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의 열정적인 사랑 누이가 수상한 음식을 두 접시 내놓는다. 메뚜기. 볶은 메뚜기다. 지난 가을 논에 가서 직접 잡아다가 냉동실에 넣어두었단다. 요즘 세상에도 메뚜기가 있나. 약 안치는 농가도 있나 보네. 우와, 이 엄동설한에 메뚜기라. 참 세상 좋아졌지. 이 계절에 딸기 먹는 거 하나도 이상할 거 없지..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0.01.06
농사 벼, 보리, 밀, 조, 수수, 옥수수, 메밀, 콩, 완두콩, 강낭콩, 팥, 녹두, 고구마, 감자, 상추, 호박, 오이, 시금치, 가지, 아욱, 고추, 무, 배추, 참깨, 들깨, 파, 마늘. 해마다 저렇게 가짓수가 많게 작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해는 이것을, 어느 해는 저것을 했을 것이다. 내 유년시절의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7.02
누에 뽕 그리고 오디 그렇잖아도 코딱지 만한 시골집 방에 누에가 들어오면 당분간은 우리들은 잠자리가 편하지 못했다. 날이 풀려 봄기운이 무르익으면 누에를 키웠다. 어떤 생명이든지 어린 놈들은 다 귀엽다. 알에서 부화한 녀석들은 너무 작아서 벌레 같지도 않고 잘 뵈지도 않았다. 눈을 바짝 들이대고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5.12
옥시기가 있는 밤 가을도 저물어 묽은 서리도 내렸다. 갈참나무 마른 잎이 찬바람에 버스럭거리는 추운 계절이면 우리 안방에선 옥시기를 땄다. 저녁을 일찌감치 물리고 보꾹과 장광에 매달아 두었던 옥시기를 내려 방에다 산더미 같이 쌓아 놓았다. 강원도 돌비탈밭이야 뭐가 있겠나. 그저 감자 아니면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5.11
그놈의 뒷간 뒷간 가기가 참 싫었다. 나야 꼬맹이니까 굳이 뒷간엔 안 가도 되었다. 그냥 마당 아무데나 주질러앉아 싸면 됐다. 아이 똥이야 그리 쿠리지도 않았고 귀여운 막내녀석이 누는 똥은 이쁘기도 했을 테니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집집이 개가 있어서 그냥 싸 놓으면 개가 깨끗하게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5.09
회상 막내라 늦게까지 젖을 먹는 혜택을 누렸다. 말이 네 살이지 그때까지 젖이 나왔을까는 의문이다. 어쨌든 나는 네 살까지 엄마 젖을 물었고 빈 젖은 아니었건 걸로 기억이 된다. 네 살 때 젖을 떼기 위해 그게 뭔지는 모르나 모모 쓴 약초 액을 엄마 젖에 발랐다. 네 살이면 맹문이 빤하니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18
맴맴 인총이 없어 같이 놀 동무도 없었다. 또래 사내아이로는 승호라는 아이가 있었지만 골안에 사는 아이라 우리 집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이따금 근처 개울에 놀러오는 걸 몇 번 보는 정도였고, 동무가 될 형편이 안된 건 그 애는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였다. 가까운 데 아이들은 경애와..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15
나물 캐는 처녀들 길고 깊은 겨울이 끝나면 산골도 깨어난다. 여자아이들은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옆구리엔 종다래끼를 끼고 손엔 호미를 들었다. 아직은 잔설이 남은 해토머리 볕 좋은 묵정밭에 냉이가 돋았다. 들불을 놓아 새카맣던 논두렁에 모도록모도록 돋는 쑥은 얼마나 예쁜지. 쑥칼로 그걸 뜯어..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13
만둣국이 있는 풍경 설을 지나고도 여자들은 맘 편히 쉬질 못했다. 설부터 한 달은 동네사람들이 집집마다 마실을 다녔다. 특정하게 어느 집을 정하고 가는 것도 아니고 차례로 순회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 집이나 갔다. 혼자서 가는 경우는 없고 서넛이나 대여섯, 예닐곱이 같이들 다..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09
사랑방에 무슨 일이 있었나 사랑(舍廊)은 안채와 따로 떨어져 바깥주인이 거처하는 방이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방으로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은 잘못된 상식이다. 그렇지만 나 어릴 적 우리 사랑은 정말로 사랑을 나누는 방이었다. 마루를 가운데 두고 안방과 건넌방이 있었다. 이 건넌방을 사랑이라 했다. 아버지..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