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884

블로그와 이별합니다

이 블로그의 테마는 음악동영상입니다. 특히 클래식음악을 주로 다루려 했습니다. 애초에는 네이버 블로그를 선택하려 했습니다. 네이버는 그러나 당시 동영상 길이가 10분까지만 허용되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클래식 음악은 보통 10분이 넘어갑니다. 다음 블로그는 동영상 길이가 제한이 없었기에 다음이 내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클래식을 비롯해 국내가요 외국가요 영화음악 국악 등, 누구에게 보여준다기보다는 내가 듣고 싶을 때 찾아서 듣기 위한 블로그였습니다. 그간 여러 번의 개편과 또 글쓰기 에디터의 변환이 이어지고 업로드한 동영상의 음원과 영상 소스도 사라지면서 수많은 동영상이 소멸돼 오고 있었습니다. 다음의 몰상식한 행태에 분노만 했을 뿐 6천여 건이 넘는 방대한 자료를 일일이 복구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

고양이에 관한 일기 한 페이지

어느 날부턴지 노란 얼룩고양이가 한 마리 보였다. 잠깐 보인 게 아니고 그날부터 내내 회사에서 살고 있는 중이다. 전에도 사내에서 거주하던 고양이 하나가 새끼까지 낳고 가솔하여 살다가 관심 없는 중에 어디로 갔는지 없더니 이 놈이 새로 들어와 터전을 잡았다. 어린 고양이었다. 전의 그 새끼 중의 한 놈인지 다른 생 나그네인지 모르나 번죽 좋게 현관 앞 교단에 제 영역을 마련했다. 나는 개나 고양이 등 가축이건 애완동물이든 싫어한다. 짐승들은 그 낌새에 민감하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시골길이나 여행길에서도 개들이 유난히 극성스럽게 나를 더 짖는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은 대개 개와 고양이에게 호의적인 편이니 회사직원들이 오가며 예쁘다고 만지는 등 애정표현을 해 주거나 더 적극적인 사..

졸업

졸업식날 학교 앞에는 꽃과 졸업장통을 파는 사람들로 장사진이어서 그 풍경만으로도 분위기가 흥성했다. 더불어 교정에는 사진사들이 북적거렸고 좀 있는 집 애들은 부모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와 찍었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미소만 짓게 만드는 오래전 풍물이 되었다. 졸업 풍경도 변했고, 코로나가 창궐한 지금은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학부모 없이 약식으로 간단하게 하고는 졸업사진은 집에 와서 엄마가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참으로 불행한 세대다. 아이들도 그렇고 가장 안타까운 건 대학입학생이다. OT 도 하고 싶었고 MT도 가고 싶었고, 대학생이 되면 가장 빛나는 청춘시절을 보낼 거라 꿈꿨는데... 참으로 불행한 세대다. 졸업을 하고 나서 입때껏 한번도 모교를 가보지 않았다. 그 근처라도 가질 않았었다. 나이 들..

협곡열차를 타고

기차는 교통수단의 하나지만 목적지 없이 그냥 기차여행 자체를 좋아합니다. 오래전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시베리아횡단열차를 동경했습니다. 막연히 동경만 했지 막상 떠나는 걸 실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작금의 팬데믹은 이제 그 실행할 작심마저도 무질러 버렸습니다. 그래도 머지않아 동경이 현실 되는 날이 올 것을 희망합니다. V-Train을 타고 왔습니다. V는 협곡을 의미하며 우리말로 하면 ‘협곡열차’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백두대간 첩첩산협을, 그야말로 V자 같은 협곡에 기찻길이 있어요. 예전에 영암선이었던 이 철도는 태백과 인근의 탄광에서 검은 진주를 실어내며 호황을 이룰 때 참 열심히도 달렸습니다. 석탄산업의 사양으로 이 노선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그 사이 한국의 철도 인프라도 KTX 중..

한국도로공사 : KGC인삼공사

어느 정도는 접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도로공사의 일방적 완승이다. 선두 현대건설이 워낙 앞서 있어서 그렇지 현대를 빼놓고 보면 도로공사는 막강한 전력이다. 정대영과 박정아의 블로킹이 국내 최강이다. 이날도 두 선수의 위력적인 블로킹에 인삼공사는 제대로 된 공격 한번 못해보고 3대0 셧아웃이었다. 도로공사는 수비가 안정적이다. 그게 전력의 핵심이다. 리시브와 디그가 잘 되지 않으면 세터가 좋은 공을 절대 올릴 수 없다. 그러면 당연히 공격이 안 된다. 경기를 절대 이길 수 없는 거다. 그게 기본이다. 화려하지 않은 것 같지만 기본이 탄탄해야 그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좋은 집을 지을 수가 없다. 가장 단순한 진리인데 팀들은 수비보다는 우수한 세터나 강력한 스파이커에 더 집중..

