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884

연천 연강나루길

우리 지역은 흐릿하고 후텁지근했는데 경기 북부지역은 폭우가 쏟아졌나 보다. 군남댐에서 시작했다. ‘연강나룻길’이라는 이름의 이 코스는 평화누리길, 또 경기둘레길의 한 구간이기도 하다. 임진강변이다. 군남댐은 북한쪽에서 내려오는 수량을 조절하기 위한 댐이다. 시뻘건 흙탕물이다. 댐의 수문을 다 열었다. 장마는 끝났지만 여전히 비는 내리고 길을 휩쓸고 지나간 흔적으로 보아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걸 알겠다. 비는 지짐거리며 오락가락하고 간간이 햇빛도 내리쬔다. 아무려나 지옥같은 습도가 숨을 턱 막는 고통스러운 날이다.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 옷이 흠뻑 젖는다. 길은 물고랑이 생기고 무성한 수풀이라 신발도 금세 젖어들어 신발 속에 물이 절벅거린다. 그만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강했지만 멀리까지 온 공이 아까워 내..

비 내려 산뜻한 미동산수목원

장마는 끝났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며칠 비가 내린다. 폭우가 아닌 이런 비는 기분이 개운하다. 고요한 비 풍경을 누릴 만한 곳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가 가까운 미동산수목원을 찾았다. 미동산수목원은 미원의 동쪽에 있다는 의미의 이름이고 청주시 미원면에 있다. 여름의 절정이다. 더위의 절정이라면 이제는 차츰 내려간다는 것. 이 성하(盛夏)의 풍경도 시나브로 사라지겠다. 비가 예쁘게 내리는 휴일. 여름휴가의 둘쨋날이었다. 비스트 : 비가 오는 날엔

신숭겸장군유적지 배롱나무

지리한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되면 목백일홍의 계절이다. 이제는 남녘만이 아닌 우리나라 방방곡곡 8월이면 지천으로 피는 백일홍. 장마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이 여인들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해마다 떠나는 연례행사다. 올해는 대구. 신숭겸장군 유적지의 배롱나무가 괜찮다고 귀동냥으로 들었다. 역사 지식이 짧은 터라 신숭겸 장군을 잘 모른다. 태조 왕건을 살리고 대신 죽은 고구려 개국의 일등공신이라는 것, 최초로 성(姓)을 하사받은, 그리고 내가 태어난 춘천에 그 묘가 있다는 것 정도가 내 상식의 전부다. 이번 여행은 단지 배롱나무꽃을 만나기 위한 여행이기에 장군에 대한 더 이상의 공부도 하지 않았다. 붉은 꽃들의 향연. 내가 어찌 이 정열적인 여인들에게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지금은 상사화의 계절이기..

수국이 있는 풍경, 태안 팜카밀레

몽산포 갔다가 연도에 수국 보러 오라는 어느 농원의 안내판이 있어... 팜카밀레허브농원 입장료는 원래 8천원인데 지금은 수국 피는 계절이라고 12,000원이란다. 이거 납득이 가나? 아무 것 없는 황량한 겨울에도 입장료 받으면서. 그러나 어쨌든 여름 꽃들이 주는 선물은 제법 덜퍽져서 호사를 누릴만 하였다. 수국은 한가지가 아니다. 총천연 다양한 색을 지녔다. 나는 파란색이 가장 좋다. 눈이 시원하면서도 기품 있어 보이고 동화 속의 어느 정원에 데려다 놓는 것 같은 아련한 판타지 비스므리한 느낌? 실제로 정원 속의 건물들이 동화책에서 보던 것들이다. 천 개의 수국이었다. 그것은 다닥다닥 물집들이 터질 때 와와 천 개의 함성이었다 때로 가슴에 묻은 말들을 품은 천 개의 오름이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수국(水菊..

