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줄 아이를 낳으면 세이레동안 금줄을 쳤다. 우리 시골에서는 금줄이라 안하고 송침이라 했다. 솔가지를 끼워 엮어서였을 것이다. 금줄은 샤머니즘 신앙풍속의 하나다. 새끼는 부정을 방지하는 의미의 왼새끼로 꼬았고 끼워 넣은 솔가지도 무속신앙에서의 성스러운 의미를 갖는다. 굿을 할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7.01.10
요람기 가을이 깊어지면 비알 밭이나 논배미 등에는 여기저기 낟가리들이 쌓여 있곤 했다. 이 낟가리들이 아이들에게는 좋은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숨바꼭질은 기본이고, 하얗게 서린 내린 초겨울 추운 날에는 짚단을 빼내어 따뜻하게 불을 지피고 놀기도 했다. 타닥타닥 타면서 채 털리지 않..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6.09.05
굴욕의 기억 골안인지 아니면 그 어름인지 집은 몰랐다. 승호라는 아이가 있었다. 나이도 내 또래인지 두어 살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한 번 스쳐지나가거나 먼발치서 보기만 했을 뿐 같이 어울려 놀아본 적은 없다. 어른들은 그 아이를 놀리는 걸 즐겨 했다. 미루어 짐작하여 그 아이는 약간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6.08.23
맷돌 어머니가 애지중지 정성스레 아낀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맷돌이었다. 참말 맷돌이 없다면 우리 식생활은 영위되지 못했을 것이다. 메밀을 타고, 멥쌀을 타 떡을 만들었다. 도토리나 청포를 타 묵을 만들었다. 옥수수를 타 부족한 쌀 대신 구황 음식을 먹었다. 감자와 녹두를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6.07.04
씨잘데기 없는 망상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알 필요가 없는 것은 그냥 모르는 대로 흘러가는 게 옳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유년시절에 병을 앓았다. 아이 때 병을 앓아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더구나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의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병들은 다 겪었을 터.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6.06.28
앵두 꽃잎 날리던 날들 모내기할 때는 개흙에 박은 발이 시렸어도 날은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어느새 낮으로 푹푹 찐다. 모를 냈으니 일단 큰 일 하나는 끝냈고 여자들은 뽕잎을 따 들였다. 누에도 벌써 한 잠을 자고 부쩍 크고 있었다. 아이들은 뽕나무마다 돌아다니며 오디를 따 먹었다. 손바닥과 입가가 하루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6.04.08
고드랫돌소리 농한기에 비로소 산골사람들은 진정 사는 것처럼 산다. 아직은 양식이 떨어지기 전이라 먹는 것에도 주렵지 않았다. 강원도 깊은 산골은 농한기가 길었다. 사랑방에 모여 화투를 치거나 또는 막걸리 추렴을 했고, 올무나 창애를 놓아 꿩이나 토끼를 잡았다. 긴 농한기를 판판 놀기만 하지..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6.03.28
셀렘민트와 진로소주 인총이 적은 산골 마을에 가게가 있을 리 없다. 학교 앞에 아이들 문구 파는 집이 있었고 아마 거기서 과자 등속을 팔았을 테지만 난 한 번도 거길 가본 적이 없었다. 대여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학교가 먼 거리였다. 그러므로 학교 근처는 물론 아이들의 선망인 과자 사탕들이 동화 속 궁..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6.03.13
초가지붕 가을에 벼를 타작하고 나면 아버지는 잇짚을 추려 좋은 것을 선별했다. 겨우내 새끼를 꼬아야 했고 가마니도 짜야 했다. 농경생활은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집의 모든 것을 손수 만들고 고치는 만능 재주꾼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겨울이 오기 전에 묵은 이엉을 걷어내고 새로 ..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6.02.29
인기 스타아-가 되려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커서 중학생이 될 때까지 우리 집에 고서 한 권이 있었다. 책제가 <인기 스타아-가 되려면>이었다. 우리가 두어 번 이사를 했는데 그 책은 누가 챙겼는지 항상 누나의 책꽂이나 서랍에 있었다. 그렇다고 누나가 그걸 보는 것도 아니었다... 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2016.02.22