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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감천마을

13일의 금요일이다. 음산한가. 게다가 부슬부슬 는개비가 내렸다. 음산하다. 하루종일 햇빛이 없었다. 계획된 도시의 정연한 질서보다 아무렇게나 난립하여 자연적으로 성립된 골목길이 더 정겹고 푸근하다. 오래된 옛 골목길에서는 정신없이 빠르게 달려가는 세상의 속도를 잠시 잊는다. 물론 그 주민들도 첨단문명의 이기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을 테지만. 이곳의 집들은 마당이 없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 소유하고 도열해 있어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참말로 좁디좁은 가옥들이다. 그러면서도 산록면에 위치한 독특한 구조라 집집이 다 햇빛을 담뿍 받고 산다. 물론 는개비 내리는 이런 날은 음산하다. 부산 감천마을. 웬만한 곳은 다 재개발하여 헐리고 계획 신도시로 변모하지만 감천마을은 옛 모습 그대로 천년을 이어갈 ..

부비부비의 추억

입장료가 바덴바덴은 1,500원, 영스타는2,000원이었다. 들어가서 테이블을 잡고 앉으면 콜라 혹은 사이다가 한 잔씩 나왔다. 그거 한 잔 마시고 신나게 흔들어대곤 했다. 나중에 서울에서 콜라텍이라는 게 유행하게 되는데 이미 지방에선 그 오래 전부터 흥행했던 거였다. 당시 춘천에선 명동의 바덴바덴과 영스타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요선동의 팽고팽고도 있었는데 팽고팽고는 인간들이 지저분하다고 우리는 덜 좋아했다. 음악적인 감각이 좀더 세련됐다며 젊은이들은 바덴바덴보다는 영스타를 더 선호했다. 그래서 500원이 비쌌나 보다. 바덴바덴이 이쯤 어디였는데 가뭇없다. 80년대 전반기 광풍처럼 휘몰아친 음악. 유로댄스. 모던 토킹을 필두로 시작된 거대한 물결은 고만고만한 스타일과 아류작으로 일세를 풍미했지만 한 곡..

이곳도 설국이었다. 제주 1100고지

밑에서 쳐다보니 한라산에 눈이 별로 없다. 얼마 전 역대급의 폭설이 내렸다는데 과연 따뜻한 지방이라 그런가. 그래도 이와 제주에 왔으니 한번 가보기는 해야지. 말로만 듣던 1100고지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힌다는 이곳의 설경을 보러 겨울이면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한다. 기대를 안했는데 웬걸. 버스가 고지대로 오르면서 눈이 많아지더니 1100고지에 다다르자 정말 엄청난 눈이 쌓여있다. 눈내린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어른 허리께에 미친다. 따뜻한 섬이지만 고지대는 이토록 빙점 이하의 기후다.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 빙벽이다. 쉴 새없이 칼바람이 몰아친다. 뺨과 귀가 얼얼하다. 손이 시리다. 눈이 많이 쌓여 돌아다닐 데도 없다. 휴게소 주위만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설령 돌아다닐 데가 많았더라도 칼바람 ..

제주동백수목원

작년 2월 말에 제주동백수목원을 갔더니 꽃이 다 졌다고 이미 폐원한 상태였다. 과연 제주는 뭍보다 계절이 빠르구나. 올해는 좀 일찍 서둘러 년초에 갔더니 아주 절정이었다. 보통 우리가 아는 동백은 이렇다. 다른 꽃과 달리 송이로 떨어지는 독특한 완성. 핏빛보다 더 진한 붉음. 그런데 제주의 동백은 전혀 다르다. 꼿송이도 그렇고 색깔도 다르다. 나뭇잎도 다르다. 애기동백이라 한다. 정염의 빨간색이 아닌 분홍색이다. 동백 특유의 비장한 슬픔이 없다. 대신 천진난만한 소박미인가. 송이째 떨어져 뒹구는 애슬픔 대신 낱낱이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꽃잎들의 청초함? 게다가 이곳 수목원은 나무를 죄다 저리 인공으로 둥그렇게 깎아 놓아 맨송맨송하니 영 멋대가리 없다. 털이 죄다 깎인 애완견을 볼 때가 많다. 주인은 애정이..

김호중 아세요?

