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880

보령 천북폐목장

근래 각광을 받고 있는 보령의 청보리밭. ‘천북폐목장’이라는 이름의 핫플레이스다. 정식 소명은 ‘보령청보리밭’이고 원래 목장이었다고 한다. 너무도 유명한 고창의 학원농장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그래서 그와는 또다른 매력의 풍광. 봄철 이맘때가 가장 눈 시리게 푸른 풍경이다. 저 동산을 첨 마주쳤을 때 꼭 텔레토비동산 같아 조금 웃겼다. 언덕 위의 건물은 구 목장의 축사였던 걸 지금은 카페로 리모델링해서 근사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카메라든 언니오빠들의 포커스는 푸른 보리밭보다 저 건물이다. 언덕 위의 하얀 집이거나 혹은, 우리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것을 꿈꾸곤 했지. 하얀 담장에 빨간 넝쿨장미를 올리고. 동화 같은 그 꿈을 지금쯤엔 다들 이루고 살고 있으리니. 언덕 위의 집 청보리..

증도, 해가 뜨지 않는 섬

참 멀고 먼 땅.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이 남는 법이지만 막상 그 길을 갔다면 그닥 새로울 것도 없고 역시나 평범한 길임을 깨달을 테지. 오래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섬 증도. 작은 기다림 끝에 드디어 발 디디다. 여기도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특별히 판타스틱할 것도 없고 경탄스러울 것도 없고. 여느 갯가마을 어디에서나 보는 흔한 풍광 그대로다. 그렇다고 실망했던 건 아니다. 미지의 세계, 즉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었다. 바다는 청량하고 해변은 드넓었다. 우전해수욕장은 그 길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고 한다. 인적도 드문 이 섬과 바다는 그래서 내가 멍때리고 소요하기에 최적의 섬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이상향 같은 곳이었다.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함초빵 안에 든 초록색 소가..

기차 타고 1박 2일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예전에 한번 충주역에서 진행한 열차여행을 다녀왔더니 그 후로 충주역이나 제천역에서 특별관광열차 일정이 있으면 공지를 보내 준다. 이번에 이라는 테마로 부산을 간다고 문자를 보내 왔다. 호텔 바캉스라는 신조어 ‘호캉스’가 나쁜 말은 아닌데 좀 스멀거리는 게 어감이 좋지 않다. ‘호빠’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낱말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호텔은 구미가 당기지 않지만 방문지가 송도해상케이블카, 태종대, 행동용궁사, 부산X더스카이, 그리고 해운대라 가보고 싶었던 태종대와 해동용궁사가 있어 참가신청을 했다. 무엇보다도 장시간 기차를 타는 것이 가장 맘에 들었다. 비용이 29만 5천원. 비싼 편이다. 나 혼자 다녀오면 절반도 안될 비용이지만 때론 다른 이의 리딩에 편하게 따라다니고 싶기도 하다..

부비부비의 추억

입장료가 바덴바덴은 1,500원, 영스타는2,000원이었다. 들어가서 테이블을 잡고 앉으면 콜라 혹은 사이다가 한 잔씩 나왔다. 그거 한 잔 마시고 신나게 흔들어대곤 했다. 나중에 서울에서 콜라텍이라는 게 유행하게 되는데 이미 지방에선 그 오래 전부터 흥행했던 거였다. 당시 춘천에선 명동의 바덴바덴과 영스타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요선동의 팽고팽고도 있었는데 팽고팽고는 인간들이 지저분하다고 우리는 덜 좋아했다. 음악적인 감각이 좀더 세련됐다며 젊은이들은 바덴바덴보다는 영스타를 더 선호했다. 그래서 500원이 비쌌나 보다. 바덴바덴이 이쯤 어디였는데 가뭇없다. 80년대 전반기 광풍처럼 휘몰아친 음악. 유로댄스. 모던 토킹을 필두로 시작된 거대한 물결은 고만고만한 스타일과 아류작으로 일세를 풍미했지만 한 곡..

이곳도 설국이었다. 제주 1100고지

밑에서 쳐다보니 한라산에 눈이 별로 없다. 얼마 전 역대급의 폭설이 내렸다는데 과연 따뜻한 지방이라 그런가. 그래도 이와 제주에 왔으니 한번 가보기는 해야지. 말로만 듣던 1100고지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힌다는 이곳의 설경을 보러 겨울이면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한다. 기대를 안했는데 웬걸. 버스가 고지대로 오르면서 눈이 많아지더니 1100고지에 다다르자 정말 엄청난 눈이 쌓여있다. 눈내린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어른 허리께에 미친다. 따뜻한 섬이지만 고지대는 이토록 빙점 이하의 기후다. 쌓인 눈이 그대로 얼어 빙벽이다. 쉴 새없이 칼바람이 몰아친다. 뺨과 귀가 얼얼하다. 손이 시리다. 눈이 많이 쌓여 돌아다닐 데도 없다. 휴게소 주위만 사람들이 바글거린다. 설령 돌아다닐 데가 많았더라도 칼바람 ..

제주동백수목원

작년 2월 말에 제주동백수목원을 갔더니 꽃이 다 졌다고 이미 폐원한 상태였다. 과연 제주는 뭍보다 계절이 빠르구나. 올해는 좀 일찍 서둘러 년초에 갔더니 아주 절정이었다. 보통 우리가 아는 동백은 이렇다. 다른 꽃과 달리 송이로 떨어지는 독특한 완성. 핏빛보다 더 진한 붉음. 그런데 제주의 동백은 전혀 다르다. 꼿송이도 그렇고 색깔도 다르다. 나뭇잎도 다르다. 애기동백이라 한다. 정염의 빨간색이 아닌 분홍색이다. 동백 특유의 비장한 슬픔이 없다. 대신 천진난만한 소박미인가. 송이째 떨어져 뒹구는 애슬픔 대신 낱낱이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꽃잎들의 청초함? 게다가 이곳 수목원은 나무를 죄다 저리 인공으로 둥그렇게 깎아 놓아 맨송맨송하니 영 멋대가리 없다. 털이 죄다 깎인 애완견을 볼 때가 많다. 주인은 애정이..

김호중 아세요?

김호중을 아시나요? 난 잘 모른다. 아니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고 그 이름만은 알고 있지만 노래를 들어본 적은 없다. 성악가 출신인데 미스터트롯에 출연했다는 정도만 안다. 조폭 출신에다가 병역기피 의혹, 불법도박 등 부정적인 뉴스를 연예기사에서 가끔 접하곤 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좋은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선입감이 있는 정도다. 그런데 꽤나 유명한 가수인 것 같다. 우리 누나들도 다 알고 지인 중에도 열성 팬이 있는 걸 이제사 알았다. 배구를 좋아해서 이따금 괴산에서는 가장 가까운 김천으로 배구경기관람을 가곤 한다. 김천은 여자배구 도로공사 홈이다. 이번에 배구경기장 근처에 다다라 문득 보라색으로 치장한 골목길이 눈에 띄었다. 뭐지? 여행자 특유의 호기심이 일어서 시간도 넉넉한 김에 들어갔더니 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