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사랑방에 무슨 일이 있었나

설리숲 2008. 2. 8. 02:32

 

 사랑(舍廊)은 안채와 따로 떨어져 바깥주인이 거처하는 방이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방으로 흔히 알고 있는 상식은 잘못된 상식이다.  그렇지만 나 어릴 적 우리 사랑은 정말로 사랑을 나누는 방이었다.


 마루를 가운데 두고 안방과 건넌방이 있었다. 이 건넌방을 사랑이라 했다. 아버지의 야객들이 와서 한담을 나누다 가기고 하고, 막걸리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새끼를 꼬기도 했다. 아버지는 주로 거기서 잠을 주무셨다.

 또한 사랑은 큰형의 야객들도 와서 놀다가곤 했는데 그런 때는 아버지가 아들의 손님을 배려해 이웃으로 나들이 가시곤 했다.

 사랑은 늘 구들이 안방보다 따뜻했다. 부뚜막에 가마솥이 있어 매일 쇠죽을 쑤었다. 설이 다가오면 엄청 불을 땠다. 그 가마에다 두부도 만들었고 엿도 고았다. 또 도토리묵을 쑤었고 메주콩도 삶았다. 그래서 겨울이면 사랑은 늘 절절 끓었던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큰형이 장가를 들었다. 스물다섯이었다. 형수는 그때 열일곱이었고 나는 다섯 살이었다. 골안 지나 갈기터의 처자였다. 그리 귀족의 집안이 아니었는데도 형수는 본가에서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혔다고 한다. 좋게 말해 곱게 큰 처자지 기실 시가 쪽에선 못 배운 처자였다. 게다가 사춘기나 겨우 지난 어린 소녀였으니 시집 와서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집안일을 맡아 했던 큰 누이가 속깨나 썩었을진저.


 문간 옆에다 새로 방을 하나 꾸며 아버지가 그리로 나가시고 신혼부부가 사랑을 썼다.

  밤에 새색시가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신랑이 자꾸만 덮친다고 울면서 시어머니한테 달려온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아무리 어린 색시라지만 몰라도 너무 몰랐다. 대체 친정에선 애를 어떻게 키운 건지.

 어머니는 기가 막혔지만 짐승 같은 신랑을 피해 그래도 당신의 품으로 도망쳐온 어린 신부가 무척 애처로웠다고 한다. 참말로 딸 같았다고 한다. 잘 다독이고 구슬려 어찌어찌 제 방으로 돌려보냈지만 이튿날 밤에 또 안방으로 도망쳐 왔다.

 또 토닥여 돌려보내고 그러기를 몇 밤을 보내고 나니 그제야 사랑방의 질서가 잡혔는지 이후로 울며 안방으로 건너오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어찌어찌 운우지정을 알 게 되는지 참 신기한 일이다. 세상에 그 누구도 방사를 가르쳐 주지 않지만 아이들은 커 가면서 저절로 그 이치를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럭저럭 형네 부부는 딸 하나에 아들 둘을 낳고 가장 미덥고 살가운 동반자로서 살아왔느니.

 사랑방에 대한 큰형수의 일화는 나중 어른이 된 후에 엄마로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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