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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 억새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햇살도 눈부신 곳. 제주 산굼부리가 가을 억새 명소라 하기에 한번 가 보고 싶었다. 과연 풍광 좋은 절경이긴 한데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였을까. 정선 민둥산의 억새와 사자평의 들판을 이미 본 눈에 산굼부리는 그닥 기대치에 미치지는 않았다. 비주얼은 황홀하리만치 새하얀 민둥산의 그것에 못 미치고, 스케일은 광활한 사자평의 그것에 못 미친다. 제주 대부분의 관광지처럼 이곳은 입장료가 있다. 입장료 6천 원. 만약 이곳을 기준으로 입장료를 산정한다면 민둥산은 12,000원, 사자평은 1만 원 정도 책정할 수 있겠다. 다만 이곳은 바로 대로 옆 평지라 접근성이 좋아 그만큼의 프리미엄이 있긴 하다. 어쨌든 돌 바람이 많은 제주라 그것들과 어울린 억새 풍경은 근사하다. 더구나 우뚝 ..

봉정암 가을 유람기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인파가 밀려들 테니 남보다 먼저 도착하려고 한밤중에 일어나 밤을 찢어 설악산에 도착했다. 6시쯤이었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셔틀버스 첫 차가 7시에 출발한다는 걸 알고 있는 터였다. 아직 날은 깜깜한데 백담사 입구는 이미 장사진이었다. 셔틀버스를 타려고 늘어선 줄이 거짓말 조금 보태 십리였다. 7시에 첫 운행을 한다는 버스도 새벽부터 부지런히 실어 나르고 있었다. 잠깐의 간격도 없이 연달아 버스는 대는데도 나라미 선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미 가을이 이운 설악산의 새벽은 몹시 추웠다. 거의 한 시간여 만에 긴 줄을 극복하고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따뜻한 온기와 함께 평화로운 안식의 시간이었다. 백담사에 내리니 날은 환히 밝았다. 비로소 만산홍엽 설악의 가을이 아름다운 풍경 되어 내 앞..

가을, 사자평 억새

한국에서 가장 광활하다는 억새평원 사자평. 오래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번번이 미루다가 이번 가을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말겠다는 집심으로 벼르다가 드디어 올랐습니다. 무슨 큰 과업을 완수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조금은 비장하게. 사자평으로 가는 길은 여러 루트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짧고 난이도가 쉬운 표충사 코스로 잡았습니다. 밀양 표충사로 들어가는 길은 수려한 소나무 숲길이 장관입니다. 솔숲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풍광은 카메라로 담을 수 없는 환상의 풍경이었습니다. 고찰 표충사는 무슨 전각을 더 짓는지 공사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습니다. 10월 중순 한가을이지만 아침 공기는 싸늘해 입김이 나옵니다. 더구나 산악지역의 가을은 예상보다 훨씬 깊어져 있기 마련입니다. 표충사 옆댕이를 돌아 만만치 ..

괴산 문광호수와 은행나무길

모처럼 내 고장 괴산에 대한 르포를 올릴 기회가 되었다. 별로 볼것 없는 촌동네지만 그래도 가을이라고 제법 멋들어진 풍경이 있어 다녀왔다. 문광호수 그리고 은행나무길. 타지인들은 이미 많이 다녀갔지만 정작 지역민인 나는 처음이다. 이맘때 주말이면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몰려 이곳으로 진입하기가 무척 어렵다. 이번 가을엔 기필코 진입하리라 작년부터 잔뜩 별렀던 터다. 남들이 오기 전에 먼저 간다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나름 여유롭게 도착해보니 헐~이다. 이미 주차장은 만차이고 좁은 국도 노변으로 끝도 모르게 차들이 나라미를 섰다. 아뿔싸. 지척인 내가 이렇게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또 실패다. 저 사람들은 어디서 왔으며 도대체 집에선 몇 시에 떠나왔더란 말이냐. 많이 유명한 관광지라 새벽 일찍 도착해야 한다는 걸 ..

