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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위봉산 태조암

아득한 옛날의 무슨 전설이나 일화가 아니라 요 근년에 노스님이 수행하며 공부하던 암자에서 일어난 일이다. 숲속에 파묻힌 돌담 주춧돌도, 천년 고탑도 비스듬한 그 암자의 마당에 들어서면 물소리가 밟히고 먹뻐꾹 울음소리가 옷자락에 배어드는 심산의 암자였다. 암자의 마당 끝 계류가에는 생남불공(生男佛供) 왔던 아낙네들이 코를 뜯어먹어 콧잔등이 반만큼 떨어져 나간, 그래서 웃을 때는 우는 것 같고 정작 울 때는 웃는 것 같은 석불도 있었지. 어떻게 보면 암자가 없었으면 좋을 뻔했던 그 두루적막 속에서 이십 년을 살았다는 노 공양주보살님이 그해 늦가을 그 석불 곁에 서서 물에 떠내려가는 자기의 그림자를 붙잡고 있을 때, 다람쥐 두 마리가 도토리를 물고 돌무덤 속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네. 옳거니!..

제주 입도세 논란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제주도 입도세. 관광지이이다 보니 어딜 가든 쓰레기가 넘쳐나고 그 처리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래서 항공료에 입도요금을 추가하자는 이야기다. 어불성설이다. 도대체 생각이라는 걸 하는 머린지. 쓰레기는 육지관광객이 싸가지고 가서 제주에 버리는 게 아니다. 다 현지에서 먹고 쓴 것이다. 현지에서 돈을 쓰는 것만큼 비례해서 쓰레기 양도 많다. 공평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 지자체에도 똑같이 도입해야 한다. 지자체마다 담을 쌓고 관문에서 돈을 받고 입도시킨다. 서울 사람이 부산까지 간다면 경기도 충청남도 대전 경상북도 경상남도 부산까지 7개 시도경을 넘을 때마다 돈을 내는 거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관광객의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 벌었으면 그 처리도 해당 ..

청주, 옛 도심을 걷다

청주 성안동 일대는 옛 청주의 도심이었고 지금도 중심번화가다. 북문 동문 남문 서문이 있다는 건 읍성이었다는 말이다. 서울의 사대문안과 같은데 청주의 옛 흔적은 거의 없다. 사대문 터만 남았고, 우리은행 신축공사 중 발굴된 우물이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은행 출입구 옆에 우물이 복원돼 있다. 일제가 통치하면서 옛 읍성은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전설로만 남았다. 성안길과 소나무길, 옛 청주역과 중앙공원, 상당공원 등을 돌아보는 투어. 연일 매서운 한파.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날들인데,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앞둔 들뜬 분위기는 젊은이들을 거리로 불러낸다. 게다가 함박눈이 푸지게 쏟아져 내리니 날은 추워도 제법 마음이 달뜨기도 한다. 여전히 지난 여름의 아픔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거리에 눈이 내린다. 일말의 설..

커피가 사라지고 있다

여행을 하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는 것도 하나의 큰 즐거이다. 꼭 뭐가 필요해서가 아니고 내게는 그냥 참새방앗간 같은 장소다. 마렵지도 않은 오줌도 싸고, 건물 뒤쪽 전망대에서 마을전경 구경도 하고. 무엇보다도 자판기 커피가 있어서 좋다. 비싸지 않으니 주머니에 몇 개씩 늘 남아 있기 마련인 동전들도 처리할 겸 달달한 믹스커피향도 나쁘지 않고. 근데 고속도로휴게소에 자판기가 죄다 사라지고 있다. 휴게소마다 파스쿠찌나 톰앤톰 등 프랜차이즈 커피점들이 두 셋 정도는 입점하고 있는데 그 영향인 것 같다. 가껏 500원짜리 커피 10잔 팔아 봐야 돈도 안되고 4~5천원 하는 프랜차이즈커피 한잔 파는 게 수익이 좋을 테니까. 어느 휴게소는 아예 자판기가 없어졌고, 어느 휴게소는 있기는 한데 ‘고장수리중’이라고..

함안 아라가야 고분을 거닐다

롱롱 타임 어고우, 아라가야라는 부족국가가 번성을 구가했던 곳, 함안 여기저기 고대문헌에 등장은 하지만 그 내용이 다 달라 여전히 미지의 역사로 남아 있는 전설의 왕국.. 그렇지만 지금 우리 눈앞의 거대한 고분군은 갈데없이 확실한 역사적 사료다. 현재 육안으로 보이는 분묘는 37기인데 실제로는 200여 기에 달하며 전문가들의 추정은 1,000여 기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이산 말고도 함안에만 고분군이 여러 곳에 산재해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바 과연 고대 아라국의 위세를 미루어 짐작하겠다. 봉분의 크기는 통치자의 권력에 비례한다. 비록 가야국들이 고대국가로의 발전은 못하고 사라졌지만 이토록 거대한 분묘라면 아라가야 권력자들의 힘을 미루어 짐작하겠다. 그러나 어쨌든 그 왕들은 죽어 묻힌 지 오래고 살아..

