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간 가기가 참 싫었다.
나야 꼬맹이니까 굳이 뒷간엔 안 가도 되었다. 그냥 마당 아무데나 주질러앉아 싸면 됐다. 아이 똥이야 그리 쿠리지도 않았고 귀여운 막내녀석이 누는 똥은 이쁘기도 했을 테니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집집이 개가 있어서 그냥 싸 놓으면 개가 깨끗하게 처리했다.
뒷간은 간단했다. 흙벽 대충 쌓아 올려 지붕을 씌우면 그만이다. 원래가 뒷간이란 허술하게 지어야 제격이다. 문은 거적때기를 드리워서 노크는 없이 문앞에서 크흠 헛기침이다.
뒷간 안은 어떤가. 댓돌 두개 놓은 게 전부다. 한쪽 구석엔 재가 쌓여 있고 나무삽을 하나 기대 놓았다. 댓돌에 올라앉아 똥을 누고는 삽으로 뒤쪽으로 밀어 놓고는 재를 끼얹어 덮는다.
그게 쌓이면서 발효가 되고 세상 가장 질 좋은 거름이 되어 논밭으로 나간다.
밑씻개는 종이를 썼다. 누나들이 국민학교를 다녀서 파지가 나온다. 그때야 신문지도 없었다. 밑씻개 할 종이도 무척 귀했다. 종이를 꾸깃꾸깃 꾸겨서 닦아야 제대로 닦였다.
똥 닦은 밑씻개는 따로 모았다. 그걸로는 아궁이 불 땔때 쏘시개로 썼다. 모든 게 귀했던 시절이니 똥 닦은 종이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소가 길에다 싸 놓은 똥도 주워다가 말려서 불을 때던 시절이었다.
마을을 다닐 때나 또는 들판에서 놀다가 똥이 마려우면 다양한 밑씻개가 쓰였다.
잇집 지푸라기를 돌돌 뭉쳐 닦기도 하고, 털이 부드러운 적당한 나뭇잎을 뜯어 닦기도 했고, 크기 적당한 돌맹이로 돌라 닦기도 했고, 물가에선 손으로 물을 묻혀 닦았다. 이른바 수세식 변소의 시작이라고 할까.
우리의 똥구멍은 다양한 밑씻개로 강하게 단련되어 갔다.
며느리밑씻개라는 식물이 있다.
덩굴줄기와 잎에 억센 가시가 잔득 돋아 있는 풀이다. 신맛이 나서 우리는 시광이라면서 자주 뜯어 먹곤 하던 풀인데, 이름이 왜 며느리밑씻개인지 앎직하다. 며느리야 늘 밉고 구박해야 할 존재이니 밑씻개마저도 따갑고 아픈 걸 써야 한지 않겠나.
뒷간은 무서운 장소였다.
늘 어두컴컴한 게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가 슬그머니 기어 나올 것 같았다. 아마 그래서 한국 전래민담 중 무서운 이야기는 거개가 뒷간 변소에 관련된 이야기일 게다. 서양이야 아예 변소라는 게 없었으니 당연 그에 관한 이야기도 없을진저.
그래도 낮엔 그럭저럭 괜찮다.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면 그놈의 뒷간은 왜 그리 무서운지. 이웃에 갔다가도 어둡기 전에 부랴부랴 돌아오는 건 그농믜 뒷간 옆을 지나치기가 무서워서다. 어둠 속에 되똥하니 섰는 그것. 머리가 쭈뼛했다. 어린 꼬맹이를 몹시도 괴롭히던 무서운 뒷간 그놈의 뒷간.
어쩌다가 동네 초상이 나서 상여가 나가고 나면 한동안은 정말 무서웠다. 뒷간에 시신이 누워 있는 것 같고 그러다가 산발한 머리에 뻥 뚫린 두눈을 하고 벌떡 일어나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상두꾼의 어람차 소리도 들려오는 것이다. 아 무서운 뒷간 그놈의 뒷간.
꼬맹이들은 대개 마당 아무데나 똥을 눈다. 한데 이놈의 개가 좀 진득히 기다렸다 오면 좋을걸, 옳거니 냉큼 달려와 아이의 엉덩이 밑에 주둥이를 들이미고는 실시간으로 먹어치우는 것이다. 성질 이상한 놈은 아예 똥구녕을 핥기도 한다.
소문으로 들었다. 어디 동네에선 개가 아이의 고추를 물어 아주 못쓰게 만들어 놨다고. 아마 그 성질 이상한 개새끼가 똥오줌 못가리고 그냥 덥석 물었을 게다. 그런 일이 더러더러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그런 아이들을 모아다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궁중의 내시로 키우는 것이다. 어차피 고추가 없으니 정상적인 삶을 살긴 글렀으니 실세 있는 나인으로 호사스럽게 사는 게 백 번 나은 인생이었을 것이다. 홍명희의 <임꺽정>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