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아무리 둘러봐야 산이다. 들도 없어 밭은 거개가 비탈밭이요, 논이라고 해봐야 손바닥만 한 되지기논들이다. 그리고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이다. 문명과는 너무 먼 오지였다. 아이들은 차 구경을 좋아했다. 이따금 저 아래 품안리 쪽에서 제무시(GMC)가 올라왔다. 탈탈거리는 낡..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03
깻망아지 둘째누이와 막내 누이가 그중 잘 어울려 놀았다. 가끔은 나도 끼워주곤 했다. 하긴 아직 코흘리개인 막내 동생을 돌보아야 하는 의무감도 있긴 했다. 아부지 엄마는 늘 논밭에 나가야 했고 큰 누이가 집안일을 했다. 첫딸은 살림밑천이라더니 과연 큰 누이는 집의 든든한 대들보였다. 나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2.02
적과의 동침 - 이(蝨) 저녁이면 이를 잡았다. 등잔불은 침침해 뭐 뵈지도 않건만 너도 나도 내복을 벗어 솔기를 톺았다. 이놈의 이. 겨울만 되면 몸서리치도록 극성을 부렸다. 가려움도 면역이 되는지라 웬만한 건 그럭저럭 참기도 하지만 엔간히 물어야지. 아이들에겐 이 잡는 것도 재미였다. 내복을 톺다가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1.31
눈 눈이 내리면 산골은 고요하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산골은 늘 고요하지만 하얗게 눈이 내려 덮이면 길짐승도 날짐승도 그 자취가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눈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뿐. 요즘은 발목 정도만 와도 대설경보니 뭐니 해서 호들갑스럽지만 내 어린 시절엔 참 눈이 많이 왔다...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1.28
무서운 광경 개그맨 지상렬이 방송에서 개고기를 안 먹는 이유를 말했다. “어릴 적 어른들이 개를 매달아 죽인 다음에 물이 펄펄 끓는 솥에다 집어넣었다. 근데 아직 숨이 붙어 있었는지 개가 솥에서 뛰어나와서는 정신이 없는 가운데도 주인을 보고는 다가와서 꼬리를 흔들더라. 그래서 개는 잡아..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1.23
개똥벌레 아이들은 논으로 가곤 했다. 뜨거운 여름 한낮에도 진종일 들판을 뛰어다니고도 성에 차지 않아 저녁밥을 먹기 바쁘게 또다시 캄캄한 개울가로 나갔다. 어두운 개울의서의 멱감기는 한낮과는 또다른 맛이 있다. 아이들이 쳐대는 물장구에 하얀 포말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낮에는 계집애..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8.01.21
진달래 그 붉은 유혹 봄만 되면 엄마는 그랬다. 산에 가지 마라. 누이들은 꼬맹이 사내동생을 떼어놓고 다니고 싶었고 나는 기를 쓰고 쫓아다니려 했다. 봄이면 앞산과 뒷산에 덜퍽진 진달래... 세상은 온통 꽃천지였다. 산에 가지 마라. 어른들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아이들은 또 기를 쓰고 진달래 꽃무덤 속..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7.03.23
고등어 아버지가 고등어를 사 오면 난 벌거벗고 소금 마사지를 받아야 했다. 내 고향은 강원도 산골. 지금은 춘천시로 통폐합됐고 전에는 춘성군이었다. 소양강 댐이 생겨 수몰지가 되는 바람에 시내로 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 깊은 오지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장에 가는 날 아이들은 하루가 길었..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6.09.21
산골마을의 크리스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막내누이와 그 동무들은 진종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흥얼거리며 종이꽃을 만들었다. 나로선 처음 듣는 노래였다. 크리스마스라고 했다. 오늘 자고 낼 한 번 더 자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라고 했다. "예수님이 누구야?" 내가 물어도 누이들은..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6.02.13
엄마 생각 가을도 이만큼이나 깊었다. 늦은 밤, 을씨년스런 야기에 몸을 떨며 마당에 나가 서서 오줌을 눈다. 문득 올려다 본 밤하늘에 별이 참 숱하게도 많다. 내 어릴 적 산골 밤하늘에도 저리 은가루를 뿌린 듯 별들이 총총했더랬지. 마실 갔다가 쓰러져 잠든 여섯 살짜리 막둥이가 문득 눈을 떴..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05.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