창원 가로수길

이름도 건물도 고상한 카페들이 있고, 젊은 연인들이 있고, 여유로운 휴식과 낭만이 있고. 어디에 서 있든 커피향 너풀거리는 거리. 그보다는 지나는 사람들 모두의 얼굴 발그스름하게 물들이는 황금빛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가 늘어선 거리. 가까이 산다면 무료한 오후 나절에 추리닝 차림으로 나가 어슬렁거리기 딱 좋은 거리인데 내게는 우정 스케줄을 잡아 다녀와야 하는 먼 도시이다. 이곳 용호동 가로수길이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지만 인근 다른 거리에도 곳곳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다. 이것이 가을이네. 참 가을을 보고프면 에 한번씩은 다녀와야겠다. 낯선 곳 낯선 풍경 속을 거니는 이런 조촐한 여행이 좋다. 하릴없이 서성거리다가 인테리어 맘에 드는 커피집에 들어가 앉아 노닥거리는 기분도 좋다. 생각은 업이다. 머리와 가슴 ..

가을의 교정이 아름다운 백봉초등학교

가을이 아름다운 명소가 수도 없이 많지만 학교, 그것도 초등학교가 명소인 경우는 없다. 학교가 다 거기서 거기 비슷비슷하고 가을의 풍경이 예쁘지 않은 학교가 어디 있으랴. 괴산의 백봉초교가 특별하게 가을풍경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언제 한번 가 본다 하면서도 가까운 이웃동네라 잘 안 가게 된다. 짧은 가을을 더 많이 누리고 싶어 이번에 다녀오다. 그렇군. 유명세가 있을 만하다.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아도 조촐한 분위기가 좋다. 가을의 절정이었다. 영국 동요 : 그 옛날에 (Long Long Ago)

비와 찻잔 사이, 상림

두어 차례 한파도 왔다 가고 눈도 내렸다. 이제 문밖은 완연한 겨울 풍경이다. 낙엽엔딩. 다음 해를 준비하느라 낙엽들은 저리도 바쁘다. 가을이 짧아 늘 서운하고 아쉽더니 그래서 저 낙엽들처럼 부지런히 짧은 가을 속을 싸돌아다녔더니 내 카메라에 유난히도 많은 가을이 들어 있다. 이렇게 철은 지났는데 카메라 속의 사진들이 가을 가기 전에 내보내달라고 조르는 듯해.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내년까지 가둬 놓을 수는 없으니 옛다 보거라, 겨울이다! 오후 내내 잿빛 하늘이더니 기어이 비가 내렸다. 후두둑 숲에 내리는 비. 연못에 동심원을 그리는 빗방울. 제법 푸지게 내렸다. 슬픈 기분이면서도 그보다는 왠지 머리 개운한 느낌이다. 모든 것 다 내려놓고 홀홀히 떠난다는 것. 낙엽이, 빗방울이 나에게 던져주고 간 사랑의 ..

대청호 부소담악

중국무협소설 제목 같은 이름의 부소담악. 대청댐 건설로 인해 들어찬 호수 위로 뜻하지 않게 생겨난 명승지다. 그 이름은 부소무니란 마을 이름에서 가져왔다 한다. 역시 주말이라 좁은 마을길에 끝도 없이 늘어선 관광객들의 차량들. 이른 아침 풀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과 자욱한 물안개. 내가 기대한 명성에는 조금 못 미쳐도 싱그런 그 가을 아침의 느낌은 참말 상쾌하고 청량하다. 지금쯤은 황량하고 쓸쓸한 풍경일 것이다. 글룩 : 정령들의 춤

[도시투어] 서귀포 이중섭거리

한 사람의 생애를 돌아본다는 건 그닥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접하는 사람들의 전기는 대개 불행하고 우울한 삶의 점철이므로 그 삶이 내게도 전달되어 도통 일생이 허망과 피폐한 것으로만 느껴진다. 주로 예술가의 생애들이 그렇다.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또 이상 김유정. 또 고흐 뭉크. 반대로 풍요하고 발랄하게 산 사람들의 일대기는 드라마틱하지 않아 심심하고, 화가 이중섭도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예술가였다. 평남 평원 태생인 화가가 머나먼 남쪽 섬 제주까지 왔다면 그 역정의 불우함은 능히 짐작된다. 그럼에도 내가 보기에는 초가삼간에서 처자와 오순도순 가난하게 살았던 제주의 1년이 가장 행복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귀포 이중섭거주지를 중심으로 그를 테마로 한 거리. 난 그림을 잘 모르는 문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