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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우산 속에

우요일 雨曜日인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뭇잎도 젖고 포도 위도 젖고 우산 머리카락, 입술... 내 가슴도 젖고 카메라도 젖었다. 웬 가을비가 이래 마이 오노. 비 비 또 비... 우산 우산 그리고 우산... 봉화산 둘레길과 경순선 숲길 걷다. 이렇게 빗속을 걸었던 때가 언제였나 그것도 가을비를. 잔뜩이나 가을을 타는 내가 이렇게 촉촉이 비까지 젖으면 차마 감당하지 못하게 센티멘털해진다. 우리는, 또 나는, 거침없이 가을의 깊숙한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었다. 묵동천이 삽시간에 범람하여 아슬아슬하다. 이미 길 위로 물이 넘쳐 더이상 가지 못하고 우리는 되돌아서야 했다. 뭔놈의 가을비가 이래 억수로 퍼붇노. 이 가을이 고 최헌님의 10주기 되는 계절이다. 님은 갔어도 노래는 남아 이토록 사무치게 가슴을..

마음의 거리

근래 어느 날 이범학의 노래 를 듣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태까지 ‘거리’가 street인줄 알았다. 그런데 잘 들으니 street이 아니고 distance였던 것이다. 어색한 느낌의 연인과의 보이지 않는 거리다. 젊었을 때는 막연히 따라만 불렀지 그 노랫말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돌아보니 모든 노래를 다 그렇게 가벼이 지나쳤다. 나이 들어서야 비로소 그 노랫말을 곱씹고 음미하게 되는 것이다. 다섯손가락의 는 도시를 떠나 훌훌 낯선 곳으로 여행한다는 다분히 낭만적인 가사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사랑하는 연인이 죽은 내용이다. 아, 이렇게 처참하게 아픈 노래인 걸 이제껏 모르고 있었다. 하나더 예를 들면 김광석의 에는 “너의 목소리가 그리워도 뒤돌아볼 수는 없지”라는 노랫말이 있다. 연인..

드디어 으름을 먹어 보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사진으로도, 직접 숲에서도 수없이 봐 왔던 것. 으름이다. 이걸 한 번 먹어보는 것이엇다. 수없이 본 것은 덩굴이나 잎, 또 꽃이었고 가을 초입에 열매도 보아 왔지만 아직 익기 전이었다. 그래 그 흔한 걸 여직 한번도 먹어보지 못하였다. 회사 옆댕이 숲에도 으름덩굴들이 있어 작년 가을에 보니 제법 많이 달렸다. 올커니, 올해는 먹어 보겠구나 했더니 어쩐 일인지 그냥 까맣게 잊어먹고 있다가 퍼뜩 생각나 가 보니 이미 다 떨어져 없어진 뒤였다. 스스로 게으른 건 늘 자인하고 있는 터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다. 어쨌든 작년은 게을러서 못 먹어 보고 올해도 보니 또 작년처럼 달려 있다. 이번엔 잊어 먹지 말자고 집중해서 염두에 두고 있다가 드디어 오늘 탐스럽게 벌어진 으름 하나..

삼강주막과 회룡포

한국의 복고풍이 조금은 짙은 곳이 예천이 아닌가 한다. 금당실에서부터 더러더러 눈에 띄는 누각과 정자들. 현재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주막이 풍양면에 있다. 물론 옛 건물은 아니나 그래도 초가지붕을 씌우는 등 옛것과 비슷하게 조성해 놓았다. 삼강주막에서 사림재를 넘으면 회룡포다. 낙동강의 지나면서 만든 독특한 지형이다. 영주의 무섬마을 안동의 하회마을과 함께 회룡포가 유명하다. 이런 곳은 대개 모래사장이 넓다. 물이 휘돌면서 강변에 모래를 쌓아 놓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시에 적절한 적절한 풍경이다. 이 길을 카페 정기도보로 다녀왔다. 처음은 아니다. 그날밤 열대야가 이어질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추석도 지난 청풍명월의 계절에 열대야라니. 아무튼 사나흘 이상 고온이 맹..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광고카피 하나로 매출이 대박을 터뜨리고 그 기업은 주가가 올라 대성공을 거두지요. 이제껏 히트를 친 명 카피를 모아 봤습니다. 당신은 어느 게 가장 기억에 남나요.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여자라서 행복해요 산소 같은 여자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여러분 부~자 되세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잘 자 내 꿈꿔 감기 조심하세요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국물이... 끝내줘요 또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화장은 하는 거보다 지우는 게 중요합니다 가자 해를 따라 서쪽으로 짜장면 시키신 분~ 니들이 게맛을 알어?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나는 이 카피가 가장 좋습니다. 주말..