동두천 니지모리 스튜디오

동두천 외곽에 있는 니지모리 스튜디오. 일본 에도시대의 풍광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니지모리의 뜻은 무지개숲(にじもり)이다. 로 유명한 고 김재형 감독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드라마 영화촬영으로 일본을 다녀오는 때가 많아 그 경비를 줄이는 게 어떨까 하고 구상을 해서 조성한 촬영지라고 한다. 보통 ‘일본인마을’이라 일컫는데 마을은 아니고 이름 그대로 스튜디오다. 그래서 실제의 일본보더 더 일본 같다는 평이다. 원래는 사진, 또 영화촬영이 주목적인데 작년부터 일반인에게도 개방했다. 입장료가 2만원이다. 주차료 3천원도 별도로 받는다. 입장료는 좀 비싸지만 그런대로 가성비는 괜찮은 편이다. 료칸도 있고 음식점도 있고 일본식카페 기념품가게 등 체험과 함께 돈을 쓸 콘텐츠가 많다. 료칸(旅館이)란 여관이다...

남해 금산 그리고 은모래비치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이성복의 시 을 읽고 서울서 새벽 첫 버스를 타고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허위허위 금산을 올라 보리암에 올랐다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예전에 본 적이 있다. 그 여정이 얼마나 먼지 고스란히 하루를 썼다고 한다. 어스름 저녁이 내리는 암자에 앉아 인생 가장 행복한 순간을 경험했다고 한다. 한 시인의 감성에 빠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 그 여행자를 존경한다. 어쩌면 해수관음상 난간에 여전히 그가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은모래해변에 캠프..

고창 청농원 라벤더

수많은 허브가 있어 그중에서도 가장 이름이 대중화되어 있으며 실제로도 많이 씌기도 하는 라벤더. 그 향과 보라색을 사람들이 사랑하여. 이때쯤이면 전국 곳곳의 라벤더 농장은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고창 청농원의 라벤더도 인기가 높다. 좁은 시골길에 차들이 모여드니 입장하는데도 장시간 대기한다. 농장이 그닥 큰 규모는 아니지만 보랏빛으로 질펀하게 깔린 풍경이 좋다. 내가 갔을 때는 약간은 덜 개화했다. 6월 둘째 주가 가장 적기일 듯하다. 어딜 가나 만나게 되는 인싸들. 카메라 켜놓고 모델처럼 포즈 취하다. 늘 보는 낯익은 광경이어서 생경하지도 않고 사람들도 무관심하긴 하지만 나는 도저히 못하겠다. 혼자서 저러고 있으면 민망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좀 뻔뻔해야 하지만 나는 도저히... 엠마뉴엘 : Aquare..

영흥도 가족 모임

띠앗머리가 구순하긴 하긴 하지만. 흔한 ‘현실남매’ 같은 가풍은 아니어서 치고 받고 싸우고 못된 짓은 없이 그냥 데면데면한 형제들이다. 돌아가신 엄마가 평생을 자랑처럼 말한 게 우리 애들은 한번도 싸우질 않아서 그게 난 제일 좋아. 싸우질 않으니 정도 그리 깊지는 않을 터, 다 장단점이 있겠지. 부모님이 계시면 그 덕에 강제로라도 모여서 얼굴 보고 음식 먹고 하였지만 이후로는 구심점이 없으니 모일 명분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선견지명일까. 우리 형제들은 언제부턴지 연말이면 한번씩 모이기로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는데 이제껏 잘 지켜 왔다. 처음엔 번갈아 가면서 누구 집에서 개최를 했지만 나이가 먹고 움직이기 벅찬 연륜이 되니 그것도 만만하지가 않다. 이제는 누구 집이 아닌 여행지에서 하루 숙박하면서 지내는 편..

영랑생가 그리고 모란 이야기

6월의 꽃, 하면 모란이 젤 먼저 떠오른다. 화투장의 6월이 목단이기도 하고 김용호의 시에 조두남이 곡을 붙인 가곡 의 노랫말에도 6월의 꽃으로 나온다. 모란, 하면 역시 김영랑이다. 영랑생가에 또 다녀오다. 5월 초였다. 그러나 모란은 없다. 꽃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초당 정원의 모란들은 열매만 달고 있었다. 몇 번째인지 모른다. 모란을 보려고 영랑생가를 찾은 게. 그러나 또 실패. 도대체 언제 가야 볼 수 있는겨? 4월에 가야 하나벼. 영랑생가 뒤울 대나무숲 뒤쪽 언덕에 세계모란공원이 있다. 거창하게 ‘세계모란공원’이라기에 규모도 있고 온갖 모란이 만발하려니 했더니, 그저 여느 조그만 공원이나 다름없고 모란도 그저 그렇다. 그마저도 이미 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영랑생가에서는 보지 못한 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