안동역 아니고 모디684다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그 사람은 벌써 여러 번의 겨울을 보낸 시방도 소식을 모르겠다. 하기야 이 지방은 눈 한번 오지 않는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대설주의보가 있는 날 안동역엘 가니 여긴 쾌청하다. 남부 캘리포니아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어느 팝송도 있거니와 짜장 이곳은 눈이 없는 지방인가. 그런데 여긴 안동역이 아니다. 다른 곳에 새 안동역이 생기고 이곳은 역으로서의 흔적이 사라졌다. [모디684]라는 생경한 이름이 떡 하니 걸렸다. 지도에서도 옛 안동역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첫눈 내리는 날 만나기로 했던 그 사람은 여기가 아니고 신 안동역 앞에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의 바람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

KGC인삼공사 : 페퍼저축은행

이번엔 KGC인삼공사와 페퍼저축은행 경기 보러 대전 충무체육관. 예매한 자리를 찾으니 내 양옆에 관객이 앉아 있고 나는 그 사이에 앉게 돼 있다. 이런 코로나시국에 거리를 띄우고 자리를 배치하는 게 상식인데 이 사람들 미친 거 아냐? 다닥다닥 붙어 앉은 광경을 보니 몹시 께름칙하다. 둘러보니 텅텅 빈자리가 많은데 왜 매표를 이렇게 했는지 황당하다. 1세트가 끝나고 휑뎅그레 빈자리로 옮겨 앉았다. 표가 많이 팔리지 않은 경기라 빈자리가 많아 다행이었다. 누구나의 예상대로 인삼공사의 3대0 일방적인 완승이었다. 경기는 1시간 18분만에 끝났다. 가깝지 않은 거리를 부러 왔는데 너무 순식간에 끝나 버려 허탈하고 좀은 입장료가 아깝다. 하긴 예상 못한 건 아니다. 신생팀 페퍼의 전력이 너무 약한지라 이번 시즌에..

현대건설 : GS칼텍스

여자배구경기를 직접 돈을 내고 들어가서 보는 날이 오다니! 프로야구도 아닌, 남자배구도 아닌 여자배구를... 한데 이제 모든 스포츠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 여자배구다. TV중계도 안보던 내가 돈을 내고 들어가서 볼 정도면. 수원 현대건설과 GS칼텍스의 경기. 양강의 두 팀이라 관심도도 높았지만 관중석을 보니 과연 여자배구의 인기를 실감하겠다. 경기는 기대한 그만큼의 재미가 있었고 최강 현대가 승리했다. 그보다는 나의 관심을 끄는 게 있었다. 배구경기장에는 웜업존(warm up zone)이라는 게 있다. 경기에 투입된 6명의 선수 외에 나머지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는 공간이다. 예전엔 벤치에 앉았는데 언제부터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웜업존에서 휴식도 취하고 함성을 지르며 동료선수들을 응원하기도 한다. ..

괭이부리말을 아십니까

괭이부리마을은 인천에 있다. 인천 사람들도 잘 모르던 그 마을이 세상에 알려진 건 김중미의 소설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이라는 오명을 받았고 지금도 역시 그런 곳. 에밀 졸라의 은 제목처럼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고상한 도시 파리의 하류층 인간상을 그린 소설이다. 가난에 찌들어 파멸해 가는 도시 빈민들의 비참한 이야기다. 괭이부리말도 가난한 마을이지만 에밀 졸라의 소설처럼 절망적이지 않다. 은 가난에 굴복해 살아가는 일말의 희망도 없는 군상들 이야기지만 은 가난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고 미래를 꿈꾸는 따뜻한 이야기다. 김중미 소설을 읽고 문득 그곳이 궁금했다. 소설이 히트하고 괭이부리말이 널리 알려지자 인천 동구는 이 마을을 체험하는 테마로 관광상품화하려 했다가 맹비난을 받고 철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