김포 금빛수로

계절은 분명히 가을인데 무척이나 더웠다. 안날부터 감기 기운이 돌더니 이 날 아침엔 맑은 콧물이 흐르기 시작. 시절이 시절인지라 혹시 코로나가 아닌가도 했지만 증상으로 보아 그건 아니다. 게다가 회사사람 말고는 누구랑 접촉한 적이 없으니 코로나 바이러스를 들이마셨을 가능성이 적다. 라는 이름의, 원래는 '김포대수로'였던 물길을 걷다. 그닥 길지 않은 거리를 걷는데 뜨거운 햇볕에 숨은 턱턱 막히고 감기가 더해 몹시 불편하다. 땀도 흐르고 몸 상태도 찌뿌드드한 게 영 좋지 않다. 콧물은 쉴 새 없이 흐르고 잠깐잠깐 쉬기를 반복한다. 이 금빛수로는 원래는 농사용 하천으로 비가 안 오면 물이 없는 건천이었던 것을, 김포시가 ‘한국의 베니스’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기획한 프로젝트다. 팔당댐에서 물을 끌어와 흐르게 ..

담양 관방제림 길

담양의 유명한 숲 관방제림. 오래된 노거수들이 으늑한 그늘을 지우고 줄지어 늘어선, 보기에도 시원한 그늘숲입니다. 푸조나무가 주종이며 팽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서어나무 등의 수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나무마다 일련번호를 붙여 체계적인 관리를 하고 있어서 이 아름다운 숲이 보존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름은 갔지만 여전히 나뭇잎과 숲은 짙은 푸르름으로 마지막 축제를 즐기는 듯 보였습니다 태풍 힌남노가 오기 하루 전 주말이었습니다. 폭풍전야의 고요인지. 바람 한 점 없이 물쿤 날씨. 하늘은 구름이 몰려들었다가는 파랗게 벗개기길 반복하며 이따금 는개가 흩뿌리기도 하고 곧이어 쨍쨍 햇빛이 쏟아지기도 하는 요상한 날씨였습니다. 관방천을 사이에 두고 유명한 죽녹원이 마주하고 있고 관방제 숲을 사뭇 걸어가면 또 유명..

예천 금당실. 가을이 발치 끝에 다가왔네

정기도보 답사에 나선 길에 염두에만 있던 금당실을 속속들이 둘러보았다. 어느 해 연분인가 예천 지보면에서 한 석 달간 지내면서 딱 한번 가 본적이 있었는데 지나는 길에 호기심으로 들여다본 것이어서 가 봤다고 할 수는 없다. 그때는 몹시 추운 겨울이어서 황량하고 척박한 기억인데 맘먹고 둘러보니 여러 감상이 느껴진다. 어릴 적 시골에 살았던 사람은 알 수 있는 아련한 모태적 그리움 같은 것. 요즘은 시골이라도 옛 고향의 정취가 거의 없다. 이곳 금당실은 현대 문명이 공존하고 있어 뷰가 그닥 시골스럽지 않은데도 어쩐지 옛 시골에서의 감성이 소담스레 젖어든다. 오곡백과가 영그는 이 시절이라 금당실의 풍광이 더욱 애절하다. 다시 유년시절의 시골로 돌아갈 수는 없다. 수구초심이라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뼈저리게..

여름이 끝나고 학암포에서

철 지난 바닷가는 어떤 분위기일까. 태안 학암포 바다. 올 여름은 비만 내리더니 그 마지막까지도 비가 내린다. 바다는 가뜩이나 철이 지나 쓸쓸한데 오락가락 는개비에 바람이 거세다. 드넓은 모래톱에 몇몇 철지난 사람들이 왔다가는 거센 바람에 옹송거리며 추워들 한다. 나도 거닐다 어스름이 내려 텐트로 돌아온다. 밤이 깊어도 바람은 멈추지 않고 한밤중 언제인가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텐트를 요란하게 때린다. 자고 나면 하늘이 열리겠지. 자고 나니 하늘이 열렸다. 빗방울은 멈추고 새소리가 시끄럽다. 이른 아침인데도 벌써 무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느지막이 바다엘 나가니 해수욕객이 제법 많아 어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햇빛은 내리쏟아지고 이대로 여름을 보내기 아쉬워하는 듯 제법 바캉스휴양지 같아졌다. 맨발로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