[도시투어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다시 양림커뮤니티로 돌아가 펭귄마을을 돌아봅니다. 관광지로서의 ‘양림동’이라 하면 이 펭귄마을을 말하는 겁니다. 벽화골목은 실은 치부를 감추려고 화려하게 치장을 한 빈민가의 슬픈 이면입니다. 어린 아가씨들은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청초하고 아름다우니 사람이 나이 들수록 얼굴에 화장기가 많아지는 법입니다. 광주 양림동 펭귄골목은 화려한 치장은 되도록 자제하고 주위에서 쉽게 보이는 소품들로 대충 가져다 붙인 고졸한 멋이 있습니다. 양림동(楊林洞)이란 지명이 유래된 된 버드나무. 예전에 이 일대는 버드나무가 많았다고 하여 양촌(楊村)과 또는 유림(柳林)이라 했는데 두 이름에서 양림동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펭귄마을 골목 어귀에 한 그루만 남아 있습니다. 이 골목이 근래 부상한 핫플레이스예요. 그닥 ..

[도시투어 광주] 양림동 양림산

양림동. 지금의 광주가 시작된 곳입니다. 한 세기 전 개신교 선교사들이 터를 잡으면서 들어선 이 지역 최초의 교회, 근대병원, 학교, 서양식 주택 등이 지금도 산재해 있습니다. 유진 벨(배유진) 오웬(오기원) 엘리자베스 세핑(서서평) 최홍종 목사 윤형숙 열사 등의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호남신학대를 지나 이웃한 사직산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 양림동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봅니다. 앞에 보이는 게 호남신학대학이고 저 뒤편으로 수피아여고가 있습니다. 양림산은 산이라기보단 언덕이라 하는 게 걸맞은 아주 작은 산이지만 이 자락의 골목길과 자드락길을 걸으면서 기독교 신앙에 얽힌 수많은 근대문화유산을 만납니다. 양림산은 개신교의 심장과도 같은 곳입니다. 양림동엔 교회도 많아 ‘양림교회’만도 셋입니다. 이곳에 와서 양림교..

해파랑길 가을 속으로

46코스는 두어 해 전 추석에 다녀왔으므로 이번엔 45코스를 걷기로 했다. 그 많은 해파랑길 구간 중에서 45코스를 선택한 건 이렇게 싱거운 거였다. 장사항에서 설악항까지. 이 구간은 호젓한 바다풍광을 즐기며 걷는 구간은 아니다. 항구와 해수욕장들로 이어져 있어서 관광 인파가 북적거리는 휴양지가 대부분이다. 낮보다는 밤이 더 피어나는 유흥가의 구간이다. 이 구간의 알짬은 아무래도 영랑호수 둘레길이다. 처음 걸어본 영랑호. 가을이 짙어지는 호수의 오후가 고즈넉하니 좋다. 8km나 되는 제법 먼 길이다. 어스름 저녁이 내리고 있는 잔잔한 호수. 설악 능선 뒤로 넘어가는 석양이 호수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꼭 영랑호라서 아닌, 가을의 여행은 어디든 좋다. 그리고 영랑호에서의 가을 저녁은 더욱 행운이었다는 자평이..

거창 감악산의 아스타국화

처음 보는 꽃인데 아스타국화라고 합니다. 거창 감악산 산정은 목하 보랏빛 세상입니다. 이곳은 ‘별바람언덕’이라는 예쁘기도 하고 한편 유치한 느낌도 있는 이름이 있네요. 한가을의 아스타국화가 명물이지만 일출과 일몰, 그리고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꽃만 구경하고 왔습니다. 어떻게들 알고 오는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합니다. 해발 9백 미터나 되는 산을 허위허위 올라갑니다. 내려올 때는 시종 브레이크를 밟아야 해서 파열하지 않을까 내내 불안했던 운전이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에 올랐던 1.200미터 평창 청옥산의 육백마지기 때도 엄청 겁이 났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여름, 육백마지기를 뒤덮었던 샤스타데이지의 하얀 물결이 지금도 눈에 암암합니다. 그때는 흰색의 바다, 이 가을 별바람언덕은 보라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