김호중을 아시나요? 난 잘 모른다. 아니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고 그 이름만은 알고 있지만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다. 성악가 출신인데 미스터트롯에 출연했다는 정도만 안다. 조폭 출신에다가 병역기피 의혹, 불법도박 등 부정적인 뉴스를 연예기사에서 가끔 접하곤 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좋은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선입감이 있는 정도다. 그런데 꽤나 유명한 가수인 것 같다. 우리 누나들도 다 알고 지인 중에도 열성 팬이 있는 걸 이제사 알았다. 배구를 좋아해서 이따금 괴산에서는 가장 가까운 김천으로 배구경기관람을 가곤 한다. 김천은 여자배구 도로공사 홈이다. 이번에 배구경기장 근처에 다다라 문득 보라색으로 치장한 골목길이 눈에 띄었다. 뭐지? 여행자 특유의 호기심이 일어서 시간도 넉넉한 김에 들어갔더니 김호..

그곳은 설국이었다... 내소사

딱히 갈곳이 마땅치 않던 주말이라 역시나 만만한 비내섬이나 갈까 하다가. 호남 지방에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눈구경이나 해볼 요량으로 떠난 길이었다. 과연 군산 쯤 다다르니 하늘은 어둡고 저 멀리 대기가 뽀얗다. 정말 눈이 많이 오는 듯 싶었다. 서서히 차량 속도가 떨어지면서 거의 정체 수준으로 길이 막혔다. 안날에도 대설에다가 또 눈이 내린다. 눈에 잘 뵈지도 않는 가루눈이다. 날은 또 강력 한파라 길이 미끄러우니 차들이 엉금엉금이다. 도로가 위험할 땐 이렇게 지정체 상태로 가는 게 안전하다.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지루하게 부안에 도착했다. 세상은 온통 눈세계다. 교통상황은 최악이지만 그것만 양보하고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지. 사뭇 눈이 날린다. 이미 어스름 저녁이 다 되었다. 모텔에서..

부산 장림포구

여긴 ‘부네치아’라고 하네요. 이런 유의 이름짓기는 내겐 좀 혐오스럽습니다. 그냥 통영이면 통영, 여수면 여수지 ‘한국의 나폴리’, ‘한국의 산토리니’ 따위의 사대적인 개념이 영 못마땅합니다. 경리단길을 본따 망리단길 송리단길 황리단길 행리단길 등등의 몰개성 몰염치한 작명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산 사하구에 있는 장림포구는 ‘부네치아’라고 합니다. 부산의 베네치아라는 의미겠지요. 유럽풍 집들 흉내로 리모델링을 하여 조금은 특이하게 인테리어를 했습니다. 근래 사진 찍기의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는 중입니다. 장림, 참 근사한 이름입니다. 염상섭의 에 길게 뻗친 숲, 즉 장림이란 낱말이 몇 번 나오는데 부산의 이 포구 이름이 얼마나 반갑고 근사한지. 삭막하고 칙칙하고 냉랭한 겨울 포구 풍경 일색이던 것이 ..

서해금빛열차

서해금빛열차?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관광열차의 하나다. 한번 타보고 싶어서 예매를 몇 번 했는데 너무 바투 잡은 탓으로 그때마다 매진이었다. 좀 여유롭게 한달 후로 잡았더니 자리가 널널했다. 결론을 먼저 얘기하면 특별한 열차 아니다. 실망했다. ‘서해금빛열차’지만 시종 바다는 볼 수 없다. 물론 알고 있었다. 특별히 바닷가로 새로 레일을 놓았을 리 없으니 그저 장항선 노선의 하나일 뿐이다. 단지 차에 노란색을 칠해 서해금빛열차가 되었다. 아니 딱 하나 있긴 하다. 온돌마루 간이다. 일부러 그것 때문에 예약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지만 내겐 별 흥미도 의미도 없어 일반 객실을 탔더니 ‘노란 색칠한 장항선 열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차창 밖은 내내 이런 풍경이다. 바다는 딱 두 번 본다. 하나는 대천역 다 가..

겨울에 아름다운 자작나무들

자작나무. 맑은 날에 눈부시게 빛나는, 겨울을 닮은 나무. 어릴 적 아궁이에 넣으면 그 특유의 수피가 타는 소리, 자작 자작 자작거린다 해서 자작나무라 했다지. 인제 원대리는 워낙 유명해서 나무보다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미어터지지만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자작나무숲이 김천에 있다. 국립김천치유의숲. 막 시작한 겨울. 나뭇잎 모두 떨군 자작나무들이 하얀 자태를 뽐내고 섰다. 몹시 추운 아침이었다.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는 장희빈을 꼭두각시로 앞세운 소론 일파에 의해 폐비되었다. 갈곳이 없던 왕후는 외가와 인연이 있던 이곳 수도산 청암사에 의탁했다. 이 수도산에 ‘인현왕후길’이란 테마 길을 조성해 놓았다. 작년 겨울 이 길을 한 바퀴 걸었었다. 이번엔 치유의숲을 탐방하다. 겨울에 아름다운 자작나무라지만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