수문을 다 열었다. 장마는 끝났지만 여전히 비는 내리고 길을 휩쓸고 지나간 흔적으로 보아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걸 알겠다. 비는 지짐거리며 오락가락하고 간간이 햇빛도 내리쬔다. 아무려나 지옥같은 습도가 숨을 턱 막는 고통스러운 날이다.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 옷이 흠뻑 젖는다. 길은 물고랑이 생기고 무성한 수풀이라 신발도 금세 젖어들어 신발 속에 물이 절벅거린다. 그만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강했지만 멀리까지 온 공이 아까워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