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나물 캐는 처녀들

설리숲 2008. 2. 13. 01:03

 

 길고 깊은 겨울이 끝나면 산골도 깨어난다. 여자아이들은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 옆구리엔 종다래끼를 끼고 손엔 호미를 들었다.

 아직은 잔설이 남은 해토머리 볕 좋은 묵정밭에 냉이가 돋았다. 들불을 놓아 새카맣던 논두렁에 모도록모도록 돋는 쑥은 얼마나 예쁜지. 쑥칼로 그걸 뜯어다가 쑥버무리를 해 먹었다. 기스락이나 비탈밭 두덕에도 파란 달래가 나왔다. 옥수수 대궁이 아직 서 있는 밭을 편답해 고들빼기를 캤다. 밥상이 싱그럽고 풍성해지는 나날이 이어졌다.


 골짜기 물은 연일 돌돌거리며 흘러갔고 하늘은 높고 파랬다. 혹독한 겨울을 난 종다리가 창공을 날아오른다.

 해는 나날이 길어져 다시 또 고된 농사철이 시작된다. 부지런한 어른들은 이미 눈이 다 녹기도 전에 두엄을 져다 밭에다 깔았다. 여자아이들이 봄나물을 캐러 쏘다닐 즈음엔 벌써 밭갈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누이들을 따라 산야를 쏘다녔다. 냉이도 쇠어져 버리고 고들빼기도 한 뼘이나 대궁이 자라면, 이제는 고비도 나오고 고사리도 나온다. 숲정이 얕은 곳에는 미역취 곰취가 지천이었다. 논바닥에 엎드려 삘기를 까먹기도 했다. 봄이 끝나갈 무렵엔 찔레순을 꺾어 먹었다. 산골의 봄은 아이들에겐 가장 신나는 제전이었다.

 여자들은 아이에서 큰애기까지 죄다 봄볕 속으로 나왔다. 봄나물이 목적이지만 사실은 화사한 나들이였고 봄소풍이었다. 까르르르 여기저기서 처녀들의 싱그런 웃음소리 들리고 사내아이들은 물가에서 물 오른 버들가지를 꺾어 호드기를 만들어 불었다. 가장 아름답고 흥겨운 산골의 한때다. 그렇지만 어른들에겐 가장 무서운 시기이기도 했다. 이미 식량은 다 떨어져 가고 저녁 끼니걱정을 해야 하는 공포의 춘궁기인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코피를 쏟도록 산야를 뛰어다녔고 여자아이들은 날마다 종다래끼를 옆에 끼고 산으로 들로 나다녔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

  너도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부르네


 국민하교를 다니던 누이들은 자주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난 늘상 노랫말이 이상했다.

 “언니!(난 아주 클 때까지 누나라 안하고 언니라 불렀다. 큰누나가 결혼하자 매형을 형부라고 불렀다) 종다리가 어트게 높이 떠서 노래를 불러?”

 누이들은 그게 우습다고 깔깔댄다.

 종아리를 우리는 ‘종다리’라 했고 또 옆구리에 매다는 종다래끼도 ‘종다리’라 했다. 그러니 희멀건 큰애기 종다리가 하늘에 높이 떠서 노래를 한다니 이상하고말고. 나생이 캐서 넣고 다니는 종다리가 하늘에 떠서 노래를 한다니 그게 이상하지 않냐 말이지.


               

 

                                                         

                                                                        종다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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